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픽션
줌파 라히리, 그저 좋은 사람
권고마
2010. 6. 6. 01:44
저녁 후엔 버틀러 도서관의 작은 방에서 서로 마주보고 안락의자에 앉아 밀턴과 마르크스를 읽었다. 엉뚱한 것들 때문에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녀는 배낭이나 가방에 책을 넣지 않고 앞가슴에 안고 다녔고, 언제나 옷을 얇게 입어서 모두들 모직과 오리털을 입을 때 아직도 술이 달린 스웨이드 재킷을 입고 다녔다. 그녀 이름의 마지막 두 글자가 자기 이름의 첫 두글자와 일치한다는 점도 있었다. 바보처럼 들릴 것 같아 말하지 않았지만 그 사실 덕분에 결국 맺어질 거라고 믿었다. 122쪽
아무리 짧은 시간이고, 그조차 점점 줄어든다 해도 사람을 제정신으로 지켜주는 건 결국 혼자 있는 시간이라는 사실이. 141쪽
아무리 짧은 시간이고, 그조차 점점 줄어든다 해도 사람을 제정신으로 지켜주는 건 결국 혼자 있는 시간이라는 사실이. 141쪽
책을 다 읽고, 미국 언론이 이 책과 작가에 퍼다 준 찬사들을 읽었다. 내 마음에 와 닿는 수식어 몇 개에 밑줄을 그었다. 천편일률적인, 즉 그냥 '좋다'는 말을 단지 조금 더 긴 말로 한 것에 지나지 않은, 작품에 대한 구체적이고 진솔한 감상이나 평가를 담지 않은, 그런 수식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몇 가지는 마음에 들었다.
매우 쉽게 읽히며 재밌다. 이야기의 구성은 복잡하지 않다. 관찰과 묘사와 인물, 이 책의 강렬한 특징들이다. 그 중 더욱 돋보이는 것을 꼽으라면 인물을 관찰하는 것이다. 줌파는 그려낸다. 관념의 움직임이 아니라, 미국에서 살아가는 구체적인 사람들의 움직임을.
미국이 필요로 하는 바가 이럴 것이다. 가족. '쪼개져 열려버린' 단위. 카버의 소설이 다루고 있는 장면과 삶이 그러했다. 줌파 역시 '체호프'를 연상시킨다는 평을 듣고 있으며 미국 단편소설의 대표 기수로 인정받고 있다. 놀라울 만큼 유사한 찬사 아닌가. 이는 우연이라고 볼 건 아닌 것 같다. 그 뒤에, 즉 작품의 뒤에 있는 미국 사회에 대한 흥미로운 실마리가 여기에 있다.
언어를 베푼 격이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일상, 삶에서 느끼는 갖가지 관계와 감정에 대해. 당대의 문학에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역할 중 하나를 이 책은 훌륭히 해내고 있다. 그 무엇도 해내지 못하는 소설 혹은 문학이란 성립할 수 없겠지만, 그 성과(업적?)를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 걸작이거나 수작일 것이고, 이러한 작품이 많지는 않다.
다히쌤을 만난다면, 무슨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설레이게 하는 작품이다.
'10. 5.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