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픽션

심윤경 장편소설, 달의 제단

권고마 2009. 2. 9. 10:39

달의제단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소설일반
지은이 심윤경 (문이당,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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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에 등단한 작가 치고 심윤경씨는 꽤 많은 독자층을 보유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작품은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첫번째 작품인 '나의 아름다운 정원'으로 한겨레 문학상을 수상했을 때부터 반응
이 좋았던 것 같다.
헌책방에서 우연히 사게 된 책이다. 산 지 세 달은 넘은 것 같은데 이제야 읽었다. 양장본이어서 좋긴 한데 표지가 좀 많이 구리다. ...표지 디자이너 이름이 안 나와 있는 걸 보니 출판사에서 직접 디자인한 것 같다. 작품 속 장면의 이미지를 그대로 차용해오긴 했는데 일단 무엇보다 촌스럽다.
별로 길지 않은 분량이다. 게다가 아주 재밌게 읽힌다. 속도감 넘치고, 줄거리가 흥미롭다. 작품은 '효계당'이라는 어느 종가집을 무대로 한다. 그리고 옛적 조상의 무덤을 이장하다 발견한 언찰(옛 서간)을 해독한 글과 종가를 배경으로 한 현실이 번갈아가면서 소설을 이끌어나간다. 언찰의 내용과 현실의 이야기는 서로 동떨어져 있지 않고 시간을 뛰어넘은 두 개의 이야기가 결국 파국적인 결말을 만들어 낸다.
필력도 필력이지만 작가가 그리 많지 않은 작품을 발표했고 게다가 등단한지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비교적 많은 독자층을 갖고 있는 것은, 대다수 다른 소설들이 주목하지 않는 소재들을 소설 속에서 구체화시키기 때문 아닐까, 싶다. 박범신씨는 심윤경씨의 소설에 대해 '인문학적 글쓰기'가 돋보인다고 평했다. 개인적으로 많이 동감한다. 당장 이 작품만 해도, 몇 백년 전 조상들이 주고 받는 편지인 '언찰'에 주목하고 그 속에서 이야기를 전개시켜나간다. 그밖에 옛 종가의 의례, 인척들 간의 법도, 그것을 책임져야 하는 젊은 세대의 고민 같은 것들을 발견해냄으로써 아주 참신하고 새롭다.
종가 와 같은 전통 문화의 형태들은 대부분 사라져가고 있다. 당장 안동에 있는 우리 종가만 해도 어르신들도 다 돌아가시고 제대로 남아 있는 사람이 없다고 들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집성촌을 이루며 살아온 동네였다. 나의 개인적인 취향이나 정치적 판단을 떠나,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공간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낸 유형과 무형의 문화들은 보존해야 한다. 현실을 성찰하기 위한 훌륭한 재료가 될 수 있고, 현대의 예술가들이 소재로 삼을 수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거리이자 영감의 원천이 될 수 있다. 가부장성이나 지독한 혈연주의, 폐쇄성 같은 것들은 당장 없어져야 하지만, 이는 사회적인 관심과 주목 그리고 예술가들의 구체화하는 노력을 통해서만 자정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아주 '재밌는' 소설이다. 길지 않아서 부담도 없다. 한국에서 주목할만한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다른 작품들을 읽어볼지는 모르겠다. 인연이 닿으면 읽어보겠지.

참, 우연히 yes24에서 제작한 인터뷰 영상을 발견했다. 2005년 1월에 발표한 영상이다. 심윤경씨 좋아하시는 분들을 위해 소개.
http://www.yes24.com/chyes/ChYesView.aspx?cont=1373&title=003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