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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양귀자 (살림,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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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근처 헌책방 도동고서 에서 구입한 책. 내가 산 것은 이전 판본이다. 표지가 다르다. 읽다가 책이 쩍 벌어지는 사태가 발생할 듯 하다.
양귀자 라는 이름을 여러 곳에서 많이 들어온 탓에 고른 책이었다. 1955년 생인데, 1996년 이후로 작품 발표를 하지 않고 있다. 왜? 그녀도 절필했을까? 요즘 yes24에서 조세희 선생님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세계 각지의 유명 도서관에 지원해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조세희 선생님도 절필한지 무척 오래 되었다. 가끔 인터넷 언론에서 인터뷰한 기사를 읽는 정도로만 근황을 접할 수 있다. 사진기를 들고 다니며 사회적 약자들의 투쟁을 담고 계시다는 소식도 몇 년 전의 것이다.
1992년에 발표된 작품이다. 이 작품을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인가, 를 두고 약간의 논쟁이 있었던 모양인데 나는 페미니즘 문학에 대해서 아는 게 전혀 없으므로 뭐라 말하긴 힘들겠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들, '이갈리아의 딸들', 김형경 작가의 소설들 등을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쨌든 나는 읽어본 작품이 하나도 없다. 부끄럽다.
소설은 한국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말하고 있다. 강민주, 라는 부유한 여성이 주인공인데, 작가 자신의 말처럼, 아마 그녀는 90년대 초반 대다수 한국 여성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여자가 아닐까 싶다. 부동산 수입 덕택에 일하지 않고도 풍족하게 살고, 대학원 진학 등 학문의 길에 욕심이 있고, 돌아가신 어머니가 돌봐준 어느 집안의 충직하며 주먹 센 남자가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한다. 그녀는 절대적으로 자신을 믿을 줄 안다. 무엇보다 같은 여성의 삶에 공감할 줄 알면서도 결국 사회의 시선과 자신이 만든 계율 속에서 고통스러워 하는 많은 여성들을 비판할 줄도 안다. 한마디로 '초인'같은 인물이다.
페미니즘, 혹은 여성주의, 라는 화두는 한국에서 아주 유용한 리트머스 시험지로 쓰일 수 있다. 20살 이상의 남자를 상대로 여성주의, 여성의 삶, 페미니즘, 같은 단어를 언급하며 이야기를 아주 조금만 진행시켜 보면 그가 마초인지 아닌지 단박에 알게 된다. 소개팅 같은 자리 말고 술자리에서 꺼내면 더욱 적나라하다. 별다른 관찰 없이 그냥 딱 보기에도 마초인 남자들 - 자기보다 나이 어리면 그냥 툭 반말 까는 인간, '여성부'가 왜 있냐고 말하는 인간, 군가산점제 존치에 찬성하는 인간, 여자들도 군대 가야한다고 말하는 인간 - 이야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물론 본인이 마초가 아니어야 알아챌 수 있겠지만 말이다.
얼마 전 티비에서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의 '악어떼'라는 노래를 들은 적이 있다. 마초들(악어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야만 하는 악어새들에 대한 노래이다. 한국 사회에서 마초들을 피하며 살 수 있는 길이란 전문직 프리랜서가 되거나, 예술을 하거나, 아니면 아주 적은 몇 몇 회사에 입사하거나 가 아닐까. 나 또한 평생 마초들을 만나지 않고 살고 싶지만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아서 고민 중이다.
그렇게 적나라한 마초들 말고, 아주 온건한 마초들에 아마 절대 다수의 남자 대학생이 포함되지 않을까 싶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백승하 라는, 만인의 특히 여성들의 인기를 한 몸에 얻는 인기 남자 배우가 전형적인 인물이다. 헌신적인 가장, 이라고도 적절히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헌신적인 가장'은 착하다. 왜냐, 헌신적이니까. 가족을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한다. 아내를 지극히 아낄 줄도 안다. 그러나 그는 그 스스로를 '가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남자)가 가족을 이끌어야 한다. 그 스스로 인식하는 논리는 여기까지 일지 몰라도, 논리는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남성 우월주의적으로 확장된다. 아내가 집안일 이외에 활동을 한다거나, 아이를 보육원에 맡기고 일을 하고 싶어 한다거나 할 때 반대하는 경우처럼. 물론 그 한 가족의 경우만 생각해보면 아내이자 어머니인 여성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범위를 수용함으로써 화목하고 평화로운 일상으로 정착할 가능성이 훨씬 많다. 자애로운 어머니와 듬직한 아버지의 전형.
소설의 줄거리는 흥미롭다. 강민주 는 인기 배우 백승하를 납치해 감금한다. 모든 여성들이 선망하는 백승하, 그가 납치된 동안 누구에게나 있을 치부들이 공개될 것이고, 그녀들은 실망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현실의 모순을 인내하는 자위 수단인 백승하를 깨뜨려버림으로써 고통받으면서도 인내를 선택하는 여성들에게 경고하고 싶은 것이다.
결말은 다소 예상 밖이다. 초,중반부 강민주의 강렬한 카리스마가 사라짐으로써 소설 전체의 힘도 아쉬워진 느낌이었다. 그러나 작가 본인이 강민주의 삶을 그렇게 결말지은 것에 대해서 딱히 반대하거나 비난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15년이나 지났는데도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건 여전히 너무 힘들어 보인다. 

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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