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사랑이 모두 담겨있다 :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주노 디아스 장편소설,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문학동네, 2007
YES24나 알라딘에서 검색해 보면 꽤 많이 팔린 책임을 알 수 있다. 대형서점에는 거의 가지 않아 지금까지 모두 몇 쇄를 찍었는지 직접 확인할 수 없는데 '대박 터뜨릴 정도'까지는 안 되는 것 같다. 리뷰를 즐겨 쓰는 여러 이웃 블로그에서 이 책에 대한 리뷰를 본 적이 없다. 그러니 이 자리를 빌어 말씀드리고 싶다. 강추.
어느 블로그에서 <고래>의 소설가 천명관씨가 최근 들어 나온 책 중에서는 가장 읽을만 하다, 라는 말을 한 것을 접했다. 그러고서 샀던 책이다. 꽤 오랜 시간 책상 위에 쌓여져 있었다. 이 달 들어 책 읽기를 다시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고른 소설이 이 책이었다. 그리고 후회하지 않았다. 지난 주, 이삼일동안 400쪽을 모두 다 읽었다. 공강 시간에는 학교 벤치에 앉아 읽었고 저녁에는 자리에 누워 읽었다. 다 읽은 날과 그 다음 날 눈에 띄는 친구들마다 내가 최근에 굉장한 책을 하나 읽었다고, 너무너무 재밌는 책이라고, 떠벌리고 다녔다.
2007년 미국에서 출판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작가 주노 디아스는 첫 장편으로 퓰리처상과 전미비평가협회상을 수상했다. 지금까지 전 세계 28개국에 판권이 팔려 번역되었다고 한다. 영화화 작업도 순식간에 이뤄져 미라맥스와 계약까지 맺었다. 이건 뭐 작가로서 얻을 수 있는 가장 대중적인 성공을 거머쥔 것이나 다름없다. 자, 깐깐한 독서가 분들, 여기서 눈을 치켜 뜨셔서는 안 된다. 이 책은 책 자체의 완성도, 시대 정신에 대한 충실함, 유쾌하고 매력적인 문장이 어우러져 대중들에게 어필한 보기 드문 수작이기 때문이다. 퓰리처상과 전미비평가협회상을 동시에 수상한 작품은 별로 없다.(잘 모르지만, 전자 쪽이 대중성에 중점을 둔다면 후자 쪽은 작품의 완성도에 중점을 두는 것 같다.)
이거 다소 감당이 안 되는 평가를 늘어놓고 나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잠시동안 멈칫했다.
이 책은, 제목이 말해주듯, ‘오스카 와오’라는 한 도미니카 남자 아이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오스카의 누나 롤라와 어머니 벨리시아, 이렇게 세 사람이 데 레온 가의 생존자이다. 그리고 벨리시아의 아버지 아벨라르의 이야기까지, 즉 모계로 이어지는 삼대에 걸친 푸쿠의 역사가 이 소설의 전부라고 말할 수 있다. ‘푸쿠’가 무엇인지는, 책을 모두 읽어봐야만 비로소 알 수 있다.
오스카는 도미니카 남자 답지 않게 지나치게 뚱뚱했다. SF와 롤플레잉게임(컴퓨터 게임이 아니라 룰북을 펼쳐놓고 실제로 연기를 해가며 하는 게임, 컴퓨터 롤플레잉 게임의 원조), 그리고 ‘책’ 광이었다. 미국의 온갖 코믹북에도 통달했다. 대학에 들어간 뒤에도 일본 애니메이션 ‘아키라’를 아마 천 번 이상 봤고, 톨킨의 『반지의 제왕』은 세계에서 가장 좋아하는 책이었다.
한마디로 그는 ‘찌질했다’. 중고등학교 시절을 찌질하게 보낸 대부분의 남자들은 사랑에 대한 불타는 욕망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억누른다. 그래야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자신에 대한 열등감과 자기 비하 때문에 맨정신으로 살아갈 수 없다. 그런데 이 도미니카 출신의 찌질한 놈 오스카 와오는, 그걸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스카가 마침내 자신의 ‘푸쿠’와 맞서 싸우게 되는 이야기. 그의 싸움이 승리였는지 패배였는지는 쉽게 판단하기가 힘들다. 무엇이었을까. 근데, 나로서는 그가 승리했다는 쪽이다. 그의 싸움은 장렬했다. 너무 아름다웠다. 사실, 책을 다 읽고 난 뒤, 나는 깨달았다. 이제 내 머리 속에는 두 명의 남자가 들어앉아 있다는 것을. 많이 다르지만 단 하나의 공통점이 있는 두 남자, 그리스인 조르바와 오스카 와오. 조르바와 오스카의 말들은 하나같이 생생히 기억난다. 두 남자는 내게 말한다. “연애나 해, 임마!”
도미니카(지금의 국명은 도미니카 공화국)는 카리브해에 위치한 섬나라다. 아이티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인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도미니카의 근현대사의 흐름을 한번에 파악할 수 있게 된다.(작가의 원주는 번역본에서는 미주로 처리되었고 역주가 각주로 달려 있는데, 다소 불편하더라도 원주의 주석까지 꼼꼼히 같이 읽어나가야 한다. ‘옮긴이의말’에서 알 수 있듯 주노 디아스는 작품의 영역에 주석을 포함시켰고, 주석의 문장은 유쾌함과 패러디가 한결 뛰어나다.) 도미니카 근현대사는 마콘도(남미 소설의 마술적 사실주의)가 춤출 수 있는 가장 훌륭한 터전이었다. 데 레온 가의 슬픈 이야기는 도미니카 근현대사에 휘말리면서 비로소 시작되었다. 그들 가족의 ‘푸쿠’는 너무 심했고 너무 슬펐다.
또한 이 책은 아마도 미국의 시대 정신에도 충실할 것이다. 타이밍도 좋았다. 현재 미국에서 라틴계 이민자들의 존재는 새롭지 않다. 이미 사회의 구체적인 구성원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그들의 삶이 예술의 영역에서 서사화된 것은 드물다(내가 볼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예술 중에서도 소설과 영화, 즉 서사가 핵심이 되는 영역들은 사회의 문제적 현상에 주목한다. 아마도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한 현상들은 새로운 서사이자 흥미로운 서사일 수밖에 없으니까. 한 사회의 범주에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 포섭되어 있다 하더라도 한 집단의 정치적 등장은 언제나 힘겹다. 한국 사회의 이주 노동자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때로는 그 속성 상 그 어떤 매체보다 급진적일 수 있는 예술은 이러한 사람들의 삶에 주목하자마자 그들의 삶을 서사화하여 수면 위로 끌어 올린다. 동네 거리에서 이주 노동자들을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도 이주 노동자들의 삶을 다룬 다큐나 소설을 읽음으로써 그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서사화된다는 것은 일종의 ‘문화적 시민권’을 획득하는 일인 것 같다. 스스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마이크를 갖다 댄 것이고, 이제 곧 그들은 스스로 마이크를 쥐고 발언하기 시작할 것이다. 도미니카가 어디에 있는지, 그 나라의 역사에 대해서는 단 한치의 관심도 없었던 동아시아의 한 청년이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의 역사를 단번에 알게 되었다. 그리고 슬퍼하게 되었다. 이 책은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작품의 내용은 상당 부분 작가의 경험에서 비롯되기도 했을 것이다. 작중 화자인 유니오르(그는 작품 중반부에서 등장한다)는 주노 디아스 자신의 별칭이기도 하다.
참, 괜찮은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해 감히 ‘어마어마하다’고까지 말하고 싶다. 책임지지 못할까봐 두렵기도 하지만, 정말로 그런 책이다.
늘 일을 망치는 거 있잖니. 운 말디토 옴브레(망할 놈의 남자). (46쪽)
불쌍한 오스카. 녀석은 미처 깨닫기도 전에 이미 (온 세상 꼴통들의 얄궂은 운명인) '그냥 친구로 지내자'류의 소용돌이에 빠져 버렸다. 이런 관계는 차꼬가 채워진 사랑이라고나 할까, 일단 안에 들어가면 엄청난 괴로움이 보장되지만, 막상 나올 때는 씁쓸함과 가슴 찢어지는 경험 말곤 얻는 게 없는 그런 관계다. 아, 어쩌면 자기 자신과 여자에 대한 이해의 폭은 넓어질 수도 있겠다.
어쩌면. (56쪽)
나는 평생 사랑을 기다려왔어, 오스카는 나중에 누나에게 이렇게 썼다. 내겐 절대로 사랑이 오지 않을 거라고 얼마나 많이 생각했던지. (그가 두번째로 좋아하는 만화영화 <로보텍 매크로스>에서 리치 헌터가 마침내 리사와 이루어졌을 때 그는 텔레비전 앞에서 목 놓아 울었다. 누가 대통령이라도 쐈대? 삼촌은 구석방에서 코로 그걸 흡입하다가 튀어나와 물었다.) 마치 천국의 한 조각을 삼킨 기분이야, 그는 누나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그 기분이 어떤지 상상도 못할 거야. (64쪽)
강간할 시간이 있었을까? 있었을 것 같지만 알 수 없다. 그 점에 대해선 그녀가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으니까. 그건 언어의 끝이었고, 희망의 끝이었다고밖엔 말할 수 없다. 그건 인간을 파괴하는, 온전히 파괴하는 폭력이었다. (17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