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논픽션
김진철 지음, 대한민국 불공정 경제학
권고마
2011. 1. 25.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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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덕택에 읽게 된 책. 어느 주말 북 섹션에서 책 소개 기사를 읽었다. 지은이 김진철 기자는 경제부에서 오랫동안 일하다 최근 <esc> 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팀장이 쓰는 'esc를 누르며'에서 매주 그의 글을 읽을 수 있다.
책 소개 기사를 읽던 당시에는 경제 전반에 대한 관심이 한창 많았다. 지금껏 사회과학에서 주로 사회학과 여성학 책을 읽어 왔고 대학 수업도 비슷했다. 경제학과 수업은 하나도 듣지 않았다. 맑스의 저작을 두루 읽었고 자본론도 적잖이 이해하며 읽었다고 자부하지만 정작 경제학 이론에 대한 이해 수준은 부끄러울 정도였다.
오늘날 경제 현상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로 중요한지 굳이 역설할 필요 있을까 싶다. 지금 여기의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파악하려면 기본적인 경제 상식은 필수다. 지난 두어달 동안 일간 경제면을 부지런히 읽으며 알게 된 바를 간단히 풀어보는 것으로 사례를 들어볼까 싶다.
2008년 금융 위기를 두고 세계 주요 국가의 언론들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불황이라고 평가했다. 한국 경제도 2008년과 2009년 경제 성장률이 급감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한국 경제가 입은 타격의 수준은 미미했다. 이는 정부가 금리를 대폭 낮추며(기준 금리 2.5%) 시중에 돈을 왕창 풀었기 때문이다.이에 따라 원화 가치도 크게 하락했다. 하락한 원화 가치에 힘입어 수출 기업들은 불황의 여파에 아랑곳 하지 않고 연일 흑자를 기록해 왔다. 낮은 금리와 더불어 작년에 시행된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 조치는 주택담보대출의 폭증을 불러 일으켰다. 1년 국가 예산을 상회하는 가계부채 규모가 더욱 빠른 속도로 불어나기 시작했다.
내가 읽어온 바로는 얼마 전까지 한국 경제 흐름이 이와 같다. 그런데 여기서 사달이 나게 된다. 새해 들어 물가가 빠른 속도로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낮은 금리와 이로 인한 원화 가치 하락은 물가 상승의 주요한 요인이다. 여기에 작년 말 기상재해로 인한 식료품값 상승, 원유 가격이 치솟고 이어 원자재값의 상승, 구제역 여파로 육류값 상승이 분명해 지면서 물가 상승 속도가 아주 가팔라지고 있다. 현 상황은 정부 입장에서 큰 위기다. 여기서 정부가 꺼내들 수 있는 몇 남지 않은 카드가 바로 '금리'인 것이다. 기초적인 경제 상식으로는 다음과 같다. 금리를 올리면 자금 유동성이 낮아지고 시중에 돌아다니는 화폐량도 줄어든다. 원화 가치가 상승하여 수입 물가도 낮아진다. 물가 잡는 데는 '금리'지, 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 그럼 왜 정부는 금리를 팍팍 올리지 않고 있나, 하는 데서 현 정부가 처한 어려움의 정체가 드러난다. 일단 금리를 올릴 경우 가장 크게 우려되는 것이 가계부채다. 장기적으로 고정된 금리로 돈을 빌리지 않고 당장에 낮은 금리를 믿고 돈을 빌린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또한 금리를 올릴 경우 경제 성장률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이는 현 정부 지지도 하락으로 돌아올 수 있다(불행히도 한국 사람 대부분 경제 성장률이라는 수치를 상당히 좋아한다).
다시 책 이야기. 그러니까, 그래서 이 책을 읽기로 마음 먹었다. 게다가 사서 읽었다. 책 소개 기사를 읽을 때만 해도 경제 기사에 등장하는 용어들을 쉽게 풀어준다든가 기본적인 전제가 되는 경제학 이론들을 설명해줄 거라 기대했다. 기대는 어긋났다. 이 책은, 제목과 부제에 아주 약간의 과장이 섞여 있다. '대한민국 불공정 경제학', '당신이 절대 모르는 경제기사의 비밀', "대한민국 경제, 무엇을 믿고 무엇을 의심할 것인가?" 그 불공정과 비밀과 믿음/의심의 핵심은 신문'사'에 존재한다는 게 이 책의 요지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상품 광고나 다를 바 없는 기사 쓰기, 광고를 더 싣기 위해 자꾸 두꺼워지는 오늘날 일간지들, 구독료 없이 광고료만으로 수백억이 넘는 수익을 내는 경제신문들. 더욱 좁아진 광고 시장에서 신문사들은 살아남기 위해 기업 돈을 받아먹기만 하던 전략에서 진화하여 협력과 협박으로까지 나아갔다는 게 고발의 요지다. 저자 본인이 8년여 동안 경제부에서 일하며 보고 들은 업계의 가장 핵심적인 비리를 까발리는 꼴이다. 신뢰하지 않을 수 없다. 신문의 이런 행태가 한국 사회의 신문 구독률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에도 수긍이 갔다. 70%가 넘는 광고료 의존은 전적으로 조.중.동에 책임이 있다는 지적도 분명한 사실이다. 자전거 주고 상품권 주는 불공정 거래 행위로 시장을 아주 지저분하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했던 이야기를 또 하고 계속 한다. 독자들이 똑똑해져야 한다고. 그래야 신문들의 못된 행태를 고칠 수 있고 한국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나는 대로 예를 들어 보면, 하루치 신문에 한 회사의 광고가 실렸는데 그 회사에 대한 기사까지 실렸다면 일단 그 뒷관계를 의심하라. 정책 기사라면 관계 부처 홈페이지에 들러 보도자료를 직접 확인하는 게 좋다. 증권 기사라고 무턱대고 믿지 말라. 신문사가 글을 맡기는 증권사 애널리스트 입장에선 투자가 많아져야 자신에게 이익이므로 경제 전망이 어두우니 투자를 자제하라는 권고를 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경제 기자들이라고 다 아는 게 아니다.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은 별로 없고 공부도 많이 못 한다. 한국경제신문이 현대차파업을 두고 보도하는 행태를 보라. 한국경제신문 최대 주주가 바로 현대차그룹인 걸 알고 있어야 한다. '아이폰, 아이폰'하던 신문들이 갤럭시s가 출시되자 '아이폰 속속들이 문제 발생'이고 '갤럭시s 세계 시장에서 불티나듯 팔린다'고 보도한 이유는 뭘까? 별로 어려운 답도 아니다, 삼성은 국내 최대 광고주니까.
마음 편히 틈날 때마다 읽기 좋은 책이다. 화장실에 두고 읽어도 좋겠고.
201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