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글이 함께 있는 책이다. 이런 종류의 책은 거의 처음 읽어보는 것 같다. 보통 사진과 글이 함께 있는 책이라 하면 여행기 일텐데, 여행기를 워낙 싫어한다. 그렇지만 이 책은 여행기가 아니다. 글과 사진이 어쩔 때는 이야기를 이어주지만, 또 어느 부분에서는 사진과 글이 각각 따로 말을 하기도 한다. 사진들은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의 모습 정도로 참혹하진 않았다. 그러나 서유럽과 북유럽의 주요 선진국들이 국내에서 가지고 있는 가장 비인간적인 장면들이라 할 수 있는 게 이민자들의 모습일 것이다. 그래서 자세히 살펴 보았다.
음. 이주노동자 문제에 관심도 많고, 집회에 자주 나가고,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실제로 만나본 적도 많지만, 그들이 다른 나라에 오기까지 그리고 도착해서 일하는동안 어떤 종류의 감정을 느끼며 살고 있는지 무척 궁금했었다. 이 책이 그런 호기심을 많은 부분 해소해줬다.
저개발되었다는 것은 단순히 강탈과 착취를 당했다는 것만이 아니다. 인위적인 울혈 증상에 걸린 채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저개발은 그냥 죽일 뿐만이 아니다. 그 치명적인 정체는 삶을 부정하며 죽음을 닮아 있다. 그 이민은 살고 싶어한다. 그를 이민을 떠나도록 강요한 것은 빈곤 하나만은 아니다. 자신의 개인적인 노력을 통해서, 그는 애초에 자기가 태어났던 환경 속에는 결여되어 있는 역동성을 회복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34쪽)
다른 사람의 경험을 이해하려면, 어떤 세계의 안에 들어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본 그 세계의 모습을 해체하여 자기 시각으로 재조립해 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이 행한 일정한 선택을 이해하려면, 그가 부닥쳤거나 거절당했던 다른 선택들의 결핍 상태를 상상 속에서 직시해 보아야 한다. 잘 먹는 사람들은 못 먹는 사람들의 선택을 이해할 수 없다. 서툴게나마 남의 경험을 파악할 수 있으려면 그 세계를 분해해서 재조립해 봐야만 하는 것이다. 남들의 주관 속에 들어가느니 하는 얘기는 오해에 이를 여지가 있다. 남들의 주관이란 똑같은 외부적 사실들에 대해서 단순히 내부적인 태도만이 다른 걸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그 중심부에 놓여져 있는 사실들의 별자리 자체가 다른 것이다. (97쪽)
노동 조건과 생활 환경의 개선, 사회복지, 의회민주주의, 현대 기술문명의 이기 같은 것들은 과거의 비인간적인 것들이 우발적인 것이었을 뿐이라는 주장에 핵심적으로 인용되는 말들이다. 도시 중심지역에서는 그런 주장이 일반적으로 신봉되고 있다. 거기서는 착취의 가장 적나라한 형태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 것은 지구 반대쪽 끝의 제3세계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지구 반대쪽'이라는 개념은 지리학상으로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해당된다. 파리시 교외의 '판자촌' 같은 것은 거기에 속한다. 지하실에 파묻혀서 잠자고 있는 이민들도 거기에 속한다. 그들은 거기에 있다. 그러나 그들은 보이지 않는다. (102쪽)
자아의 몇 가지 국면은 이민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에 의해서 부정된다. 그는 성적인 개체로서의 자연스러운 존재도 없고, 정치적 개체로서의 법률적 존재도 없는 인간이다. 터널 안에서 노동을 하는 한, 그리고 그 동안만 거기 있는 것이 묵인되고 있는 사람이다. (176쪽)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선물해주고 싶은 책이다. 여러 사진에서 이민자들의 눈빛을 발견할 수 있는데, 특히 어느 남성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사진을 생생하게 남아 있다. 정말 '죽은' 눈빛. 가장 공허한 눈빛. 철저히 부정당한 눈빛.
책이 담고 있는 이민자들은 주로 유럽에서 가까운 나라 출신이다. 터키와 동유럽 출신 노동자들이다. 이 책이 특이한 점은 이민자들의 삶을 단지 스케치하거나, 그들과 동행한 시간을 기록한 르포도 아니고, 또 온갖 통계들로 정밀하게 기록한 것도 아니었다. 한 이민자를 주인공으로 삼아 3인칭 시점으로 그가 고향을 떠나 일자리를 구하고, 공장에서 일하기까지를 보여 준다. 소설처럼. 그 사이사이에 이민자의 삶에 대한 작가의 이야기가 들어가 있는데 정말 훌륭한 문장들이 많다.
꼭 선물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