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중, 이라는 이름, 대형서점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처음 보았다. 이 사람 책 표지엔 대부분 저자 본인의 얼굴이 커다랗게 찍혀 있다. 어딘가 일본적인 느낌이 물씬 풍겼다. 끊임없이 번역되는 일본 자기계발서들과 다를 바 없는, 다만 그 저자가 자이니치 라는 점 정도가 이색적인 책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와서 새삼 깨닫는다. 책, 음악, 영화, 하나같이 이웃 블로거들의 조언이 내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신문 북 섹션을 봐도 기성 작가의 신간 소식 정도가 반가울 뿐 관심이 동하는 책은 거의 없다. 알라딘 뉴스레터는 매우 신뢰할 만하다. 소설MD와 인문MD의 블로그는 rss에 등록해 두고 즐겨 읽는다. 이 책에 대한 인상을 바꾸게 된 계기, 그리고 기회가 닿는다면 책을 읽어봐야 겠다고 결심하게 만든 계기 역시 이웃 블로그 였다. <네이버 오늘의책>에 이 책의 리뷰를 쓴 그 이웃은, 얼마 지나지 않아 나쓰메 소세키의 저작을 모두 읽기 시작했다.(최근에 그 여정이 마무리된 것 같다.) 동시대에 생존하지 않는, 옛 작가의 작품을 모두 읽는다, 라... 쉽지 않은 결심이자 도전이다.
아주 금방 읽었다.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를 살았던 두 거장의 삶과 작품을 통해 현대를 진단한다. 얼마 전에 읽은 버틀란드 러셀의 <행복의 정복>과 비슷한 목적에서 쓰인 책이다. 시대를 분석하진 않는다. 개인의 삶, 심리,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현대 사회의 특징을 짚어 나간다. 개인적으로 그 중에서도 인상 깊었고 완전히 공감하고 동의했던 부분은 바로 '일', 노동에 관한 내용이었다.
지금 와서 새삼 깨닫는다. 책, 음악, 영화, 하나같이 이웃 블로거들의 조언이 내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신문 북 섹션을 봐도 기성 작가의 신간 소식 정도가 반가울 뿐 관심이 동하는 책은 거의 없다. 알라딘 뉴스레터는 매우 신뢰할 만하다. 소설MD와 인문MD의 블로그는 rss에 등록해 두고 즐겨 읽는다. 이 책에 대한 인상을 바꾸게 된 계기, 그리고 기회가 닿는다면 책을 읽어봐야 겠다고 결심하게 만든 계기 역시 이웃 블로그 였다. <네이버 오늘의책>에 이 책의 리뷰를 쓴 그 이웃은, 얼마 지나지 않아 나쓰메 소세키의 저작을 모두 읽기 시작했다.(최근에 그 여정이 마무리된 것 같다.) 동시대에 생존하지 않는, 옛 작가의 작품을 모두 읽는다, 라... 쉽지 않은 결심이자 도전이다.
아주 금방 읽었다.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를 살았던 두 거장의 삶과 작품을 통해 현대를 진단한다. 얼마 전에 읽은 버틀란드 러셀의 <행복의 정복>과 비슷한 목적에서 쓰인 책이다. 시대를 분석하진 않는다. 개인의 삶, 심리,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현대 사회의 특징을 짚어 나간다. 개인적으로 그 중에서도 인상 깊었고 완전히 공감하고 동의했던 부분은 바로 '일', 노동에 관한 내용이었다.
나 스스로 '나는 왜 일을 하고 있는가'라고 물어볼 때가 있습니다. 이리저리 생각을 해보면 결국 '타자로부터의 배려를 원하기 때문에' 라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지위나 명예는 필요없다고 말하면 거짓이 될 터이고 돈도 필요하겠지만, 가장 큰 것은 타자로부터의 배려입니다. 그것을 통해 사회 속에 있는 자기를 재확인할 수 있고, 나는 이렇게 살아도 된다는 안도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감과도 관계가 있는 듯이 보입니다. 122~123쪽
나는 강상중씨의 지적이 정말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하고 취직하는 삶을 멈춤 없이 보낸 사람들은 공감하기 힘들 듯 하다. 그런데 사실 그런 삶들은 내가 세상에 '쓸모 없는'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한 필사적인 분투이지 않나? 본인이 의도한 경우는 거의 없겠지만, 우연과 불행에 의해 스스로를 버림받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정말 절실해진다. 이곳에 와서도 이렇게 독후감을 쓰는 이유 역시 그 절실함에서 비롯된 거다. 이젠 습관처럼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지만.
참고로 '자기중심주의자'라는 말을 듣는 사람들 중에는 자아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 적고 '자기중심주의자'라는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이 오히려 자아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입니다. '자기중심주의자'라는 말을 듣는 사람들은 사람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지만 '자아'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은 대개 '타자'의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하기 때문이겠지요. 31쪽
저자는 30대가 될 때까지 아주 힘겹게 살아간 모양이다. '자아'의 문제는 러셀도 깊이 있게 다뤘던 부분이다. 20세기 초만 해도 '자아'에서 비롯된 마음병(나쓰메 소세키가 오랫동안 앓기도 했던 '신경쇠약'이 대표적이다)은 지식인들의 전유물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정보와 지식이 정말로 넘쳐 흐르는 오늘날에는 모두가 작든 크든 앓고 있다일어나고 있는 게 마음병이다. 비대해진 자아.
실제로 그렇든 그렇지 않든,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스스로의 선택의 결과물이라고 믿으며 살아간다. 그래야 제정신으로 살 수 있다. 선택을 하고 책임을 지는, 이게 상식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현대 사회는 너무 넓고 커서 그 앞뒤를 이해하는 게 힘들어진다. 중국 펀드에 투자하기로 한 게 내 선택이긴 하지만, 중국 펀드고 반토막 나는 과정에서 내가 뭘 잘못하진 않았으니까.(그럴 듯한 사례 맞나?)
사람들은 자기 인생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의미를 이해하면서 살아갑니다. 물론 하나하나의 의미를 일일이 생각하며 사는 것은 아니고 의미를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이해가 무의식화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 되었든 그것이 사람에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됩니다. 따라서 의미를 확신하지 못하게 되면 사람은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144쪽
'고민하는 힘'이라는 제목은 참 적절하다.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도 결국 제목으로 아주 잘 요약된다. 고민할 줄 아는 능력이 현대 사회에서는 개인이 행복해지기 위해 가장 중요한 능력이라는 것.(물론 별 고민없이 살아도 순탄하게 사는 이들도 '반드시 고민해야 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앞서 말했듯 현대 사회란, 고립된 개인들의 처지에서 비롯되는 마음병이 너무나도 만연한 사회이다 보니, 100년 전 같았으면 고뇌하는 지식인의 신세 한탄 정도로 치부될 내용이 보편적인 공감을 얻게 된 것이다.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이 매우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