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픽션
김언수 장편소설, 설계자들
권고마
2010. 9. 23.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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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집 곱창을 먹을 때마다 신의 내장에 대해 생각을 해. 인간이 보지도 상상하지도 않는 신의 내장. 높고, 거룩하고, 성스러운 것 안에 감춰져 있는 더럽고, 냄새나고, 추악한 것들 말이지. 우아한 것들이 뒤에 감추고 있는 치사한 것들, 아름다운 것들이 뒤에 감추고 있는 추악한 것들.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들 뒤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거짓들. 하지만 사람들은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게 필연적으로 내장이 있다는 것을 애써 부인하려고 하지." 292~293쪽
책 뒤표지에 실린 두 소설가의 추천사. 권여선, 박민규. 참 매끄럽게, 군침 돌도록 잘 썼다.
작품은 장르 문학 뺨치는 박진감을 보여준다. 작품의 무대는 평범한 일상, 인물 간의 관계, 개인의 내면이 아니다. 살인을 요청하는 이들이 있고, 그 일을 맡은 청부업자들과 살인을 계획하는 '설계자들'이 있고, 설계자들의 설계에 따라 살인을 실천하는 암살자들 이 있다. 두 암살자가 서로의 칼을 맞대고 칼부림하는 장면도 나온다!
첫 장편 <캐비닛>은 장점과 단점이 뚜렷한 작품이었다. 기상천외한 상상력이 현대 사회를 기막히게, 흥미롭게 그려냈던 점은 많은 이들이 찬사를 보낸 매력 포인트였다. 그러나 그 흥미로움은 잘 마무리되지 못한 채로 섣불리 끝났고, 후반부가 아쉽기 그지 없었다. 그렇다면 <설계자들>은? 신선하고 의미심장한 무대, 죽음을 설계한다는 설정이 갖는 신선함. 이야기의 박진감, 흥미로움.
그렇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었다. 미토와 한자, 작가가 두 핵심 인물을 더 책임져 주었으면 좋았을텐데. 그들의 역할과 매력에 비해서 이야기의 흐름에 단지 떠맡겨 버렸다는 느낌이 들었다. 인물들 사이의 대화가 더 매끄러웠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았고, 삶에다 대고 직접 쏘아 붙이는 설교조의 어조는 꽤 거슬렸다.(위의 발췌문이 그 대표적인 예다.) 내장에서 진실까지, 작가로서는 오랜 시간과 고민의 결과물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의 첫 소설 이후 4년여를 기다렸으므로 상대적으로 아쉬움이 크다. 남에게 추천하긴 힘들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앞으로도 김언수씨의 소설을 열심히 기다리며 꼭 읽어볼 생각이다. 무엇보다 그의 첫 소설이 준 충격이 여전하고, 한번 반한 작가를 잊는 일, 게다가 그가 동시대 한국 작가라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뭐랄까, 기대, 애정, 화이팅! 그런 마음이 생기게 되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