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조건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앙드레 말로 (지식공작소, 2000년)
상세보기

친구가 강추한 소설. 몇달 전에 빌린 이 두꺼운 책은 오랫동안 내 책장에 꽂혀 있기만 했다. 학교 친구들과 가진 책읽기모임에서 이 책을 읽기로 결정해 마침내 책을 펴들었다. 책을 다 읽은지는 한달이 조금 넘었다.
잘 와닿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작품의 배경에 대해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중국공산당의 대장정을 다룬 '중국의 붉은 별' 읽을 때 열라 흥분했었다.(당시만 해도 나는 아주 구좌파였고, 극좌에 가깝기도 했었다.) 전공이 전공이다 보니 당시의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도 어렴풋이나마 주워들은 게 있다. 그런데도 잘 와닿지 않았다. 인물들에 대해서도 감정 이입이 힘들었다. 쉽게 잡히지 않았다. 다들 붕 떠있는 듯한 느낌.
굉장히 실존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임은 확실하다. 또, 작품의 배경은 매우 정치적이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1927년의 상해, 그곳에서 국민당 장제스의 배신으로 수많은 공산주의자들이 사망했다. 작품은 그 시공간의 한복판에 있던 세 남성을 주목한다. 테러리스트가 된 첸, 가장 인텔리적인 인물 기요, 혁명을 찾아 중국에 온 러시아인 카토프. 이들 모두가 확실시된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실존적인 고민을 할 수밖에 없고, 국민당과 공산당 그리고 일국일당 원칙을 강제하는 코민테른의 관계는 이 작품이 매우 정치적인 작품일 여지를 만들어 준다. 그러나 무게 중심은 인간의 실존, 인간의 조건에 있다.
작품 외적인 부분 중 놀라운 점은 1946년, 전쟁이 끝난 바로 다음 해에 이런 작품이 나왔다는 사실이며... 중국에 단 한번도 가보지 않은 상태에서 소설을 써낸 앙드레 말로에 대한 경이로움이다. 이 할배는 1901년 생인데, 스페인 내전에도 참전해 부상당했고, 2차대전에도 참전했고, 1971년엔 동파키스탄 방글라데시 해방군에 자원 입대를 선언하기도 했다.
여튼, 책을 다 읽은 뒤 모인 우리는 별로 할 말이 없었다. 다른 친구들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인상깊은 구절 정도는 있었으나... 무엇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 다들 딱히 할 말이랄 것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냥 밥을 먹었다. 일요일 오전의 아점은 맛있었다.
이런 사정을 책을 빌려준 친구에게 토로했다. 친구는, 올 한해 읽은 책 중 최고를 꼽으라면 자기에게는 이 책이라고 대답했다. 학교 수업에서 텍스트로 다룬 적이 있다며 자신은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 몇 가지 단서를 들려 주었다. 친구의 말을 듣고 보니 아 그런 부분은 흥미롭겠다, 그렇게 읽을 수 있구나... 아무래도 내가 게으르게 읽은 게 확실하다. 그러나 언제 다시 읽어볼런지. 다른 소설을 읽는 것보다 친구가 확실히 추천한 책을 한번 더 읽으면서 더 큰 감동을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 작품을 두번 읽기엔 난 책욕심이 너무 많다. 언젠가 인연이 닿게 된다면 다시 읽겠지, 하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위안 삼고 책에 대한 미안함을 대신한다.


있는 힘을 다하여 서로를 꽉 껴안을 때만은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 따위는 문제가 아니었다. 69쪽

'(중략) 나는 오직 내가 사랑하는 정도밖에는 메이를 알지 못하며, 그것도 내가 메이를 사랑하는 방법 안에서만 알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는 곧잘 이런 말씀을 하셨지. 어떤 사람을 자기 것으로 만든대도 결국 자기가 그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부분밖에 소유할 수 없는 법이라고. 그러면 그 다음은?' 71쪽


'그러나 '나'라는 존재는 나 자신에 대해서, 내 목구멍에 대해서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은 일종의 절대적인 긍정이다. 미치광이의 긍정이다. 다른 무엇보다 훨씬 강렬한 긍정이다. 그러나 남들에게 나라는 존재는 결국 내가 행동한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나 메이 한 사람에게만은 기요라는 존재는 그가 해온 행위가 아니었다. 오직 기요에게만은 메이라는 여자는 메이의 과거 이력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애정에 의해서 사람들의 고독을 잊게 해주는 포옹은 결코 인간에게 구원을 베풀어주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미치광이에게, 비길 데 없는 괴물에게 구원을 베풀어주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소중한 그 괴물 말이다. 모든 인간이 자기 자신에게는 자기가 괴물이며, 저마다 자기 가슴속으로 파고들 때는 헤아릴 수 없는 괴물인 것이다.
(중략) '세상 사람들은 나의 동지가 아니다. 그들은 나를 주시하는 자들, 나를 판결하는 자들이다. 내 동지는 나를 주시하지 않고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다. 어떤 일이 있건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다. 내가 실패하더라도, 비열한 짓을 하더라도, 또는 배반하더라도......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다. 내가 한 일을, 또는 앞으로 내가 할 일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바로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다.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만큼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다. 같이 죽을 수 있을 만큼 사랑해 주는... 나는 오직 메이와 함께-비록 그것이 상처뿐일지라도-그 사랑을 나누어 가지고 있는 것이다. 죽을지도 모르는 병든 자식을 지키고 앉아 있는 부모들처럼...'
그것은 결코 행복은 아니다. 그것은 어둠과 일치하는 점이 있는 원초적인 것이다. 그것이 그의 육체 속에 뜨거운 그 무엇을 불끈 치솟게 했다. 이 뜨거운 것은 언제나 뺨에 뺨을 대는, 움직이지 않는 포옹 속에서 끝나곤 했다. 오직 그것만이 자기 속에 들어 있는 것이며, 그것만이 죽음에 견줄 만큼 강렬한 것이다. 71~73쪽

고통 자체는 서로 같은 것일 수 없는 것이어서 사람을 저마다 외로운 인간으로 갈라놓는 것이지만, 그 괴로워하는 모습은 사람들을 접근시키기 마련이다. 259쪽

 

Posted by 권고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