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논픽션

플라톤 지음, 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

권고마 2010. 11. 2. 10:45

소크라테스의변명
카테고리 인문 > 철학 > 서양철학자 > 소크라테스
지은이 플라톤 (문예출판사, 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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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나이에 평생을 두고 서로 열심히 토론을 해왔으면서도 고작 우리가 어린애보다 나은 점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단 말인가? 70쪽, '크리톤'

쾌락과 고통은 동시에 같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일은 없으면서도 그 중 하나를 추구해서 얻은 사람은 대체로 다른 하나도 어쩔 수 없이 얻게 마련이기 때문이야. 그 몸뚱이는 둘이지만, 머리 하나에 붙어 있는 셈이야. 88쪽, '파이돈'

"그런데 당신이 떠나버리고 나면 어디서 우리는 두려움을 쫓아줄 훌륭한 마법사를 구할 수 있을까요?" 소크라테스는 대답했습니다. "케베스, 그리스는 넓은 곳이네. 훌륭한 사람도 많고 외국에서 온 종족도 적지 않아. 이러한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훌륭한 마법사를 찾게. 먼 곳까지 가서 널리. 수고나 돈을 아끼지 말고. 돈을 쓰는 데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을 테니까. 그리고 여러분 가운데에서도 찾아보아야 하네. 자네들보다 이 일을 더 잘하는 사람을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야." 121~122쪽, '파이돈'

재미가 없던 건 아니었는데 왜 그리 빨리 읽어 해치우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깔끔한 표지의 문예출판사 번역이다. 그치만 역자가 밝히듯 원전 번역이 아니라 영역된 글을 다시 번역하였고, 일어번역도 참고했다고 한다. 최근 서해문집에선 나온 책이 더 나을 듯 하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에서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어 국가가 자기 존재의 우월함을 갈파하는 대목. 이거 잘못 읽으면 애국자 소크라테스가 "우리 어버이에 비할 바 없이 높은 우리 국가여!" 라고 찬사를 보내는 장면을 상상하게 될지도 모른다. 원서와 대조해본 적은 없으나 이 대목은 확실히 오늘날의 '국가'가 아니라 당대의 '폴리스', 즉 '공동체'라고 이해하는 게 타당할 것이다. 그밖에도 '선(善)'을 '좋음'으로 바꿔 읽는 게 더 자연스러운 대목도 눈에 띄었다.
2500여년 전이다. 오늘날 우리가 상식이라 여기는 기본적인 사실들, 어떤 판단의 대전제로 삼는 명제들부터 달랐던 시대다. 고전, 특히 이 책을 읽고서 소크라테스의 웅변에 매료되어 그가 말한 대로 살아야 겠다, 따위의 섣부른 다짐을 해선 안 된다. 이런 책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결론이 아니라 과정, 치밀하고 성실한 논리의 과정이다.

사랑이 하는 일은 아름다운 것 속에서 잉태하게 하는 것이고, 이러한 잉태는 육체적인 것일 수도 있고 정신적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260쪽

왜 생식이 사랑의 대상일까요? 가사적인 존재가 획득할 수 있는 것들 중에서 생식은 영원성과 불사성에 가장 접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합의한 대로 사랑의 목적이 선을 영원히 소유하는 것이라면, 사랑은 필연적으로 선과 함께 불사성을 욕구하지 않을 수 없으며, 따라서 지금까지의 논의는 사랑이란 선에 대한 사랑인 동시에 불사성에 대한 사랑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261쪽

'향연'은 그냥 재밌었다. '헤드윅'의 유명한 장면도 생각나고. 소크라테스만의 대화술은 여전하고 그 추론의 과정도 성실하고 치밀하다. 사랑에 대해서 당시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사랑에서 생식이 중요한 목적이며 이는 영원함과 불멸함에 대한 애착이라고 말하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육체의 자손보다 정신의 자손, 즉 자기가 만들어낸 창작물을 바라보며 얻는 기쁨이 더 크지 않겠냐고 말하기도 한다. 생식이 불가능한 동성 사이의 사랑은 그러므로 더욱 훌륭하고 더욱 만족스러운 것이다. 
나는 마법사가 될 수 있을까. 초연해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