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논픽션

정은숙 지음, 책사용법 _한 편집자의 독서 분투기

권고마 2010. 11. 2. 13:21
책사용법한편집자의독서분투기
카테고리 인문 > 독서/글쓰기 > 독서 > 독서일반
지은이 정은숙 (마음산책, 2010년)
상세보기
 
마음산책이라는 출판사. 일관된 표지 디자인, 참 마음에 든다. 주로 한국에 그리 알려지지 않은 멋진 소설을 골라 번역한다. 어느 정도 규모있게 꾸준히 팔릴 만한 작품들이다. 그 안목을 높이 산다. 이 책은 그 출판사의 대표가 썼다. 시집을 낸 적 있다. 26년차 편집자, 라고 한다.
길지 않은 분량이다. '책에 대한 책'들이 이야기하는 바에서 그리 벗어나 있지 않다. 책을 왜 읽는가, 책이 꽂혀 있는 공간 - 서재/도서관, 책의 기능 - 대화/치유/오락/지식/인간학/'깊은' 앎/감성 일깨우기, 책의 존재 증명, 책을 잘 읽기 위한 계명들. 특이한 점 하나는 원전 인용이 전체 분량의 1/4 정도라는 점. 2쪽에 한 단락 씩 실려 있다. 저자가 이미 서문에서 고백했다. "편집자로서의 감각이 글쓴이로서의 감각을 앞서 갔다"고. 솔직한 태도이고, 독자에게도 득이 된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기보다 더 잘 쓴 사람이 있다면 그의 말을 빌어올 줄 아는 태도, 그게 바로 편집자의 정체 아닐까 싶다.
길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 작은 책을 2년 동안 힘들여 썼다고 한다. 거짓말이 아닐 거라 확신한다. 뭐라 꼭 집어 말하긴 힘들지만 본문의 구성과 인용문을 포함한 텍스트 전체의 스타일이 아주 압축적인 느낌. 없어야 될 것만 잘라낸 게 아니라 있어도 좋을 법한 부분마저 과감히 잘라 낸 느낌. 짧게, 짧게, 더 짧게. 군더더기라곤 어느 구석에도 없는 듯하다. 문장 역시 굉장히 깔끔하다.
출판사 대표 정도 되는 분이셔서 그런지, 독서의 범위가 굉장히 방대하다. 이런 건 본받아야 한다. 문학은 내 영원한 벗일 테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현대 소설이 재미없어 진다. 오늘날 한국에서 무슨 상을 수상했네 하는 소설들. 그보다는 신화와 역사 철학, 자연과학의 기본들. 이런 걸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이 슬금슬금 든다. 19세기 프랑스, 모더니티에 대해서 더 자세히 공부해봐야 겠다는 생각도 든다. 일단 가장 잘 아는 데가 거기니까. 신화도 신화도! 
책 뒤표지에 실린 이현우씨의 추천사처럼, "책 사용법을 책 사랑법으로 고쳐" 읽으면 딱 어울린다. "연애에도 가이드가 필요하다면, 이 책이 바로 그런 가이드"라는 말이 적절하다. 그치만 저자의 바람대로 청소년들이 즐겨 읽기에는 문체의 마른 느낌이 강해 거리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이 빼곡히 쌓인 서재를 바라보는 내 눈은 가야 할 길에 대한 설렘으로 숨이 막힐 듯하다. 어디 에로틱에 비길까, 나는 본능적으로 책과의 연애가 시작되었음을 안다. 75쪽

책과 나누는 대화는 통상적인 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대화, 심중에 있는 것들끼리의 대화를 의미한다. 책이 의미있다면 그것은 이런 대화를 아주 낮은 자리에서 아주 간절히 교통하게 해준다는 데 있다. 98쪽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는 우리 삶에 결여된 무엇이, 한마디로 욕망이라고 하기보다는 어떤 빈틈이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니다, 그 빈틈을 욕망이라고 불러도 좋고 재미없는 일상이라고 해도 좋고 회의하는 인간의 본성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하여튼 더 나은 상태를 바라지만 채워지지 않는 빈 공간이 우리를 책읽기로 추동한다고 나는 믿는다. 177쪽

그렇다. 나는 자위한다, 책에서 위안을 구하는 자는 행복하다. 세상에 얼마나 불행한 일이 많은지를 생각하면 더더욱. 21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