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논픽션
도정일.최재천 지음, 대담_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
권고마
2010. 8. 8. 11:19
|
내가 신화적 상상력을 강조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혼합성, 즉 모순 대립물의 공존이라는 거예요. 하이브리드죠. 모순물과 대립물이 서로 떨어져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이런 하이브리디티가 존재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입니다. 히브리 신화에는 이런 게 없어요. 유대-기독교는 모순-대립물을 '악'이라고 불러요. 그건 제거해야 할 대상이죠. 실체를 인정하려 하지 않고 '결여'라고 불러요. 그것을 없앨 수 있다는 믿음으로 똘똘 뭉친 게 유대-기독교 사유입니다. 그러나 그리스 사유에서 반대되는 것을 소멸시키는 일은 불가능해요. 늘 공존 상태죠. 이것이 내가 말하고 싶은 두터운 세계에요. 31쪽
... 식물학자 우장춘 박사가 타계했을 때 그 부인이 던졌다는 질문이 늘 생각나요. "이분이 가졌던 그 모든 훌륭한 지식이 이걸로 끝인가요?" 인간이 영혼을 생각해낸 것은 유한성에 대한 보복의 한 형식이라고 우선 말하고 싶습니다. 시간성을 초월하려는 인간의 욕망은 현실적으로는 충족 불가입니다. 그러나 상상으로는 가능하죠. 이 관점에서 말하면 영혼은 시간의 한계를 벗어나려는 욕망의 산물이면서 그 욕망의 상상적 충족방식이 됩니다. 혹독한 소리 같지만, 죽음이라는 현실원칙 앞에서 인간이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 고안해낸 일종의 자기기만이 영혼이라는 얘기가 되죠. 이 위대한 기만이 우리를 다독거리고 위로합니다.(굵은 글자로 표시한 이는 발췌자) 269쪽
이성의 질주 끝에 인간이 도달한 것은 '광기'입니다. 과학과 이성으로 몰아냈다고 생각한 '귀신'들은 늘 뒷문으로 다시 들어와 사람들의 가슴을 점령했어요. 삶의 불안과 공포, 두려움은 이성의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나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해요. 사람들의 행동 방식을 이해하려거든 그들을 두렵게 하고 불안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부터 찾아보라고 말이죠. 가슴 들여다보기죠. 그러자면 신화적 사유나 상상력을 이해하는 방식이 로고스를 거들어야 합니다. 로고스는 미토스를 거들어야 하고. 두 개가 다시 만나야 해요. 신화란 말이죠, 인간이 옛날부터 두려워했고 지금도 두려워하는 것들의 표현입니다. 계몽이니 진보니 하는 것들도 사실은 엄청난 두려움의 산물이죠. 496쪽
아무리 투명성을 강조해도 인간의 가슴은 투명해지지 않아요. 한 자도 안 되는 가슴이 사실은 깊은 골짜기거든요. 그 가슴의 골짜기는 신도 들여다볼 수 없습니다. 어둡고 컴컴하고 깊어서 하느님의 눈으로도 그 안을 볼 수가 없어요. 신조차도 들여다볼 수 없는 세계, 그게 내가 말하는 '두터운 세계'입니다. 인간에게는 그런 두터움, 심연이 필요합니다. 유한한 인간이 그런 심연을 가질 권리도 없다면 억울하죠. 559쪽
... 식물학자 우장춘 박사가 타계했을 때 그 부인이 던졌다는 질문이 늘 생각나요. "이분이 가졌던 그 모든 훌륭한 지식이 이걸로 끝인가요?" 인간이 영혼을 생각해낸 것은 유한성에 대한 보복의 한 형식이라고 우선 말하고 싶습니다. 시간성을 초월하려는 인간의 욕망은 현실적으로는 충족 불가입니다. 그러나 상상으로는 가능하죠. 이 관점에서 말하면 영혼은 시간의 한계를 벗어나려는 욕망의 산물이면서 그 욕망의 상상적 충족방식이 됩니다. 혹독한 소리 같지만, 죽음이라는 현실원칙 앞에서 인간이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 고안해낸 일종의 자기기만이 영혼이라는 얘기가 되죠. 이 위대한 기만이 우리를 다독거리고 위로합니다.(굵은 글자로 표시한 이는 발췌자) 269쪽
이성의 질주 끝에 인간이 도달한 것은 '광기'입니다. 과학과 이성으로 몰아냈다고 생각한 '귀신'들은 늘 뒷문으로 다시 들어와 사람들의 가슴을 점령했어요. 삶의 불안과 공포, 두려움은 이성의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나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해요. 사람들의 행동 방식을 이해하려거든 그들을 두렵게 하고 불안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부터 찾아보라고 말이죠. 가슴 들여다보기죠. 그러자면 신화적 사유나 상상력을 이해하는 방식이 로고스를 거들어야 합니다. 로고스는 미토스를 거들어야 하고. 두 개가 다시 만나야 해요. 신화란 말이죠, 인간이 옛날부터 두려워했고 지금도 두려워하는 것들의 표현입니다. 계몽이니 진보니 하는 것들도 사실은 엄청난 두려움의 산물이죠. 496쪽
아무리 투명성을 강조해도 인간의 가슴은 투명해지지 않아요. 한 자도 안 되는 가슴이 사실은 깊은 골짜기거든요. 그 가슴의 골짜기는 신도 들여다볼 수 없습니다. 어둡고 컴컴하고 깊어서 하느님의 눈으로도 그 안을 볼 수가 없어요. 신조차도 들여다볼 수 없는 세계, 그게 내가 말하는 '두터운 세계'입니다. 인간에게는 그런 두터움, 심연이 필요합니다. 유한한 인간이 그런 심연을 가질 권리도 없다면 억울하죠. 559쪽
말 말 말로 화려한 책. 나쁜 뜻에서 그렇다는 게 아니다. 위에 인용한 부분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인문학자 도정일씨가 한 말이다. 녹취하여 정리한 사람이 따로 있으므로 입말이 문장 구조 그대로 옮겨진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하나같이 근사해 보이는 문장들. 자신감으로 넘치는 문장들. '~ㄴ 것 같다'는 표현은 하나도 없다. 말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해 망설임 없이 정의 내린다. 책을 읽다 보면, 이 사람이야말로 한국에서 가장 박식한 사람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고대와 근대와 현대를 가릴 것 없이 서구에서 탄생한 철학과 역사와 문학에 모두 밝은, '지혜로운 이'.
표현들이 어쩜 하나같이 마음에 드는지. '두터운 세계', "한 자도 안 되는 가슴이 사실은 깊은 골짜기거든요." 책에는 두 대담자의 사진이 많이 실려 있다. 사진 때문에 속지를 코팅지로 만들었을 것이고, 덕택에 책은 매우 무거워 졌다. 하지만 싫지는 않다. 이 흑백 사진들은 두 지성의 표정과 자세와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그 공간을 잘 보여주고 있다. 도정일씨는 거의 항상, 담배를 손에 쥐고 있다. 최재천씨가 조금은 괴로웠을 수도 있겠구나. 그렇지만 반갑다는, 그런 말.
현대 생물학의 개념들이 참 흥미롭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 도정일씨는 시종일관 문화 혹은 사회의 자율성과, 인간의 문화와 사회는 유전자적 진화를 토대로 하여 인간이 '이룩해낸' 작품임을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생물학자 최재천씨는 자신보다 더 많은 말을 할 수 있는 선배(그는 인문학자이기에) 앞에서 대체로 겸손하고 또 겸손할 수 밖에 없지만(인문학자는 온갖 세상사에 대해 가타부타 해석하는 게 본업이므로), 가끔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다. '이기적 유전자', '생존하고 번식하라'는 지상 명령이 한편으로 '유전자 결정론'으로 오인되기도 하는 것에 대해 항변한다.
흥미롭다는 건 알게 되었지만 제대로 이해하여 내 것으로 받아들이지는 못 했다. 읽는 동안에는 알아들을 듯 했지만 지금 제대로 기억에 남지 않는 걸 보니 그렇다. 두 지성이 공유하고 있는 지식의 그물망은 방대하다. 그래서 흥미진진하다. 책 읽는 속도에 거침이 없다. 쭉쭉 나아간다. 때로는 지치기도 한다. 내 힘으로 익혀 보고 해석하여 결론 내리는 그 기나긴 과정들을 생략한 채 분석하고 종합되어 현실에 적용된 두 학자의 알맹이들만 듣고 앉아 있으니.
또 하나 더. 이 책은 황우석씨 사건이 그 속사정이 파헤쳐져 한국 사회 전체가 시끄러워지기 전에 진행된 듯 하다. 두 학자는 대체로 황우석씨의 업적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황우석씨로부터 비롯된 사건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었다. 예상치 못한 이들이 그를 두둔하는 걸 목격한 적이 있었고, 내가 존경하는 여러 사람들은 황우석씨 그리고 그에 열광하는 한국인들을 강력히 비판했었다. 도서관에서 알바하던 때 다양한 전공의 학자들이 그 사건이 한국 사회에 준 교훈, 영향 등을 토론한 책을 봤던 적 있다. 황우석씨 사건에 대한 나의 입장, 생각 없이는 한국 사회의 아주 핵심적인 지점을 놓치는 거 같다. 언젠가 꼭, 그 책을 구해 읽어보고 싶다. 책 제목이 뭐였는지부터 알아봐야 되겠지만.
5년 전에 나온 책이지만 여전히 재밌고 적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