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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봄, 소나무 출판사에서 포이동 인;연맺기학교에 후원금을 전달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었다. 그 돈의 역사는 대충 이렇다.
교통안전을 재미난 마술을 곁들여 여러 초등학교에서 가르치는 어느 어르신이 계신단다. 많은 아이들이 학교 앞 도로에서 다치고, 집 앞 도로에서 다친다. 차 때문에 쿵, 자전거에 쿵. 소나무 출판사는 이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책으로 내게 되었다. 저자이신 할아버지는, '돈이라곤 얼마 남지 않겠지만 단 20만원이라도 출판사 분들 회식하는데 쓰세요'. 실제로 많이 팔린 것처럼 보이진 않는 책이었다. 출판사에 일하는 사람들은 이 돈을 먹고 싸는데 쓰기 보단, 뜻있게 쓰자고 입을 모았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포이동 인;연맺기학교였을까? 그 사연은 뭔고 하니 다음과 같다.
그 연락이 오기 한달 전, 대안교육 출판사 민들레에 방문했다. 한참 공부방에서 대안교육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고민하고 있던 때였다. 그래서 전화연락한 뒤 무작정 찾아갔던 것이다.
민들레 출판사는 가정 집을 개조해서 쓰고 있었는데, 마당에는 고양이도 한 마리. 밥먹을 때는 사무실 안 부엌에서 고등어 한마리 구워서 뜨듯한 밥 한 공기. 여튼 그곳 관계자 분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당시엔 재정이 많이 부족했다, 욕심도 많았던 때니까).
며칠 뒤 소나무 출판사는 민들레 출판사에 전화를 했다. 남는 돈이 조금 있는데, 도움이 필요한 야학이나 공부방에 후원을 하고 싶다고 했다. 마침 며칠 전 방문한 포이동 인;연맺기학교라는 곳이 기억이 나, 소개해주었다.
돈을 받기 위해 6호선 망원역에 내려 허허벌판을 헤쳐가며 출판사에 찾아갔다. 출판사 역시 빌라 한 층을 개조해서 쓰고 있었다. 돈을 받은 뒤 밥 한 끼를 얻어 먹었다. 출판사에 계시는 분이, '출판하고 남는 책들이 저기 책장에 있으니 마음껏 가져 가세요'랜다. 더불어 공부방에 기증할 책도 20여권 전해 주셨다.
들고 갈 길이 두려웠지만, 실제로 책은 별로 읽지 않지만, 책 욕심은 무척 많은 나다. 그래서 이 책 저 책 마구 골라서 가져오게 되었다.
그 때 기증받은 책 20여권 중에 바로 류진운 소설집 '닭털 같은 나날'이 있었던 것이다.
이 소설집은 중국의 류진운 작가가 쓴 세 편의 단편(중편?)을 모아 놓았다. '닭털같은 나날', '관리들 만세', '1942년을 돌아보다'. 각 작품이 무척 재밌다.
'닭털같은 나날'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재밌게 그려낸다. 추가로 중국 사회의 일반 시민들을 둘러싼 사회적 환경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도 있다. 딱딱한 사회과학 서적 읽는 것보단 훨 좋다.
소설 속 주인공 임가의 말을 빌자면,
"사실 세상일이란게 아주 간단한 거야! 하나의 이치를 깨닫고, 그 이치에 따라 처리하면 생활은 흐르는 물처럼 순탄하고, 그렇게 하루하루 지내면 아주 편한 거야. 세상이 편하면, 지구도 그에 따라 추웠다 더웠다 하는 거라구."
촌지를 주지 않아 속상해 아는 자식을 위해 교외를 뒤져 가며 숯을 사 유치원 선생에게 전달한 뒤 그에 기뻐하는 아내가 만들어준 닭과 맥주 한잔을 마시며 한 말이다. 평생을 피곤에 쩔어 사는 소시민의 처세술을 아주 잘 요약해 놓았다.
"돈이 있으면 결국 기분 좋게 지낼 수 있는 것이다. 9일 동안 180원을 벌어, 아내에게 바람막이 옷 한 벌을 사주고, 딸에게는 하미과를 5근이나 사 주었다. 모두들 즐거워했다. 체면이나 상사의 몇 마디 꾸지람 따위는 이런 즐거움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루 종일 그를 상심하게 만들었던 선생님의 일은 기억 저편으로 던져지고 말았다. 죽은 사람은 이미 죽었으니, 더 생각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살아 있는 사람은 역시 배추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그는 또 생각했다. 배추를 다 정리하면, 아내가 전자렌지로 닭을 구워 줄 것이고, 맥주를 내 줄 것이다. 그러면 그로서는 전혀 불만스럽지 않은 것이다."
그것에 옳고 그름의 판단을 덮어 씌우기 보다, 나는 이 소설을 읽는내내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마치 노래방에 가면 빼놓지 않고 '절룩거리네'를 부르는 것처럼. 그런 삶을 살고 싶은 생각도, 살고 있다고 생각해본 적은 한번도 없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 삶 전체가, 우리의 삶 전체가 김빠지고 허무한 것 같다고 느낄 때가 있다. 나는 그렇다.
한 번 읽어볼만한 책이다. 참 책 뒤에 황석영씨의 추천글도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