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숙 지음, 소금꽃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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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전에 조금 읽고 요 며칠동안 지하철에서 그리고 이부자리에 누워서 책을 다 읽었다. 지하철에서 읽다가 눈시울이 붉어질 때면 당혹스러워서 책을 덮어 버리고 눈을 감고는 했다. 내게는 아주 드문 경험이어서 당황스러웠다.
국방부 불온도서 중 하나로 선정되어 예상 밖으로 많이 팔린 것 같다. 저자인 김진숙씨의 삶이 보여주는 진정성, 쉽고 따뜻한 문장, 어울리는 표지, 이런 저런 것들이 모두 훌륭한 책이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책 속 내용, 20여년 전부터 한국 사회의 노동자들이 겪어야 했던 아주 끔찍한 고통과 탄압의 한복판을 직접 그리는 그 내용이 너무나도 슬프고 우울하기 때문에 사실 많이 팔리기 힘든 책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지금은 해결된 과거의 경험담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사실은 나아진 게 거의 없고 오히려 더욱 어려워지고 고통스러워진 문제이기에 읽는 이로 하여금 죄책감과 부끄러움마저 느끼게 한다.
이 김진숙이라는 사람은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사람인가, 하고 궁금했다. 견딜 수 없어서 눈을 돌려버리든지 죽어버리든지, 아마 대개의 사람은 둘 중 하나를 택했을텐데, 저자는 지금까지도 자기의 삶을 한복판을 거치며 나아가고 있다.
정말 가슴아프고 슬픈 책이다.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동운동, 민주노총, 전교조 등에 대한 얄팍하고 간사한 선입견의 벽을 잠시만 걷고 읽는 그대로 마음으로 느껴보면 된다. 부산에 있는 친구들이 가끔 메이데이나 노동절에 김진숙씨의 발언을 들었다며 자랑하곤 했는데 원고만 읽어도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니 이제 대충이나마 알겠다.
한편 책을 읽는동안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이라는 표현을 저자의 신념으로 이해할 것인가 아니면 개선된 세계의 한 단면에 대한 표현인가, 라는 물음이 계속 따라 다녔다. 비정규직 철폐 마땅히 해야 하고 산별노조 어서 만들어져야 하고 노동자 운동이야말로 현재 한국에서 가장 절실하면서 고된 운동 분야이지만 개인적으로 '노동자 중심주의' 혹은 노동자 '계급'이 전체 운동에서 갖는 '당위적인' 중요성에 동의하지 않은지는 몇 년 됐다. 어쨌든.
얼른 지인에게 선물해주고 싶다. 다시 읽어볼 용기는 없다. 이 가슴아픔을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나눠가져야 한다.
1970년에 죽은 전태일의 유서와, 세기를 건너뛴 2003년 김주익의 유서가 가은 나라. 두산중공업 배달호의 유서와, 지역을 건너뛴 한진중공업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민주당사에서 농성하던 조수원과, 크레인 위에서 농성하던 김주익이 죽는 방식이 같은 나라. ... 이 억장 무너지는 분노를,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이 억울함을, 언젠가는 갚아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언젠가는 고스란히 되돌려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전태일과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123쪽)
자본의 발밑에 짓밟혀 파들파들 떨고 있는 민들레를 한 번 더 짓밟는 게 아니라 그 발을 치워 줘야 합니다. 민들레에게 너희도 시험 쳐서 소나무가 되라고 요구할 게 아니라 민들레에게 숨 쉬고 씨앗 흩날릴 영토와 햇볕을 나눠 줘야 합니다. 민들레가 죽어 가는 땅에선 어떤 나무도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봄이 오면 무얼 하고 싶으세요?, 15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