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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은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어떻게 알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어느날 혼자 있을 때 불현듯 알게 됐다. 그날은 화창한 봄날이었다. 햇살이 너무 예뻐서 괜히 혼자 멋 부린답시고, 벗꽃이 지는 바닷가에 갔다. 생각보다 좀 쌀쌀해서 뜨거운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앉아 있는데, 그 풍경이 너무 끝내줬다. 그 아름다움을 어딘가에 담고 싶었다.
그 순간, 조용한 틈을 비집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스멀스멀 삐져나왔고 '나는 작가가 되어야겠구나' 생각했다.
웃기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140~141쪽
그 순간, 조용한 틈을 비집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스멀스멀 삐져나왔고 '나는 작가가 되어야겠구나' 생각했다.
웃기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140~141쪽
옆자리 친구가 읽고 있길래, 재밌어 보여서 빌려 읽었다. 수원 토박이 남자는 서울 살이에 로망이 있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를 다녔고 한때 고시원에 살기도 했지만 오래 버티지 못했다. 어찌하여 취직을 했고 본격적으로 자취집을 찾아 나선다. 그가 마침내 찾아낸 곳은 성신여대 근처 반지하집. 바로 그, '지층'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사실은 그냥 '지하'인 공간.
부산에서 대학을 졸업한 여자는 작가가 되겠다는 꿈이 있었다. 부산에서 방송국 막내 작가로 일하기도 했지만 인원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 되자 오히려 홀가분한 마음으로 그만 뒀다. 그리고 짐을 서울로 부친 채 무작정 상경. 연고라고는 전혀 없이.(내 친구가 생각 난다.) 고시원에서 지내며 살아갈 집을 구한다. 그녀가 찾아낸 곳은, 노량진의 어느 옥탑방이다.
두 사람 모두 오마이뉴스에서 일하게 되었고 우연히 화제로 올라온 서울살이라는 주제에 금방 의기투합했다. 그래서 번갈아 가며 기고를 했고 반응이 좋아 책으로 냈다. 주위 여기저기에서 두 저자와 비슷한 20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내 친구만 해도 부산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언니와 함께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소식을 듣진 못했지만 고등학교 동창들 중 상당수가 서울에 올라와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블로그를 하며 알게 된 또래 블로거들 중 여러 분들이 신림-봉천-낙성대, 가파른 동네에서 홀로 살고 있다. 다들 땅 아래 거나 혹은 집 꼭대기에 둥지를 틀고 서울살이를 시작한다.
책은 아주 심각하지도 않고 아주 가볍지도 않다. 사실 반지하와 옥탑방은 인간이 쾌적하게 지낼 수 있는 거주공간이 못 된다. 기본적으로 '집'다운 집이 아니라는 한계가 있고 거기에서 오는 서글픔이 있다. 그런 곳에서 사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그냥 '돈'이 없기 때문이다. 하늘과 탁 트인 풍경이 좋으면 옥탑방이 아니라 그냥 높은 곳에서 살면 되는 거고, 볕 잘 안 드는 반지하가 좋으면 집 창문에 두터운 블라인드를 설치하면 된다. 가난한 청춘들이 자기에게 허락된 공간에서 고군분투 살아간다. 생활의 지혜를 털어놓기도 하고 자기 신세며 처지가 서글퍼 펑펑 울었던 날을 고백하기도 한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나의 서울살이 6년이 생각났다. 2004년부터 2009년까지 모두 6년. 거의 1년에 한번 꼴로 이사를 다녔다. 그래서 그 해에 어디서 누구와 살았는지 기억하기 힘들었다. 사무실 의자에 앉아 반나절 동안 애쓴 뒤에야 모두 기억이 났다. 그러자 글을 써보고 싶어졌다. 나의 지난 서울살이에 대해서. 어디서 누구와 살았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옥탑방에서 살아본 적은 없지만 친한 선배가 사는 동안 자주 놀러 갔었고, 반지하는 대략 1년 정도 살았고, 하숙집에도 살았고 원룸에도 살았고 상가 2층 전세집에서도 살아봤다. 글을 쓰면 재밌을 것 같았다.
그래서, 조만간, 혹은 오늘 중으로 한번 써볼 생각이다. 완전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