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논픽션

허지웅 지음, 대한민국 표류기

권고마 2009. 1. 23. 11:01

대한민국표류기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 한국에세이
지은이 허지웅 (수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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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24 뉴스레터에서 알게 된 책. 우석훈씨의 소개글이 실려 있는 걸 보고 읽어보기로 마음먹었다. 게다가 그 날 따라 책을 사고 싶은 욕구가 무척 강렬했다. 그래서 결국 사서 읽게 됐다.
책 표지는 걸리버 여행기를 패러디한 그림이다. 썩 마음에 드는 건 아니다. '수다' 출판사는 인터뷰어로 유명한 지승호씨의 인터뷰 모음집을 두어권 낸 모양이다. 영화 감독들을 대상으로 한 건데 음, 많이 팔렸을 것 같다.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지은이 허지웅씨는 영화 평론가이자 기자이다. 올해로 서른이거나 서른 한 살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김현진씨의 '당신의 스무살을 사랑하라'라는 책이 생각났다. 표지나 광고 카피나 부제나 편집까지 텍스트를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의 것이 구린 탓에 많이 팔리지도 못하고 관심도 많이 끌지 못했던 것 같지만, 나는 무척 공감하며 읽었고 좋아하는 책이어서 후배에게 선물해주기도 했다. 그녀의 블로그도 얼마 전 지인이 알려줘서 가끔 들어가본다. 참 그러고보니 김현진씨를 알게 된 것도 우석훈씨 덕분이다. 여러모로 신세지고 있네.  
두 책 모두, 온전히 자기 힘으로 자신의 생존을 책임져야 했던 20대들의 이야기이다. 학비와 집세와 용돈과 교통비와 밥값과 담배값까지 모두, 자기 힘으로. 이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나는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아주 가까운 친구가 4년째 그렇게 사는 걸 지켜보고 있다. 허지웅씨는 20대의 대부분을 가난하게 살았다. 알바로 점철된 인생이었다고 고백한다.
책에서 가장 흥미로우면서 강렬한 부분은 본인이 직접 경험했던 '고시원' 이야기이다. 1부 맨 앞 두 편의 글이다. 1부의 제목은 '작은 사람들의 나라'인데 저자가 살아오면서 직접 경험한 사건들과 이야기들을 담았다. 부모로부터 정신적, 물질적으로 독립한 20대 대학생이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었던 주거지 - 고시원, 연애와 사랑, 가족에 대한 이야기 등등. 마침내 지금은 꽤 유명한 잡지사에서 일하는, 자기 밥벌이와 적절한 문화 생활을 책임질 수 있는 서른의 직장인이다. 그는 스스로의 힘으로 거기까지 헤쳐 나갔다. 세상을 따뜻하게 볼 줄 아는 눈과, 가끔 튀지만 쉽고 짧은 좋은 문체와, 간지 넘치는 외모를 잃지 않은 채로. 1부의 여러 글을 읽다보면 이 사람 진짜 괜찮은 사람이구나, 싶어진다.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니, 이 정도면 거의 확실하다.
2부 제목은 '큰 사람들의 나라'이다. 세상사에 대한 이야기이다. 2008년 봄의 촛불 집회에 대한 글이 많다. 선거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그가 자주 하는 말이 주머니 사정에 따라서 투표하라, 이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그도 알고 나도 안다. 그는 현실이 그러한 이유로 '가치관'이란 게 있음을 언급한다. 여기까지는 참신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다시금 '주머니 사정에 따라 투표하라'고 자주 외친다. 이 대목은 좀 나이브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다른 많은 글에서 그가 공부를 꽤 많이 했다는 것을, 게다가 실천에서도 역시 적극적임을 알 수 있었다.
3부 '하늘을 나는 섬의 나라'는 주로 2008년에 한국에서 개봉한 영화들의 평론을 모았다. 오래된 영화도 있다. 처음엔 왜 뜬금없이 평론이지, 하고 생각했었다. 기잔데 그의 평론은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충분히 읽어볼 수 있는 거 아닌가 싶었다. 게다가 개인적인 사건과 삶에 대한 글인 1부, 그리고 그렇게 10년을 살면서 만들어진 시선과 문체로 세상사를 논하는 2부, 근데 3부는 갑자기 영화 평론?
뭐 인터넷에서 읽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근데 영화 평론을 담은 건 조금 생각해보니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그는 영화 평론을 업으로 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독자들이 1부와 2부를 통해 알 수 있는 그의 시선은 영화 평론에서도 여전하다. 자기 생각과 가치관을 숨기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 영화는 한국 사회에서 그 영향력이 막강하다. 여러 예술분야 중에서 으뜸이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한국 사회의 한 단면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영화 평론에서의 문체는 다른 산문들과는 맛이 좀 다르다. 술술 재밌게 읽히는 것은 마찬가지 지만.
그런데 쓰고 보니 다시 알쏭달쏭해졌다. 왜 굳이 영화 평론을 담았을까? '하늘을 나는 섬의 나라'라는 제목과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 나 걸리버 여행기 읽었는데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