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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조용히좀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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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영미소설 > 영미소설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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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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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카버 (문학동네,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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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 '대성당'을 읽고 반한 레이먼드 카버. 그의 첫번째 소설집이다. 20대 후반부터 30대 후반까지, 대략 10년동안 쓴 글을 모은 단편집이다.
결혼, 알콜, 가난. 소설집 전체를 지배하는 주제들이다. 뒷부분에 실린 세 작품 '무슨 일이요?', '징후들', '제발 조용히 좀 해요'와 한 두개의 작품을 제외하면 거의 다 20쪽 미만의 아주 짧은 단편들이다. 그리고 대개의 단편들은 짧은 시간동안 정해진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아주 압축적으로 묘사한다. 평소처럼 읽다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아 한 번 더 읽은 작품들이 꽤 많다.
아주 뚜렷한 서사 같은 것도 없고 이야기를 흥미롭게 하는 요소들(기승전결)도 거의 보이지 않거나 아주 희미한 정도이다. '대성당' 역시 별로 길지 않은 단편들을 모은 소설집임에도 불구하고 두 권의 느낌은 확연히 다르다. 카버의 단편은 단지 길이가 짧다는 의미에서 '단편'이 아니라, 체호프적인 단편이기도 하고, 스냅 사진과 비슷한 느낌에서 '단편'이다.
그러나 깊다. 그리고 집중한 채로 상상해봐야 한다. 장면을 깊이 상상해보는 것이다. 두 부부의 다툼. 돌아누운 남편, 잠들지 못하는 아내. 잠들어 있는 아내, 잠들어 있다가 문득 깨었을 때 문 밖에 있는 두 개의 눈을 발견한 남편의 모습과 그의 내면, 빗소리가 시끄러운 침실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지 않냐고 아내에게 묻는 남편.
독자에게 별로 친절하지 않다고 볼 수도 있다. '제발 조용히 좀 해요'에서 작가는 등장 인물의 심경이나 하고 있는 생각들을 직접 말해주지 않는다. 인물과 인물을 둘러싼 환경과 인물에게 벌어진 사건을 아주 간결하게 묘사할 뿐이다. 비유도 많지 않다. 오히려 짧은 분량에 인물들 사이의 대화가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한편, 인물들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다양한 방식으로 반응한다. 그러나 그들은 대체로 사건을 내세우며 다가온 세상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내밀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들은 대부분 가난하다. 결혼해서 아이가 있다. 바람을 피우기도 한다. 들키기도 한다. 이와 같은 표면화된(그리고 서술된) 사건 뒤에는 그들의 일상이 거대하게 자리잡고 있다. 그들은 그렇게 가난한채로, 외로운 채로, 바람을 피운 채로 긴 시간을 보냈고, 어느 날 어떤 사건이 일어났으며, 작가는 그 사건이 발생한 언저리의 장면만을 담아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표면화된 사건과 그 것을 둘러싼 인물들의 관계와 그들의 행위만 읽을 수 있다. 그 속에 숨겨진 그들의 장대한 일상을 상상하는 독자의 몫이다. 그리고 그것까지 상상해낼 때 카버의 이 단편집을 재밌게 읽을 수 있다.
사실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압축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좀 더 친절하고 이야기가 뚜렷한 '대성당'이 더 좋다. 그치만 이 책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