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연재 만화를 모아서 낸 책이다. 사실 나는 웹툰을 거의 안 본다. 또래 남자 애들은 많이들 보던데. 간혹 가다가 아주 괜찮은 만화들도 있는 것 같다. 강풀 만화 전부, 위대한 캣츠비, 도자기, 이렇게 몇 개의 웹툰은 거의 다 주변 지인들의 소개로 보게 되었는데 아주 마음에 들었다. '도자기' 역시 본래 내용도 무척 좋았지만 편집 역시 깔끔하고 마음에 들었다.
최규석씨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년 쯤 전 한겨레21에서 우연히 '대한민국 원주민'이라는 만화를 봤을 때이다. 물론 그 전에도 가끔 '슬픈 공룡 둘리에 대한 오마쥬'라는 만화가 아주 괜찮더라는 이야기를 듣곤 했지만 확신을 가질 정도의 확률과 빈도로 들려온 것은 아니었다. '대한민국 원주민'을 처음 봤을 때 무척 충격적이어서 한겨레21을 꾸준히 사 보고 싶을 정도였으나 빠듯한 지갑 사정으로 자주 그랬듯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네이버 '오늘의 책'에 선정된 책들을 훑어 보다가 우연히 이 책 '습지생태보고서' 편을 발견했다. 사람들의 평이 아주 좋았다. 그전부터 갖고 있던 좋은 인상도 있고 해서 한 번 봐야겠다고 마음 먹게 됐다. 그리고 설 연휴 대구 교보에서 샀고 그 날 클럽 댓 까페에서 다 읽었다.
작가 본인의 대학 시절 경험담을 담은 단편들이다. 제목의 '습지'란 언제나 눅눅하고 심한 경우에는 물이 들어차곤 했던 반지하방 을 뜻한다. 제목이 아주 멋지다. 자기를 포함해 평균 3명의 친구가 같이 살았던 반지하방의 모습과 친구들이 만들어내는 에피소드들, 삶들을 가끔은 웃기게 그러나 대개는 둔탁한 날카로움으로 그려낸다.
그림 역시 아주 잘 그리지만 그것보다 더 멋지다 생각했던 것은 작가의 '시선'이었다. 그는 만화가답지 않게(물론 선입견이다) 책을 많이 읽고 공부를 많이 하는 사람 같다. 오늘 낮 그의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포스트 민주주의'라는 책 리뷰를 발견했는데, 이 책을 출판한 '미지북스'는 아는 선배님들 몇 분이 계시는 출판사이기도 하다. 어려운(물론 이것도 선입견이다) 정치철학 책을 만화가가 읽다니(이거야말로 아주 저열한 선입견), 솔직히 말해 놀랐다. 책 중간에도 자기 책장에 꽂혀 있던 니어링 부부의 자서전을 찾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그 멋진 시선으로 세계와 관계와 자아를 해부하는 게 이 만화의 주제는 아니다. 오히려, 그런 시선으로 세상을 보려 하지만 현실의 구질구질한 문제들에 부딪혀 자신의 초라하고 우울한 처지를 더욱 실제적으로 깨닫게 되고는 한다. 작가 본인이나 그의 친구들이나 모두 가난한 대학생들이었다. 꿈을 품고 있었으나 먹고 살 길은 막막해 보이는 대학생들. 나처럼 대체 답이 없는 애들보다 목표가 있고 꿈이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있기에 더욱 힘겹고 불쌍한 20대들.
그 삶들을, 연재 만화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마감의 급박함과, 상업적 인기를 위해 조금은 억지로 꾸민 것 같다는 느낌도 들게 되는 유머가 섞여 있긴 하지만, 딱 실제로 자신이 느껴본 만큼, 그러나 비슷한 삶의 또래들이 비슷하게 겪고 있는만큼 우울하게 그리고 즐겁게 그려낸 것 같다.
나 역시 책 뒤표지의 홍보 문구 여러 개에 동의하는데, '무언가 흐뭇하고, 가까운 친구에게 선물해주고 싶은 그런 생각이 든다. 좋은 책'임은 물론이고 '결국엔 사 버렸다. 값을 하는 단편만화'라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고, 결국은 '책을 덮고 침대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낼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