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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24와 교보문고에서 이 책 표지 이미지를 다운받았는데 이상하게 둘 다 이미지가 작다. 또 한 가지 이상한 건, 책에 '작가의 글'이라거나 '옮긴이의 글'이라거나 '해설' 같은 게 하나도 없다. 작가가 아직 살아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혹시 돌아가셨나?!
어쩌다 이 책을 사기로 마음 먹었을까? 꽤 오래 전부터 카트에 등록해 놓았다. 이적씨 서재 때문인가? 아닌 것 같은디. 기억이 안 나네. 궁금해지네. 오기 발동되기 전에 생각 접어야 겠다.
아주아주 재밌게 읽었다. 정말 술술 넘어갔다. 소설 속 주인공들의 삶을 복잡하게 얽어매는 시대적 배경이 나에게는 나름 익숙한 종류의 것이다. 혁명, 공산주의, 열정적인 광기 등등. 그래도 이 정도로 어려움 없이 재밌게 읽을 수 있었던 게 참 신기하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두번째로 읽었을 때가 1년 쯤 전인 것 같은데, 첫번째보다는 훨씬 재밌게 읽었지만 역시나 문장에 깊이 집중하면서 읽어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군데 군데 그럴싸한 구절이 많았다. 한 번 더 읽으면 더 좋은 문장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또, 역시나 고전을 자주 읽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책이 주는 '울림'이 남달랐다. 잡다한 생각도 많이 할 수 밖에 없었다. 독서 중간중간에, 그리고 책을 다 읽은 뒤 독자에게 갖가지 생각 거리를 던져주는 책은 좋은 책이다.
구성은 약간 복잡하다. 남자 주인공 루드빅의 이야기, '헬레나'라는 여성의 이야기, 루드빅의 이야기, 그의 어릴 적 친구 '야로슬라브'의 이야기, 루드빅의 이야기, 루드빅의 지인 코스트카의 이야기, 마지막 7부는 루드빅-헬레나-야로슬라브의 이야기 이다.
1940년대 후반 체코는 공산주의 혁명을 성취했다. 소련의 점령 덕택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대다수 국민들이 혁명을 원하고 있었다. 혁명의 한복판에는 언제나 청년들이 있다. 루드빅과 헬레나, 야로슬라브, 코스트카 등 모두들 당시 체코의 20대 청년들이었다. 대학생이기도 했다. 어느 날 루드빅은 가벼운 '농담'으로 인해 자신의 친구들과 동지들로부터 '트로츠키주의자'가 아니냐고 의심을 사게 되고, 의심은 날로 커져 가고, 결국 드넓은 강의실에 꽉 들어찬 수백명의 동지들은 그를 '추방'하기로 결정한다. 그는 그 날의 그 강의실을 잊지 못한다. 그가 '추방'되어 도착한 곳은 '검은 표지'를 단 자들의 군대였다. 조금 완화된 형태의 소련식 강제 노동 수용소 라고 보면 된다. 소설은 이 수용소의 풍경을 꽤 길게 담고 있다. 이 작품은 1965년에 발표됐고, 1962년에 발표된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가 폭로한 수용수의 실상이 세계에 큰 충격을 준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그리고 3년 뒤 1968년,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서는 독재적인 공산당 정부이 물러나고 수립된 개혁파 공산당 정부와 다수 시민들을 소련군이 무력 침공하여 마침내 정부를 전복시키고 많은 시민들을 숙청한 '프라하의 봄'이라는 사건이 일어난다.
어쨌든. 루드빅과 헬레나, 야로슬라브, 코스트카 등은 전형적인 인물들이기도 하다. 회의하고 의심하는 루드빅, 성적 자유를 갈망하지만 당과 신념에 충실한 헬레나, 체코 민속 음악과 전통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아왔지만 그것의 몰락을 지켜봐야만 하는 야로슬라브, 기독교인이면서 동시에 공산주의자인 코스트카. 이 인물들 각각의 시선을 통해 당시의 체코를 볼 수 있으면서 동시에 사랑과 섹스 그리고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또, 혁명, 열정, '역사'까지도.
꽤 길지만 금방 읽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보다 역사적 사건의 비중이 더 크다고 느꼈다. 어쩌다보니 쿤데라의 책을 두 권 읽었다. 또 어쩌다 보면 세 권도 읽게 되지 않을까 싶다.
좋은 책이다.
개인적인 이야기들, 그런 일들은 그저 일어나고 지나가는 데 그치지 않고 무슨 말인가를 하고 있기도 한 것일까? 나는 아주 회의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약간의 비합리적인 미신이 내게 남아 있는데, 내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그 자체 이상의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어떤 것을 <상징>하고 있다는 묘한 믿음이 그런 것이다. 삶은 삶에서 벌어지는 일들로 우리에게 말을 하고 점진적으로 어떤 비밀을 드러내 보여준다는 믿음, 삶은 해독해야 할 수수께끼로서 주어지는 것이라는 믿음, 우리가 겪는 일들은 동시에 우리 삶의 신화를 형성하며 또한 이 신화는 진실과 불가사의의 열쇠를 모두 지니고 있다는 믿음. 그것은 환상일 뿐일까? 그럴 수도 있다, 틀림없이 그럴 것 같기까지 하다, 하지만 나는 내 자신의 삶을 계속해서 <해독>해야만 하는 이런 욕구를 억누를 수가 없다. (제5부 루드빅, 23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