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픽션
장정일 장편소설, 구월의 이틀
권고마
2010. 12. 4.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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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소설을 쓰면서 의식했던 것 가운데 하나는 '우익청년 탄생기(성장기)'를 써보겠다는 것이었다." 책 뒷날개와 작가의말에서 인상깊게 봤던 문장이다. 독특하게도 작가는 작품의 주제를 자기 입으로 미리 이야기한다. 책을 샀던 당시엔 좀 김이 빠졌다. 그래서 책을 산지 1년 반 가까이 지난 다음에야 읽게 되었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난 지금, 머릿속이 굉장히 복잡해졌다. 나의 현실과 책이 맞물리게 되면서부터다. 문학청년이었던 은은 보수주의자가 된다. "은의 생각으로는 '강한 것은 선하고, 강한 것은 아름답다'는 명제 하나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 나라의 보수주의는 숫제 없었다."(243쪽)고 믿는, 엘리트주의를 절대 원칙으로 삼는 보수주의자가 된 것이다. 나는 내 또래의 청년 십여명과 함께 산다. 대학을 일이 년 다닌 순진한 친구들이다. 바로 이 친구들이, 학자연하는 사람들이 일컫는 '대중'들이다. 이들의 순진함과 근거 없는 선입견 앞에서는 오만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는 매일 아무도 보지 않는 한겨레신문을 챙기려 농담 섞인 비난을 무릅쓴다. 나는 그들에게 그저 웃음으로 대꾸하지만, 속으로는 그들의 무지와 편견을 격렬히 증오한다. 일견 선량하고 성실해 보이는 이 청년들에게서 이 사회의 가난과 고통이 비롯된다고 생각하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답이 없다. 은의 엘리트주의는 오만 생각에 괴롭고 답이 없어 답답한 나를 뜨끔하게 만들었다! 이게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하다는 건 절대적으로 맞는 말이다. 이래선 안 된다. 그러나 나의 처지는? 내가 가난과 파괴, 부당함의 근원을 앞에 두고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책을 다 읽고 하루가 지난 오늘,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오래 갈 고민거리다. 그런데 나의 믿음은 다른 누군가의 말과 글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 수도. 나의 행동, 나의 실천에서 비롯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언뜻 스쳐 지나가는 생각.
아니 이런 걸 왜 써, 라는 처음의 인상과는 달리, 작품은 아주 흥미로웠다. 나는 한국 우파들의 근본을 항상 궁금해 했다. 단적으로 말하면 '대체 어떻게 좌파(최소한 자유주의자)가 되지 않을 수 있는가'. 세상이 이러한데, 나와 너의 처지가 이러한데! 무지해서 그런 이들도 적지 않지만 버젓이 다 알고도 우파인 사람들도 세상에 많다. 작가는 나의 궁금증(그리고 아마도 피해의식으로 가득한 대다수 좌파들의 궁금증)을 정확히 겨냥한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난 '아, 그럴수도 있겠구나'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그게 그들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그런데 책을 읽고 난 지금, 머릿속이 굉장히 복잡해졌다. 나의 현실과 책이 맞물리게 되면서부터다. 문학청년이었던 은은 보수주의자가 된다. "은의 생각으로는 '강한 것은 선하고, 강한 것은 아름답다'는 명제 하나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 나라의 보수주의는 숫제 없었다."(243쪽)고 믿는, 엘리트주의를 절대 원칙으로 삼는 보수주의자가 된 것이다. 나는 내 또래의 청년 십여명과 함께 산다. 대학을 일이 년 다닌 순진한 친구들이다. 바로 이 친구들이, 학자연하는 사람들이 일컫는 '대중'들이다. 이들의 순진함과 근거 없는 선입견 앞에서는 오만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는 매일 아무도 보지 않는 한겨레신문을 챙기려 농담 섞인 비난을 무릅쓴다. 나는 그들에게 그저 웃음으로 대꾸하지만, 속으로는 그들의 무지와 편견을 격렬히 증오한다. 일견 선량하고 성실해 보이는 이 청년들에게서 이 사회의 가난과 고통이 비롯된다고 생각하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답이 없다. 은의 엘리트주의는 오만 생각에 괴롭고 답이 없어 답답한 나를 뜨끔하게 만들었다! 이게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하다는 건 절대적으로 맞는 말이다. 이래선 안 된다. 그러나 나의 처지는? 내가 가난과 파괴, 부당함의 근원을 앞에 두고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책을 다 읽고 하루가 지난 오늘,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오래 갈 고민거리다. 그런데 나의 믿음은 다른 누군가의 말과 글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 수도. 나의 행동, 나의 실천에서 비롯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언뜻 스쳐 지나가는 생각.
아니 이런 걸 왜 써, 라는 처음의 인상과는 달리, 작품은 아주 흥미로웠다. 나는 한국 우파들의 근본을 항상 궁금해 했다. 단적으로 말하면 '대체 어떻게 좌파(최소한 자유주의자)가 되지 않을 수 있는가'. 세상이 이러한데, 나와 너의 처지가 이러한데! 무지해서 그런 이들도 적지 않지만 버젓이 다 알고도 우파인 사람들도 세상에 많다. 작가는 나의 궁금증(그리고 아마도 피해의식으로 가득한 대다수 좌파들의 궁금증)을 정확히 겨냥한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난 '아, 그럴수도 있겠구나'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그게 그들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이제 더 문학 작품은 읽지 못할 것 같아요. 그걸로는 나를 지킬 수도 없고, 세상을 만들 수도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97쪽
또 한편으로, 정치가를 꿈꾸던 청년 금은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시에 소질을 보였던 문학청년 은은 정치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문학을 어느 정도 읽고 나면 인문 사회과학서를 읽어야 한다고 말하는 '담임선생님'의 주장은 평소 작가가 말해오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문학은 '패배자들의 배'라고 말하는 대목. 사실 이게 틀린 말은 아니지 않나, 라는 게 나의 생각... 머리가 아프다.
미리 다 구상해 놓았다는 후속작이 몹시 기다려진다. 사실 장정일의 소설은 처음 읽어본다. 이 작품은 그가 무언가 크게 작심을 하고 써낸 듯하다. 그의 다른 작품들도 한번 읽어보고 싶어졌다. 그 유명한 시집도 읽어보고 싶고. 장정일은 대학을 다니지 않았고, 소설 때문에 감옥에 다녀왔고, '대구'에 살고, 꾸준히 희곡을 쓰는 독특한 배경을 가진 작가다. 흥미가 이는 요주의 작가다.
은은 밤새 얼굴도 없는 '환영의 소녀'를 따라 쇠못이 삐죽이 솟은 아홉 개의 산을 맨발로 넘고, 물뱀으로 뒤엉킨 열 개의 강을 맨손으로 건넜다. 모든 고통에는 보상이 따른다. 밤새 진땀을 흘리며 겪었던 악몽이 말짱 헛것은 아니었다. 서서히 밝아오는 아침 햇살이 은의 몸을 황금 물로 도금하는 순간, 생각이 떠올랐다. 은은 악마가 '친구를 하자'고 달려들고도 남을 미소를 빼물며, 침대에 올라가 잠을 잤다. 23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