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석 지음, 잊을 수 없는 혁명가들에 대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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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계정에 오는 메일들은 거의 다 읽는다. 읽을만한 가치가 없는 것들은 귀찮더라도 수신거부하거나, 귀찮으면 그냥 스팸메일함에 넣어 버린다.
yes24에서 오는 메일 중에 '다락편지'와 '예스공감'이라는 게 있는데 이게 그나마 읽을 만하다. 다른 건 대체 화장품 광고가 들어있질 않나, 여튼 조만간 스팸함에 넣어버리든가 수신거부할 계획이다. '다락편지'에 고정적으로 글을 기고하는 사람 중에 '최성일'이라는 분이 있는데 이 분이 쓴 리뷰 덕택에 알게 되었다.
책 표지 디자인이 아주 깔끔하고 마음에 든다. 희미한 글씨로 책 속에 담긴 혁명가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윤자영, 김단야, 임원근, 박헌영, 강달영, 김철수, 고광수, 남도부, 안병렬.
이현상이며 이관석, 이주하 등등 일제 시대의 공산주의 독립운동가들 중에 대중적으로 알려진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나마 이현상은 평전이라도 나왔다. 사실 독립운동가들 중에 제일 힘들고 고되게 활동한, 그리고 가장 진정성있는 부류들이 공산주의 운동가들이다. 통계적으로는 모르지만 이승만처럼 아예 미국으로 떠버린 개껍데기만도 못한 인간은 제외하고, 한반도와 한반도 인근 지역에서 자신의 삶을 걸고 독립운동한 사람 중에 절반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공산주의자였거나 공산주의 관련 조직에 몸담았을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인물 중에 윤자영, 김단야, 박헌영, 강달영, 김철수, 고광수 이렇게 6명 모두 독립운동에 뛰어든 계기가 3.1운동 이었다고 말한다. 특히 3.1운동은 공산주의 운동이 조선에 전파되는 계기이기도 했다. 불과 3년 전이었던 1917년의 러시아 혁명이 가장 직접적인 계기였다. 현실적인 예를 들면, 세계의 어느 나라도 극동의 작은 조선이라는 나라의 독립운동가들을 지원하지는 않았는데 러시아 공산당과 코민테른(제3인터내셔널)만은 달랐다. 돈과 교육을 제공했으니까 말이다.
김단야와 박헌영에 대해서는 대략이나마 알고 있었고, 가장 인상깊었던 인물로는 강달영과 안병렬이었다. 강달영은 1925년에 창당한 조선공산당이 그해 11월 제1차 검거사건으로 대부분의 지도부가 검거도거나 망명한 후에 책임비서가 된 인물이다. 1888년생이다. 예전에 조공사를 공부할 때 심약한 인물이었다 라는 평을 본 기억이 있다. 왜냐하면 제2차 검거사건으로 잡힌 강달영은 상상할 수 없는 온갖 육체적, 심리적 고문 끝에 결국 미쳐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단편적으로 평가해선 안 됨을 절실히 깨달았다. 실제 기록을 보면 검거 후 심문 과정에서 책상에 머리를 찍어 자살을 시도하는 등 당의 기밀을 지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주요 극비 문서까지 발각되고 말았고, 검거사건의 여파는 시간이 지날수록 커져 갔다. 그는 부담감과 미안함,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죄책감에 극도로 시달렸을 것이고 거기에 일본 경찰의 고문은 결국 그의 자의식을 파괴하고 만 것이다. 그는 1932년에 출옥해 10년 뒤 죽었다고 한다.
안병렬은 조금 뒤의 인물이다. 1917년 생이다. 사망 년도는 알 수 없다. 6.25 전쟁 당시 적지의 수도 바로 인근에서 활동한 빨치산 부대 '동해여단'에 소속돼 있었는데 시체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가 북으로 넘어갈 가능성은 0%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가 인상깊었던 것은, 젊었을 때 일본에서 유학하면서부터 천재 소리를 들은 경제학자였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조선에 돌아와서도 학계에 몸담은 지식인이었다. 특히 농업 문제에 관한 맑스주의 경제학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1948년, 3.8선 이남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월북했고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빨치산 부대의 일원으로 남하했다.
무척 재밌게 읽었다. 개인적으로, 비록 '20세기 사회주의'는 실패한 기획이었음이 분명하지만, 마찬가지로 공산주의자였던 체 게바라도 세계적인 우상으로 추앙받는 마당에 이현상이나 강달영, 안병렬 같은 한국의 공산주의자들이 후대들에게 조금이라도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김어준씨 말마따나 '세상사 다 행복하자는 수작 아니더냐', 이 사람들은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같이 행복하면 좋겠다 싶어서 자기 삶까지 헌신해버린 사람들이다. 나는 그렇게 못할망정, 그들에 대한 최소한의 존경이라도 품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