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달 전 국내에서도 개봉했던 동명 영화 '바시르와 왈츠를'을 만화로 각색한 책. 만화로 각색한 것은 한국이 처음이라고 한다. 영화는 극장에서 봤었다. 아주 굉장한 영화였다. 리뷰 제목을 '역시 보통 영화가 아니었다'라고 붙일 정도였다(리뷰 http://blog.naver.com/areudel/40058747698).
만화책으로 봐도 영화의 느낌은 생생했다. 만화로 봐서 더 좋은 것, 은 작품의 '이야기' 혹은 '서사'에 더 쉽게 몰입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저자 자신이기도 한 주인공 '나'의 행적과 감정이 더 잘 느껴졌다.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영화의 영상은 무척 강렬하고 인상적이다. 특히 첫 오프닝의 몇 분 간은 정말, 보는동안 아무 말도 못 하고 깜짝 놀랐다. 그 몇 분이 책에는 2쪽에 담겨 있으니까.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 건데, 이 작품 정말 대단한 작품이고 그 감독인 아리 폴먼은 더 대단한 사람인 것 같다.
작품은 폴먼 자신이 참전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시작한다. 폴먼은 친구의 이야기를 듣다 문득 자신이 군대에 있었던 기간에 대해 아무 기억도 없다는 걸 알게 되고, 함께 복무했던 친구들과 당시의 전쟁 기자와 정신과 의사 등 여러 사람을 찾아다니며 기억을 복원하고 원인을 알아내기 시작한다. 끔찍한 현장에 있어야 했던 사람들 중 일부는 그로부터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 일종의 방어기제를 만들어내는데 그로 인해 끔찍한 기억은 무의식적으로 억압된다고 한다. 폴먼의 경우가 바로 그 케이스였다. 폴먼은, 자신의 조사로 인해 견디지 못할 끔찍한 기억을 되살려내는 게 아닐까 두려워하지만 포기하진 않는다.
이스라엘은 남녀 구분 없이 모두 10대 후반 혹은 20대 초반에 징병된다. 하필 그가 징병되고 2년이 지난 1982년 이스라엘은 레바논을 침공했다. 아직 20살도 되지 못했거나 혹은 갓 20살이 된 청년들이 갑자기 총을 쥐고 탱크에 타고 평화로운 레바논의 시골 마을에서 무작정 기관총을 갈겨댄다. 그 중에서도 아리 폴먼과 일부 부대는 3000여명 이상의 팔레스타인 난민(그 중 절반이 여자와 아이였던)들이 학살된 '사브라,샤틸라 난민 학살 사건'의 현장 근처에서 학살을 두 눈으로 지켜봐야 했다.
이 학살 사건의 배경과 원인은 검색하면 쉽게 알 수 있다. 어쨌든 이스라엘 군인들이 직접 학살을 한 것은 아니지만 팔랑헤당 민병대 대원들의 학살을 돕기 위해 조명탄을 쏘아 올렸고, 학살 현장을 몇 겹의 원으로 포위해 학살이 방해받지 않도록 도왔다.
만화책을 처음 봤을 때는 다소 탐탁치 않아 했었다. 원작의 감동과 재미가 줄어들지 않을까 싶었다. 근데 읽고 보니 다른 사람들의 평처럼, 영화만 본 사람이면 만화도 꼭 보면 좋겠고 만화만 본 사람이면 영화는 반드시 보면 좋겠다. 둘 다 안 본 사람이면, 당연히 둘 다 보면 좋겠고.
다만, 컷을 끄집어내고 전개한 것은 훌륭한데 문장 번역이 다소 부족하다 싶은 부분도 있기는 했다. 아무래도 2시간 가까이 되는 것을 150여쪽의 만화로 줄이다보니 그랬을 것이다. 그치만 두 세 쪽에 불과하고, 보는 데 전혀 무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