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휴가 때 제목에 꽂혀서 갑작스럽게 산 책. 이음에도 없었고 반디에도 없었다. 영풍에 가보니 단 한 권, 한 1년 쯤 그 자리에 그대로 꽂혀 있기만 했을 것 같은 상태로 단 한 권이 남아 있었다. 이젠 이 책을 구하기가 힘들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책을 샀다. 아마도 절판되었을 것이다(혹은 곧 그리 되거나).
제목에 끌렸으나 담긴 글은 나를 꽤 불편하게 했다. 고민 거리를 많이 던져준 책이기도 했다. 저자의 강의를 수강한 친구의 찬사를 들으며 나는 그를 아름다운 문장과 문학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한 평론가일 거라 생각했다. 문학의 세계에 충실함을 사회적 실천으로 삼고 살아가는 서정적인 사람일 거라 생각했다. 예상과는 정반대였다. 씁쓸함, 비장한 사명감, 성공보다 더 많은 패배를 겪었을 것 같은 지난 시간들, 그런 느낌이 책 전체에 짙다.
핵심적인 고민 거리를 아주 무식하게 요약하자면 신형철씨와 이명원씨, 나는 어느 쪽에 서 있는가 혹은 어느 쪽을 선호하는가? 신형철씨가 한겨레21에 연재한 글들과 이 책에 실린 이명원씨의 글들은 모두 대중적인 매체에 기고되었다. 두 사람 모두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발언하는 평론가들이고, 그런 발언이 자신의 평론과 분리되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뭔가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는 것 같았다. 일단 확실한 것 하나를 꼽자면, 문체. 이명원씨의 문체는 매우 불편했다. 현장 이론의 단어들. 수사 없는 고독한 문장들. 사회적 입지 역시 결정적으로 달라 보인다. 한 사람은 문단 밖에서 학문공동체에 둥지를 틀었고 다른 사람은 한국에서 가장 큰 문학 출판사 잡지의 편집 위원이자 문단의 기대주로 주목받고 있다. 그 밖에 문학의 역할에 대해서도 문학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미묘한 생각의 차이가 있는 것 같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아주 사적인 느낌일 뿐이다.
저자가 한국 사회에 파문을 일으키며 등장한 것도 어느새 10년이 넘었다. 등장 자체가 한국 문단과 권력의 성에 대한 용기 있는 비판이었다. 아마도 그는 여전히 가난할 것이고(그가 꿈꾸었던 '서재의 공화국'은 어찌 되었을까), 그가 비판했던 한국 문단의 권력 구조도 '주례사 비평'도 여전해 보인다. 한국 문단의 속사정은 문학을 사랑하는 이 에게도 아주 짙은 안개에 가려져 있다. 이 책은 그 용감한 등장에 이어 여러 권의 책을 쉴틈없이 발표한 뒤에 출판됐다.
제목에 끌렸으나 담긴 글은 나를 꽤 불편하게 했다. 고민 거리를 많이 던져준 책이기도 했다. 저자의 강의를 수강한 친구의 찬사를 들으며 나는 그를 아름다운 문장과 문학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한 평론가일 거라 생각했다. 문학의 세계에 충실함을 사회적 실천으로 삼고 살아가는 서정적인 사람일 거라 생각했다. 예상과는 정반대였다. 씁쓸함, 비장한 사명감, 성공보다 더 많은 패배를 겪었을 것 같은 지난 시간들, 그런 느낌이 책 전체에 짙다.
핵심적인 고민 거리를 아주 무식하게 요약하자면 신형철씨와 이명원씨, 나는 어느 쪽에 서 있는가 혹은 어느 쪽을 선호하는가? 신형철씨가 한겨레21에 연재한 글들과 이 책에 실린 이명원씨의 글들은 모두 대중적인 매체에 기고되었다. 두 사람 모두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발언하는 평론가들이고, 그런 발언이 자신의 평론과 분리되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뭔가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는 것 같았다. 일단 확실한 것 하나를 꼽자면, 문체. 이명원씨의 문체는 매우 불편했다. 현장 이론의 단어들. 수사 없는 고독한 문장들. 사회적 입지 역시 결정적으로 달라 보인다. 한 사람은 문단 밖에서 학문공동체에 둥지를 틀었고 다른 사람은 한국에서 가장 큰 문학 출판사 잡지의 편집 위원이자 문단의 기대주로 주목받고 있다. 그 밖에 문학의 역할에 대해서도 문학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미묘한 생각의 차이가 있는 것 같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아주 사적인 느낌일 뿐이다.
저자가 한국 사회에 파문을 일으키며 등장한 것도 어느새 10년이 넘었다. 등장 자체가 한국 문단과 권력의 성에 대한 용기 있는 비판이었다. 아마도 그는 여전히 가난할 것이고(그가 꿈꾸었던 '서재의 공화국'은 어찌 되었을까), 그가 비판했던 한국 문단의 권력 구조도 '주례사 비평'도 여전해 보인다. 한국 문단의 속사정은 문학을 사랑하는 이 에게도 아주 짙은 안개에 가려져 있다. 이 책은 그 용감한 등장에 이어 여러 권의 책을 쉴틈없이 발표한 뒤에 출판됐다.
문인들은 '쓴다'는 행위 속에 갇힌 수인囚人이다. 글이 쓰여지지 않을 때, 그는 절망하며, 글을 쓰는 순간 그는 좌절한다. 글쓰기를 중단한 순간 그는 무의미한 존재가 되며, 글쓰기를 시작하는 순간 그는 자신의 무능을 끊임없이 질책한다. 쓴다는 일을 고통스럽다고 표현하는 문인들이 많은데, 이는 결코 엄살이 아니다. 작품은 먼지처럼 '축적'되는 것이 아니라, 매순간 새롭게 '탄생'하는 것이다. '쓴다'는 일의 고통스러움은 그가 아무리 뛰어난 작가라고 할지라도, 매순간 제로에서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다는 냉혹한 미적 현실에서 비롯된다. 그것이 '쓴다'는 행위를 매혹과 비극의 수제비로 만든다. 109쪽
생활은 언제나 인식을 앞질러갔고, 짧은 안심의 순간 잠복하고 있던 상처의 지뢰는 폭발하곤 했으며, 분석은 언제나 사후적인 심의행위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분석한다고 세상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세상을 바꾸려는 실천과 결합될 때, 비로소 세상은 바뀔 수 있다. 239쪽
다음과 같은 주장이 <사랑의 정신분석>에서 크리스테바가 펼친 생각의 '속살'처럼 나는 느껴진다. "사랑의 말 한마디는 흔히 화학 요법 혹은 전기 요법보다 더 효과적이고, 더 심층적이며, 더 지속적인 치료 수단이 됩니다. 물론, 사랑의 말은 우리의 생물체적 숙명에서 비롯되거나, 또한 그와 동시에 우연히 잘못 던져진 악의에 찬 말들에서 비롯되는 불행한 사태를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치유법입니다." 241쪽
만남이 익숙한 잠옷처럼 흔해졌다는 사실만으로 우리가 행복할 수 없는 것은, 거기에 '헤어짐의 고통'을 감당할 만한 인내가 빠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프게 만나야 한다. 287쪽
생활은 언제나 인식을 앞질러갔고, 짧은 안심의 순간 잠복하고 있던 상처의 지뢰는 폭발하곤 했으며, 분석은 언제나 사후적인 심의행위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분석한다고 세상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세상을 바꾸려는 실천과 결합될 때, 비로소 세상은 바뀔 수 있다. 239쪽
다음과 같은 주장이 <사랑의 정신분석>에서 크리스테바가 펼친 생각의 '속살'처럼 나는 느껴진다. "사랑의 말 한마디는 흔히 화학 요법 혹은 전기 요법보다 더 효과적이고, 더 심층적이며, 더 지속적인 치료 수단이 됩니다. 물론, 사랑의 말은 우리의 생물체적 숙명에서 비롯되거나, 또한 그와 동시에 우연히 잘못 던져진 악의에 찬 말들에서 비롯되는 불행한 사태를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치유법입니다." 241쪽
만남이 익숙한 잠옷처럼 흔해졌다는 사실만으로 우리가 행복할 수 없는 것은, 거기에 '헤어짐의 고통'을 감당할 만한 인내가 빠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프게 만나야 한다. 287쪽
사실 책을 읽으며 내내 마음이 아팠다. 이렇게 정직한 사람이라니. 정직하게 살고 정직하게 쓰고. 그의 용기는 그의 삶을 외롭고 가난하게 만들었을 것 같았다.
나는 이 책이 별로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