'가난한 사람들'은 도스토예프스키의 데뷔작이다. 이미 등단한 친구가 이걸 읽고는 아는 평론가에게 달려가서 보여줬다고 한다. 데뷔작부터 성공한 것이다. '청년 고골'이라는 소리를 들었대나. 나는 고골이라는 작가에 대해서는 아는 게 거의 없으므로 패스. 중요한 것은 이걸 24살에 썼다는 거다. 나랑 비슷하잖아.. 뭐 이제 와서 세상에 천재 따윈 없어, 오직 노력 뿐! 이라고 외칠만큼 순진하지도 않고 순진함이 부끄럽지 않게 살아갈만큼 근성있는 인간도 아니다. 그래도 그렇지, 이걸 24살에...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랑 비슷하잖아..
어쨌든 '가난한 사람들'은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바르바라와 제부쉬낀이 주고 받는 편지로 이뤄진 단편인데 날짜도 확인해가며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데뷔작이고, 별로 어렵지 않아서 오히려 24살 도스또예프스끼의 솜씨가 어느 정도였는지 실감했던 것 같다.
뽀끄로프스끼는 내게 책을 자주 가져다 주었다. 처음 나는 잠이 들지 않기 위해서 책을 읽었고, 시간이 좀 지나자 진지하게, 그리고 나중엔 책 속으로 몰입하게 되었다. 그때까지 알지 못했던 낯설고 새로운 것들이 갑자기 한꺼번에 내 눈앞에 펼쳐졌던 것이다. 새로운 사상과 새로운 느낌들이 거센 물결처럼 한꺼번에 가슴속으로 밀려 들어왔다. 그런 흥분이 거세어질수록, 새로운 느낌을 받아들이는 것이 당황스럽고 벅찰수록, 나는 점점 더 깊이 그 낯선 느낌에 빠져 들었고, 그 느낌은 점점 더 달콤하게 내 영혼을 뒤흔들어 놓았다. 61쪽
제가 당신이 베푸신 일은 아무리 큰돈으로도 보답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더니, 그는 헛소리라며 제 말을 막았습니다. 소설에나 나오는 얘기라고, 제가 아직 어려서 시나부랭이나 읽고 하는 소리라고, 소설이 어린 처녀들을 망치고 있다고, 책이 그들의 도덕성을 해치고 있다고, 그래서 자기는 어떤 책이든 쳐다도 안 본다고 말했습니다. 181쪽
이렇게 도스또예프스끼는 외관상 물리적 빈곤을 테마로 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통해 문학에 관한 문제를 진지하게 제시하면서 미학과 존재론의 상관성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한 인간의 존재를 결정짓는 것은 그가 읽는 책, 그가 쓰는 글이라는 도스또예프스끼의 미학 공식은 이미 첫번째 소설에서부터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제부쉬낀과 바르바라는 이후 도스또예프스끼의 위대한 소설에 등장하게 될 무수한 작가들, 독서가들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역자해설 1, 문학적 빈곤에 관한 짤막한 고찰 중에서, 412쪽)
그런데 '분신'은 읽기 힘들었다. 일단 주인공 골랴드낀의 '타인의 말을 지향하는 말'로, 즉 혼자 묻고 대답하는 주인공의 독백같지 않은 독백이 거의 작품의 전부를 차지한다. 그 독백같지 않은 독백을 통해서만 주인공을 둘러싼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인데 이 골랴드낀씨가 사실 좀 제정신이 아니다(그럴만한 상황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조차 어지러워지는 것이다! 이 정신 나간 아저씨의 횡설수설함이 흥미진진하기도 하지만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