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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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로맹 가리(에밀 아자르) (문학과지성사,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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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고잉에서 발견해 도서관에 빌려 읽는동안 감동에 부르르 떨다가 채 다 읽기도 전에 YES24에 주문했다. 이 정도면 소장할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지금은 친구에게 빌려줬다.

1956년에 발표한 소설. 마찬가지로 아프리카를 다룬 치누아 아체베의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는 1958년에 발표. 50년대 중반이라니, 당시의 한국을 생각해보면 참 가슴이 아파온다.

책을 읽으며 엄청나게 많은 쪽을 접어 두었다. 유례가 없을 정도로. 책은 600쪽이나 된다. 꽤 많다. 어떤 사람은 한달이 넘게 이 책을 읽었다고 한다. 나는 3일만에 다 읽었다. 물론 내가 시간이 많긴 하지만, 너무나 흥미로웠다고밖에 말할 수가 없다.

고등학교 때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사서 읽었다. 제목의 신비함과 작가의 경이로운 삶이 책을 사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그 소설집의 단편들은 대체로 친절한 편이 아니었고, 나는 어렸다. '왜 이렇게 어려운데!'라고 외치며 그래도 끝까지 읽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흥미롭게 읽은 작품도 몇 개는 있었다.

그러나 '하늘의 뿌리'는 두꺼운만큼 친절한 편이다. 온갖 인물들의 생각들이 구구절절하게 쏟아져 나온다. 한 문단이 두 쪽을 넘기도 한다. 그러나 친절하다고 해서 김이 빠지는 것은 아니다. 여러 인물들의 말 사이에서 나는 각각의 인물들이 되어 서로 충돌하는 것을 경험한다. 머리 속이 복잡하다. 무엇이 옳고, 누가 옳은 것인가?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 중에 '악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바이타리마저도 그렇다. 그가 불길한 권력욕에 빠져 있고, 현재 여러 아프리카의 독재자들과 마찬가지인 인물이 될 것임을 강력히 암시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소설 속의 그는 아프리카 인민의 삶의 개선과 제국주의 타도, 아프리카의 근대적 독립을 위해 노력하는 인물이다. 아래는 콩데 지사의 말이긴 하지만 바이타리와 같은 인물의 입장을 대변해준다.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닌 것이다.

이보게나, 로랑소. 지금 이 시각 세상에는 우리의 그 친구나 자네가 헌신적인 정성을 바칠 만한 이유나 가치, 코끼리보다 좀더 가치 있는 무엇이 존재하는 것 같지 않나? 이를테면 자유 같은 것 말일세. 우리는 아직까지는 절망하길 거부하는 사람들일세. 낙담해서 짐승한테 위로받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란 말이네. 사람들은 이 순가에도 강제노동수용소에서, 전체주의의 감옥에서 싸우며 죽어가고 있네... 먼저 그들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걸세. (89쪽)

한편 모렐 역시 맹목적인 백인 코끼리 보호주의자는 아니다. 원주민들의 사냥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입장을 취한다. 현대의 생태주의를 위해서도 좋은 지침이 될 것이다.

원주민들에게는 적어도 구실이 있다. 그들 식량에 단백질이 모자란다는 구실이다. 그들은 먹기 위해 코끼리를 사냥한다. 코끼리가 그들에게는 고기인 것이다. 그러니 코끼리를 보호하려면 먼저 아프리카의 생활 수준이 향상되어야 한다. 이는 자연보호를 위한 모든 캠페인의 선결 조건이다. 그러나 백인들은 어떤가? ... 그녀는 첫마디에 곧 명료하게 이해했다. 이 사람에게도 고독이 문제라는 것을. (57쪽)

가장, 가장 감동적이었던 것은, 역시나 '코끼리'였다. 이 구절을 읽고 나는 눈을 감고 상상해봤다. 숲의 나무들이 하나 둘 씩 쓰러진다. 땅이 흔들린다. 기괴한 울음소리가 하늘과 땅에 가득하다. 나는 두렵다. 곧이어 그들이 나타난다. 나는 그들에게 짓밟히지 않도록 도망쳐 조금 멀리 떨어진 높은 곳에서 코끼리들의 돌진을 바라본다. 그들의 눈이 보이는 것 같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한 친구가 독방에서 며칠을 보내고 나서 떠올린 생각인데, 폭과 길이가 각각 일 미터 오십 센티미터에 일 미터 십 센티미터인 독방이었죠. 그 친구는 감방 벽 때문에 질식할 것처럼 느껴지면 자유로운 코끼리 떼를 상상하기 시작했죠. ... 우리는 감방에서 더 견디지 못할 상태가 되면 아프리카의 확 트인 공간을 돌진하는 이 거대한 동물들을 생각하기 시작했죠. 그러자면 엄청난 상상력이 필요했어요. 하지만 그 노력이 우리를 살아있게 해주었죠. 홀로 남아 기진맥진한 채 우리는 이를 악물고 미소를 지었으며, 눈을 감은 채 지나는 길마다 모든 걸 쓸어버리는, 그 무엇도 멈춰 세울 수 없는 우리의 코끼리를 보았죠. 그 경이로운 자유의 발길 아래로 땅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고, 시원한 바람이 우리의 폐를 채우는 것 같았죠. (60쪽)

... 아프리카를 가로질러 달리는 자유로운 코끼리 떼를, 벽도, 철조망도, 아무것도 거칠 게 없는 수백의, 수백 마리의 경이로운 짐승을, 툭 터진 공간을 가로질러 달려들어 지나가는 길에 모든 것을 뭉개버리고, 모든 걸 뒤엎어버리는 수백의, 수백 마리의 코끼리를 생각해봐. 살아 있는 한 그 무엇으로도 그들을 멈추게 할 수는 없지. 바로 자유란 말이야! (259쪽)

사실 이 '자유'라는 개념도 복잡하다. 분명 코끼리떼의 자유는, 근대 자유주의의 '자유'였다. 방해받지 않을 자유.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유. 현대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유를 이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고대 폴리스에서처럼, 공화주의적인 자유도 있다. 모두(공동체)를 위해 이로운 행동을 하는 것이 곧 자유로운 행동이라고 생각했던. '하늘의 뿌리' 역시 근대적인 개념이 지배하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충분히 이해된다. 강제수용소와 전체주의의 감옥은 근대적 자유의 가장 효과적인 생산지일테니까.

그래도 이런 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눈을 감고, 돌진하는 코끼리떼를 상상하면서 나는 감동했다! 이것이 중요하다!

어쩌면 오해할지도 모르겠다. 생명 일반에 대한 존중으로, 죽음에 대한 존중으로 모렐이 코끼리 떼를 지키는 것 아니냐는. 이 문제는 작가의 현명함 덕택에 책 속에서도 주요한 논쟁거리이다. 그것만은 아니다. 모든 인간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게 그의 설명.

그가 보호하는 것, 그것은 인간미의 여지요, 하나의 세계였다. ... 전체적인 효율과 절대 수익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삶의 체재로 떠받들어지는 땀과 피를 무시하고, 그는 인간이 수레바퀴 속에 기인 바퀴살로 영원히 남을 수 있도록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할 작정이었다. 그는 유용한 이익도 손에 잡히는 효율성도 없지만, 인간의 영혼 속에 불멸의 필요로 남아 있는 것이 숨어 살 만한 여백을 옹호하고 있었다. (223쪽)

이슬람에서는 이것을 '하늘의 뿌리'라고 부르오. 멕시코 인디언들에게는 이것이 '생의 나무'로, 모두들 그 앞에 무릎을 꿇고는 눈을 들어 아프도록 가슴을 두드린다오. 모렐 같은 고집쟁이들이 청원서며 투쟁위원회, 보호조합 등을 통해 밖으로 드러내려 애쓰는 어떤 보호 욕구 말이오. 그들은 가슴속에 깊이 묻힌 이 하늘의 뿌리들을 드러내려는 겁니다. (273쪽)

인간의 영혼 속에 불멸의 필요로 남아 있는 것이 숨어 살 만한 여백. 아직은 숨어 살아야 하지만, 먼 미래를 위해 분명 살아있어야만 하는 어떤 것. 그것이 존재하기 위한 여백, 코끼리떼. 묘하게 감동적이다. 다시 한 번 안타깝고 슬프다. 1956년의 프랑스에서는 이런 소설이 나온 것이다! 50년 전에 말이다.

내가 전적으로 동의하는 부분을 옮겨 본다. 이 지점에서 결정적으로 나는 바이타리의 독립군에 들어갈 수 없었다.

...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듯이, 자기 자신밖에 모르고 코끼리 따위에는 개의치 않는 민족주의란 이 세상에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어리석은 바보짓거리 가운데 하나야. 인간은 그런 바보짓거리를 여럿 만들었지. (374쪽)

마지막으로. 인디고잉에는 이 책을 읽고 쓴 서평이 여럿 실려 있다. 서평을 쓴 사람은 모두 10대 후반의 청소년들이었다... 내가 그 나이 때에 이 책을 읽었다면 매력적인 표지에 책은 샀겠지만 지루해서 던져버렸을 가능성이 높다.

인디고 서원, 멋진 곳이다. 그곳의 청소년들이 부럽다.

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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