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신이읽는젊은작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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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박범신 (문학동네,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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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블로그에도 소개한 적 있는 '책나누며읽기'에서 받은 책. 여러 사람이 눈독 들인 책인데 운 좋게 내가 걸렸다.

박범신씨가 사회자 겸 진행자를 맡아 이기호, 심윤경, 백가흠, 오현종, 손홍규, 이신조, 김도연, 김종광, 김종은, 김도언, 김숨, 박성원 12명의 작가를 좌담회 비슷한 자리에 초대해 나눈 이야기를 글로 정리한 것이다. 매주마다 한 사람 혹은 두 사람과 함께 작가의 데뷔작 혹은 최근작을 텍스트로 삼아 참가자들이나 사회자가 질문하고 작가가 대답하고 또 그러면서 자기 이야기도 하고 그러는, 편안한 자리로 느껴졌다.

작가들은 한 사람은 제외하고는(아마 김종은씨) 거의 다 70년대 생이라고 한다. 요즘 이 작가들을 '젊은 작가들'이라고 보기에는 좀 무리가 있겠지. 이제 다들 30대 중반 혹은 후반이고, 이들은 거의 다 90년대에 등단한 작가들이다. 그보다는 80년 생인 김애란씨가 있고, 2008 민음사 오늘의작가상을 수상한 84년생 고예나씨도 있고, 2007년 문학동네 작가상을 수상한 정한아씨도 생년은 모르지만 20대 중반이다. 그리고 사실 나는 이들 12명의 작가보다 이제 마흔이 넘었을 박민규씨가 더 젊다고 생각한다. 박민규, 김애란, 고예나, 정한아 이런 작가들을 하나로 묶어 보는 게 오히려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2000년대에 등단한 작가들이라는 점에서도 그렇고. 

박범신씨가 말한대로 열 번 가까운 만남을 통해서 이 시대 한국 문학의 현재와 분위기, 그리고 미래의 전망 등에 대해서 어렴풋한 증거들을 얻었던 것 같다. 이기호, 김종광, 김종은 이렇게 세 사람은 책을 읽고 난 뒤에 관심이 부쩍 생겨서 언젠가 책을 한 권 씩 사서 읽어보자고 다짐했다. 특히 김종은은 놀랐던 게 요즘 젊은 작가들 중에 스스로를 '카프'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다. 백가흠, 오현종, 이신조, 김도언, 김숨 이 작가들은 나랑 별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물론 매번 자리가 파할 때마다 박범신씨가 "이 작가들을 만났으니까 여러분들이 이 분들의 책을 사서 읽어보시고 이들을 계속 지켜봐주셔야 된다"고 말하는 것에 적극적으로 공감했고 당장 작가들의 아주 적은 말들만 접한 것일 뿐이기 때문에 기회가 닿는대로 일단 작가로서 성실하다 생각되는 사람의 작품은 읽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참, 참고로 김도언의 '기호태전'은 1학년 때 독후감 첫 텍스트였다. 대체 이게 무슨 소리야 그러면서 어거지로 독후감을 썼던 기억이 난다. 알레고리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그랬구나, 싶었지만 어쨌든 그 때 기억도 그렇고 아마 지금봐도 마찬가지일 거다.

책이 나온 것은 2007년 여름인데 행사는 2005년 즈음 열렸던 것 같다. 내가 책을 읽으면서 어떤 작가를 마음에 들어했는지는 어떤 구절을 접어 두었는지 지금 확인해보니 확연하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박범신씨가 젊은 작가들의 작품들에 대한 전반적인 감상평과 진단을 말하곤 하는데 정말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김애란이 이들 작가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박민규에게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이다.

박범신 "그러니까 세속적으로 울타리를 뚫고 나가야 된다는 게 아니라 조금 더 밀 수 있는 내면적인 치열한 힘 같은 것이 혹시 부족한 것은 아닌가, 치열한 열망과 욕구를 향하여 나아갈 수 없기 때문에 이런 미궁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약간 공격적인 질문이었습니다.

제가 '박범신이 읽는 젊은 작가들'을 진행하면서 늘 안타깝게 느끼는 건데, 많은 젊은 작가들이 세상 속으로, 그야말로 이야기를 들고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어요. 물론 작가들 탓만은 아닙니다. 저도 잘은 모르지만 심층적으로 분석하면 오랫동안 얘기해봐야 할 문제라고 봐요." (164쪽)

김종광 "저는 지금 같은 경우에 사실 이 말 밖에는 할말이 없는데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고에다가 결정적으로 성욕과도 같은 열정, 욕망, 집념, 의지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없으면 안 되고 이것이 있어야 뭐가 돼도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리고 필사는 좋다니까 꼭 한번 해보세요. 소설을 써볼까 하는 후배님들은 만약에 작가가 되지 못하면 자살하겠다는 각오로 소설을 쓰시고 아니면 편하게 안 쓰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192쪽) 

김종은 "그리고 주인공이 대부분 젊은 친구들인데요, 그 이유는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저와 같이 데뷔한 사람들 중에서 제가 제일 실력이 없기 때문이에요. 소설 자체가 허구이긴 합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작가가 가장 잘 알고 있는 부분을 썼을 때 같은 허구라 할지라도 좀더 진짜 같고, 낯간지러운 말로 하자면 진실된 글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제가 젊은이들을 주인공으로 쓰는 이유는 아주 단순해요. 제가 그나마 그들과 가장 가까운 동년배이니까 제가 보았던 친구들, 선배들, 후배들의 이야기를 어느 정도 가슴속에 담고 있었던 것과 들었던 것들을 표현하기 때문에 주인공은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었어요." (198쪽)

박범신 "젊은 작가들 작품들을 쭉 읽으면서 큰 특성의 하나로 내가 느낀 것은, 우리 시대의 작가들은 지금의 젊은 작가들에 비해서, 좋은 뜻으로 얘기하면, 매우 정직했다고 봐요. 우리는 가난하고 배고프게 컸기 때문에 가난하고 배고픈 것에 대해서 문학으로 많이 말을 했어요. 지금 활동하는 젊은 작가들도 그것이 연애에서의 상처이든 배고픈 기억들이든 어떤 가족사의 비극이든, 이를테면 우리 어머니가 세컨드였기 대문에 가슴이 아팠든, 다 상처 없는 인생이 어디에 있겠어요. 다 상처가 있기 때문에 이 짓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내가 젊은 작가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의 하나는,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절실한 상처들에 대해서 소설을 통해서 정직하게 진술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는 거예요. 나는 자기 삶에 대한 어떤 반응이 문학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어떤 의미에서 볼 때에는, 지금 삼십대의 젊은 작가들은 그런 반응으로부터 좋게 보면 어떤 갭을 두는 것처럼 보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부정적하다, 이게 내 독후감 중의 하나였어요." (272쪽) 

박범신 "아무튼 여기에 모신 작가들은 미우나 고우나 우리 문학의 미래입니다. ... 좋으나 싫으나 우리는 모국어를 버리고 살 수 없습니다. 독자 없이 작가는 본질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은 여러분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여러분이 한국문학을 키우고 그 그늘에서 크게 위로받고 깊어지길 바랍니다." (277쪽)

 책을 읽는 도중에 들었던 생각인데. 특히 몇 몇 작가들의 말에서 이런 걸 느꼈는데.

'나는 작가들의 자립적인 세계에 대한 맹신 혹은 자부 를 좋아하지 않는다. 자기 소설의 세계에 대한 침범을 허락하지 않는, 동시에 침범을 방관하기만 하는, 자신의 세계에 대한 맹목적인 거부이면서 무책임한 유기의 태도를 여러 70년대 생 작가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나는 소설의 '힘'을 바라면서 소설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독서의 첫 시작이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를 것이다. 소설 자체에 적든 크든 '힘'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힘 있는 사람들이다. 소설을 구성할 재주가 있고 수상하면서 사회적 지위를 획득한 사람들이다.

나 스스로 주의해야 할 것은 작품을 대함으로써 진정성을 획득한 말들을 기회주의적으로 훔치는 태도를 경계하는 것이다. 나의 문학의 당위의 영역으로 교묘히 거짓으로 말하지는 말자.'

좋은 책이다. 정리도 잘 되어 있고. 한 젊은 독자에게 한국 문학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는 점만 봐도 정말 좋은 책이다.

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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