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석 지음, 디아스포라 기행
'디아스포라'라는 어감은 멋있으나 막상 뜻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 이 단어가 무슨 뜻인고 하면, '디아스포라라는 말은 원래 '이산(離散)'을 의미하는 그리스어로, 최근 들어 다양한 이산 민족을 일반적으로 지칭하는 소문자 보통명사로 사용하게 되었다. 즉 자기가 속해 있던 공동체와 땅을 떠나도록 강요당한 사람들은 모두 디아스포라인 것이다'. 이스라엘 건국 이전의 유대인들은 모두 디아스포라였던 셈이고, 이라크나 팔레스타인이나 레바논 등을 고국으로 둔 세계 각지의 모든 난민들도 디아스포라 라고 볼 수 있겠다.
내게 가장 인상깊은 디아스포라 예술가는, 가네시로 가즈키 이다. 그의 소설 'GO'가 아주 아주 강렬하고 재밌었기 때문이다. 가네시로 가즈키는 그 나름으로 자신의 디아스포라로서의 삶을 종식시키고 있는 것 같고, 나름의 결단을 내린 것 같지만, 그로 하여금 'GO'와 같은 소설을 쓸 수 있게 한 것은 태어나서부터 그를 구속했던 '재일조선인'이라는 디아스포라의 굴레였을 것이다.
그와 더불어 기타노 다케시가 주연했던 영화 '피와 뼈' 또한 '재일조선 그리고 디아스포라' 라는 화두를 생각하면 내 머릿 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중 하나이다. 극 중 주인공의 냉정하고 잔인하고 극악한 모습, 그 모습 또한 재일조선인들의 삶의 한 단면을 드러낸다. 그 밖에 재일조선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일본인 혹은 조선인 혹은 한국인 예술가들이 무척 많은데, 나는 그들이 '재일'이라는 걸 알게 될 때마다 '디아스포라'라는 삶의 굴레가 강렬한 예술적 영감의 원천인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이는 달리 말하면 그만큼 매우 고통스러운 경험이라는 뜻도 될 것이다.
디아스포라들, 서중식 선생과 같은 사람들의 존재는 인류에게 그 자체로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의 실존의 고통을 댓가로 다른 시선, 다른 관점을 얻게 된 것 같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는 인류의 고통의 종류 중에서 가장 근원적인 편에 속하는 그 삶, 자발적 방랑자가 아닌 빼앗긴 디아스포라의 삶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국민 국가, 민족 등과 같은 개념들의 외부에 서서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바라볼 수 있게 되려면, 특히 한국에서는, 많은 우연이 필요하다. 그래서 한국에서 스스로 자신은 민족주의자가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보기도 어려운 것이다. 즉 일본과의 독도 문제, 중국과의 동북 공정, 여러 북방에 대한 사극 등을 비판적인 시선으로 볼 줄 아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려운 것이다.
책은 서경식 선생이 세계, 주로 유럽과 한국을 여행하면서 접한 디아스포라 예술가들의 작품을 화두로 삼아 예술가 본인에 대한 이야기 등을 이어나간다. 여러 미술 작품들의 사진이 컬러로 담겨 있어서 좋았다. 평소 미술은 거의 접하지 않고 살아와서 그만큼의 감흥을 더 느낄 수는 없었던 게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