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놈들의제국주의한중일을위한평화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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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우석훈 (개마고원,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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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고 나서, 혹은 책을 내내 읽으면서 했던 생각은 딱 하나, '아 끔찍하다, 아 두렵다, 너무 두렵다'.

책의 내용을 짧게 정리해보면 이런 것이다.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의 내부적 구조(경제와 정치와 10대, 20대들의 전반적인 생각을 좌우하는 문화 등)를 살펴봤을 때 30년 안에 역내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매우 높다, 그런데 그 중에서 중국과 일본은 그나마 더 버틸만하고 상황을 개선할 여지가 있겠는데 한국은 아무래도 힘들어 보인다, 한국이 가장 문제이다, 뭐 이런 전망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런 결론에 대한 근거를 주로 경제학적으로 분석해 내고 제시한다. 얼마 전 후배와 책에서 읽은 내용을 이야기하다 목소리가 높아진 적이 있다. 사실 88만원 세대 이후로 나는 우석훈씨의 생각과 전망과 대안에 거의 대체로 공감하는 편이다. 이 사람의 삶이 보여주는 진정성을 믿기에 사람 자체도 신뢰하는 편이다.

나는 그의 책을 읽으면서 '아냐, 그렇지 않아요!'라고 말할만한 것들을 거의 발견할 수가 없다. 지금까지 내가 알아 온 좌파 경제학자(한국에 사는 좌파 경제학자 자체가 거의 없긴 하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좌파들은 거의 철학, 사학, 정치학, 법학을 전공하지 인류학이나 경제학을 전공하는 경우는 보기 힘들다) 중에서 시장과 정부, 국가에 대해 시원한 분석과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정말이다. 그의 책과 칼럼을 읽으면서 묘한 시원함을 맛보곤 했는데 친구랑 이야기하다가 뒤늦게 깨달았었다.

지금 한국의 경제적 약자들에 관한 문제 중 제일 시급한 것 세 가지를 생각해보자.

첫째, 십대들의 억압에 관한 문제를 해소하는 것이다.
둘째, 이십대들의 비정규직에 관해 다른 접근방식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셋째, 농업의 생태적 전환에 관한 문제이다.

이 문제들을 사회적 논의의 장으로 모아내는 총파업이 우리 사회의 한 단계 진화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물론 정상적으로는 대화로 가능한 일인데, 대상이 한국의 극우파들이라는 데에 문제의 참담함이 있다. (272쪽)

저자는 상황이 매우 우울해 보이고, 자신의 능력으로는 이 상황을 피할만한 가능성을 만들어내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그는 경제학자로서 바라는 궁극의 세계는 아마 '전쟁 없는 세계'가 아닐까, 라고 말하면서 어떻게든 한국이 포함된 동북아시아의 전쟁만큼은 피하고 싶은 게 이기적인 솔직한 심정이라고 고백한다. 

사실 대안이야 당장 쉬운 것들도 많다. 국내 경제 위기 극복? 과외 금지 총투표, 대학 서열제 철폐 국민 총투표 같은 걸 해보자. 물론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리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과외 금지 총투표를 하면 아마 60~70%의 국민들이 찬성표를 던질 것이고, 사교육 시장의 인력은 공교육 체계로 흡수해 국가가 책임지면, 과외할 돈으로 국민들이 뭘 하겠냐, 소비를 할 것이고, 특히 중산층 이하의 시민들은 사치재보다 생필품이나 국내 생산품을 살 것인데 이게 내수 진작 아니겠냐는 거다. 내가 생각해도 틀린 말이 별로 없다.

지난 2004년과 2005년 봄만 되면 이라크 파병 반대를 외치며 서울 시내 곳곳을 무수히 뛰어 다녔다. 고3이던 2003년, 학교에서 자습하다가 미국이 발사한 미사일이 바그다드에 떨어지는 장면을 교실 텔레비젼으로 본 기억이 생생하다. 그 날 일기에 적은 내용도 마찬가지. 지구 저 편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내가 사는 이 곳에서 나를 구속하는 학교라는 감옥, 뭐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이 파병 논의를 이끌 당시 '국익' 운운하며 적어도 절반은 되는 국민들이 파병에 찬성했다고 한다. 물론 그랬을 것인데 지금까지 전혀 생각지 못했었다. 절반의 국민들이 '이익'을 이유로 타국을 '침략'하는 것을 찬성했다! 이게 제국주의가 아니고 뭘까? 그 생각이 들자 순간적으로 두려워졌다. 나는 제국주의 국가의 국민이구나. 나의 이익을 대변한답시고 나의 조국은 전쟁을 벌였었구나...

나는 나의 미래가 두렵고, 언젠가 태어날 나의 자식이 전쟁의 희생양이 될까 두렵고, 전쟁에 찬성했을 절반의 한국인들이 무섭다.

 
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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