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세트(전2권)박민규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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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박민규 (창비,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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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별 생각 없이 읽었다. 다 읽은 뒤 다른 사람에게 추천했더니 기어코 자기 돈으로 책을 사왔다. 그러고는 단편 하나 읽을 때마다 와서 내게 묻는다. 이건 왜 이런 거냐고.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고. 할머니는 왜 사라진 거냐고. 왜 서로의 기억이 다른 거냐고. 그럼 나는 내 딴에는 앞뒤 따지며 가장 개연성 있어 보이는 사연을 추측해 들려 준다. 근데 자신이 별로 없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나. 그러면서 동시에 대체 나는 왜 이런 생각을 안 했던 걸까,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이유가 있는 것 같기도 했고.

기대한 만큼 좋진 않았다. 책을 읽던 한 친구가 말했다. 박민규 본인이 선언했듯이, 이 작품집 전체에서 작가의 무분별한 자기복제가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고.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아무 상관 없는 건지는 고민해 봐야겠다면서. 듣고 나니 음, 끄덕끄덕. 작품 속 무대와 소재는 이렇게 다를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다양한데 읽고 난 감상, 느낌은 비슷비슷하다. 문장도 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이야기를 꺼내는 방식도, 한두 작품을 제외하면 그닥이라는 느낌.

야생은 무섭구나 / 라는 생각을 나는 했다. 물 밖으로 나오니 모든 것이 따뜻했다. 모래와 자갈이 그랬고 수많은 인간의 훈훈한 체온이 또 그렇데 반가울 수 없었다. 이래서 인간은 모여 사는구나. 132쪽

곽이 했던 질문을 나는 스스로에게 던져보았다. 마땅한 답은 역시나 떠오르지 않았다. 지갑을 열고, 신분증을 뒤져보고, 사원증과 여러 장의 신용카드를 일일이 꺼내보았다. 나는 일을 할 수 있고, 나는 물건을 살 수 있다. 확실히 나쁘다고는 말할 수 없는 삶이다. 한 장의 메모지를 펼쳐놓고 나는 다시 메모를 시작했다. 일단 사야 할 물품들의 목록과, 언젠가는 사야 할 물품의 목록을. 170쪽

어쨌든 계속 기다릴 생각이다. 끝까지 기대되는 사람이니까.

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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