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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의 책 <그건 사랑이었네>를 다 읽었다. 읽는 동안 가끔씩, 요환과 지수와 남미에서 귀국했을 수정, 세 사람, 거기에 미나까지 더하자. 이들을 떠올렸다.
한비야, 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아주 복잡하고 흥미로운 토론을 벌일 수 있다. 일단 책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그건, 사랑'이었다는 그녀의 마음이 책 한 권에 고르게 적절히 녹아 들어 있다고 보기에는, 그냥 산문집이다. 여행기도 아니고 글 하나로 문학적 완성도를 목표로 하는, 미학적 측면이 있는 수필도 아니다. "안녕, 그랬어요? 나는 이래요. 나는 이런 사람이에요. 반가워요. 힘내요!" 뭐 간단히 이 문장으로 요약할 수도 있다.
나로서는 그녀의 책 한 권을 처음 읽어본 거라, 그동안의 궁금증이 적지 않게 해소되었다. 아, 이런 글을 쓰는, 이런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이구나. 독실한 종교인이구나. 정치가가 되기보다는 수녀가 될 사람이구나. 내가 그녀를 비난할 이유는 없다. 그녀는 그녀가 목격한 세계의 문제에 대해 그녀 나름의 방식으로 대처하고 있으니까. 가장 적나라한 현장에서 보다 많은 인간의 목숨을 살리려 노력하고 있다. 그녀가 정치에 대해 발언하고 자신의 입장을 밝혀주기를 물론 나는 바란다. 뭐라고 해야 할까. 그러지 않는 그녀의 모습을 두고, '이해는 되지만 동의할 수 없다'는 문장이 어울리는 것 같다. 대다수 사람들은 환경 상, 그리고 의지의 측면에서, 세계시민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세계의 변화를 지금 이 사회에서 실천할 수밖에 없다. 재밌는 것은, 세계의 변화는 또한 지금 여기에서만 진정으로 시작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눈 앞의 고통을 무시하는 이는 무엇을 말하든 쓰든 그를 믿을 수 없다.
한비야씨의 말 중에서 놀라며 수긍했던 것 하나가 있다. 그녀가 국내의 여러 여론조사에서 5위니 10위니 안에 들어가는 이유에 대해 스스로 고민해본 결과, 그녀 나름의 해답을 얻어냈다고 한다. 자신의 삶이 여성으로서 이전에는 보기 드물었던 삶이었고, 현대 한국 사회에서 역할 모델로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매우 많은 수의 젊은이(특히 30.40대 중에도 적지 않다)들이 그녀의 삶과 같은 새로운 방식의 대안적 삶, 혹은 자신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도전에 목말라 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녀는 시대의식에 호응된 사람이다. 그토록 폭발적인 인기는 그렇게 밖에 설명할 수 없다. 이는 그녀가 진보신당 당원이 되는 것보다 더 근본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에.
그러므로 나는 그녀의 삶을 인정하고 지지하겠다. 말하고 쓰며 설득하고 있으므로 그녀는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그녀는 자신이 더 열심히 살면, 월드비전이 더 많은 돈으로 더 많은 곳에서 구호활동을 하는 것으로 세계가 근본적으로 나아지리라, 생각하는걸까. (그런데 세계가 근본적으로 나아진다는 것이 가능할까. 과거도 현재도 언제나 불합리와 부조리를 안고 인류는 살아가는데. vs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 문명은 더 나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