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픽션

로힌턴 미스트리 장편소설, 적절한 균형

권고마 2010. 11. 2. 12:21
적절한균형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영미소설일반
지은이 로힌턴 미스트리 (아시아,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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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그랬죠. 그런데 지금은 신이 거대한 이불을 만드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끝없이 다양한 디자인을 가진 이불 말이에요. 그런데 그 이불이 너무 크고 혼란스러워서 디자인을 볼 수가 없고, 사각형과 다이아몬드형 그리고 삼각형이 더 이상 잘 어울리지 않아서 모든 게 무의미해진 거죠. 그래서 신이 그걸 버린 거죠." 496쪽

왜 그렇게 그를 미워했을까? 사람에 관한한 이치에 맞는 유일한 감정이란, 삶을 인내하는 능력에 대한 놀라움과 결국은 절망하고 마는 슬픔이다. 793쪽

"정말 몰라서 묻는 거요? 인생 이야기를 하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게 도와주니까 매우 중요한 겁니다. 그래야 항상 변화하는 세계에서 자신을 잃지 않고 앞으로 나갈 수 있죠." 859쪽

여기저기서 찬사를 전해 들은 책. 경향신문 '오늘의책' 코너에 소설가 손홍규씨가 극찬을 했었다.(이 코너 얼마 전에 끝난 모양이다.) 900쪽 가까이 되는 두꺼운 책을 읽는 내내 신에게 악한 인물을 벌을 내리고 선한 주인공들의 삶을 보살펴 주길 기도했다고! 그래, 그럴만하다...
책 첫머리에 인용된 구절이다. "이 책을 손에 들고 부드러운 안락의자에 몸을 파묻으면서 당신은 혼잣말로 이 책이 재미나겠다고 할 겁니다. 그리고 엄청난 불행에 관한 이 이야기를 읽고 난 후에도 당신은 식사를 잘 할 것이고 본인의 무감동에 대해서 작가를 탓하고 그의 지나친 과장과 상상의 비약을 비난할 것입니다. 그러나 믿어주십시오. 이 비극은 허구가 아니라 모두 진실입니다." 오노레 드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 중에서 적절한 경고문이라고 생각했다. 이 두꺼운 인도판 '인생사 새옹지마'의 사람살이를 따라가다 보면, 불행에 평온이 따르고 뒤이어 더 큰 재앙이 닥치는 이야기에 질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때 이 책 첫머리의 저 구절이 생각난 것이다. 충격. 아, 지금 이 이야기들이 허구가 아니라고? 있을 법한게 아니라 있었던 삶이라고?
1975년부터 10년 동안의 인도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인도 현대사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게 없다. 여기도 참 지저분하다. 어째 이렇게 지저분하냐... 왜 이렇게 많이들 죽었나... 
소설에 대해서도 생각할 거리가 많아졌다. 이렇게 현실을 그리고 저렇게 현실을 그린다. 결국은 솜씨의 문제다. 잘 쓰면 된다. 그게 명작이다. <적절한 균형>은, 그 솜씨는 조금 부족하지만 이 이야기가 하나의 소설이라는 점이 스스로 수작임을 입증해 준다. 그런 소설이다. 이 이야기가 한편의 소설로 묶였다는 게 경이로운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