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픽션

에밀 아자르 소설, 가면의 생

권고마 2008. 12. 3. 01:43
가면의생
카테고리 소설 > 프랑스소설
지은이 로맹 가리(에밀 아자르) (마음산책,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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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많은 작품을 읽은 작가가 로맹 가리이다. 비율적으로 보면 말이다. '유럽의 교육',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하늘의 뿌리', 그리고 '가면의 생' 까지. 번역돼 출판된 작품들은 10편이 넘지 않는 것 같다. '가면의 생'은 에밀 아자르로 발표한 마지막 4번째 작품이다. 젊었던 때부터 쓰기 시작해서 40년이 넘게 손에 쥐고 있었던 작품이었다고 한다. 1976년, 죽기 5년 전에 발표한 작품이다.

확실히 로맹 가리는 매우 흥미로우면서도 이상한 사람이다. '유럽의 교육'이나 '하늘의 뿌리'같은,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고 상도 받은 작품들은 보편적인 감동과 교훈적인 메세지와 휴머니즘적인 인물들이 특징적인 반면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와 이 작품 '가면의 생'은 솔직히 말해서 통독 한 번으로는 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 못하는 문장이 1/4은 넘는다. 분량이 길지 않은 편이어서 겨우 다 읽을 수 있었지, 읽는동안 졸려서 잠든 적이 두 세번이나 된다.

대충 무슨 이야기인 줄은 알겠는데... 솔직히 말해서 깔끔하게 줄거리를 정리하지는 못하겠다. 주인공이 바로 '에밀 아자르', 아직 로맹 가리와 에밀 아자르가 동일 인물임이 알려지기 전이었던 당시에는 작가 자신을 주인공을 내세웠다고 생각하며 작품을 읽었을 것이다(로맹 가리의 유서가 알려지고 나서야 밝혀진다). 근데 이름이 워낙 많다. 폴, 파블로비치, 팔레비... 대여섯개의 이름이 등장한다. 고정적으로 존재하는 인물은 두 세 명 뿐이다. 외삼촌 통통 마쿠트와 덴마크에 있는 정신병원 의사, 크리스티안센 박사. 아마 통통 마쿠트니, 크리스티안센 박사니 모두 작가 자신의 분신이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통통 마쿠트는 실제로 존재하고 이미 기성 작가의 반열에 오른 로맹 가리의 분신인 것처럼 보인다. 

로맹 가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는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러시아에서 태어난 유태계 프랑스인이었다. 아버지의 정체는 모르고 어머니와 둘이서 살았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성공하기를, 떳떳한 프랑스인으로 살아가기를, 관료가 되기를, 작가가 되기를 희망했고 아들은 어머니가 바라는 모든 것을 이뤄냈다. 한마디로 그의 삶은 전반적으로 '성공적'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마음 속에는 세계대전의 상처와 프랑스 이민자들의 인권과 창녀들의 삶에 대한 동정 또한 온전하게 살아 있었던 것 같고, '자기 앞의 생'에서 모모는 마지막으로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본인은 사랑도 불가능할 것 같은 절망적인 현실에 끊임없이 괴로워했던 것 같다.

또 숨 쉬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사람들이 처음으로 나를 감금한 것은, 내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의 호흡 횟수를 1,000번으로 제한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였다. 숨을 참고 있자 사람들은 다짜고짜 내 얼굴을 후려쳤다. 왜냐하면 그런 일은 파스칼, 예수, 솔제니친에 대한 모독이자 불경죄이자 모욕이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인류의 면전에 침을 뱉는 일, 다시 말해서 문학에 가할 수 있는 가장 커다란 모욕이었다. (19쪽) 

"걸작 같은 건 없어도 좋으니까 피노체트 같은 인간이나 사라졌으면 좋겠어요, 통통. 솔제니친 같은 작가가 나오지 않더라도 똥과 피가 없는 편이 낫고요.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위대한 작가가 있는 것보다는 라스콜리니코프 같은 불행한 사람이 없는 편이 더 좋아요. '전쟁과 평화'는 원가가 너무 비싸게 든 셈이죠." (37쪽)

작품이 쓰여졌던 당시 칠페의 피노체트가 아옌데 대통령을 사살하고 쿠데타로 독재에 성공했던 모양이다. 작품 속에서 '피노체트'라는 이름이 자주 등장한다. 예수도 등장하고, 모모도 등장하고, 괴테도 등장한다. '가면의 생'은 로맹 가리이자 에밀 아자르였던 한 소설가의 문학적 자전인 것 같기도 하다.

거기에 내가 붙잡을 만한 단단한 그 무엇이 있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책이었다.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 아무래도 좋았다. 중요한 것은 작품에 담긴 재능인 것이다.
나는 스스로 멋지다고 느꼈다.
나는 스스로 순결하다고 느꼈다.
나는 스스로 질서에 부합한다고 느꼈다.
나는 나 자신을 프랑스에, 인류에 헌정했다. 인류는 나에게 자신의 고통을 주었고 그 대가로 나는 한 권의 책을 주었다. 우리는 서로 비긴 셈이다.
빌어먹을, 문학은 우리 모두보다 훨씬 더 위대하다. (205쪽)

작품에서 알게 된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2차대전 당시 덴마크는 유태인들을 옹호했었다고 한다. 덴마크 왕은 유태인들을 옹호하기 위해 별모양 완장을 찬 채로 말을 타고 시내를 다니기도 했다고. 와, 어째 덴마크라는 나라는 어쩜 이렇게 멋있냐.
작품 끝 부분에서 주인공이 신 과 나눈 대화를 옮겨 놓는다. 그의 문학적 자전의 핵심인 것 같아서 좀 길긴 하지만.

"걸작들만이 중요해, 파블로비치. 나는 단테, 셰익스피어,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를 정말 흡족한 기분으로 늘 읽고 또 읽고 있지."
"그럼 내 책은요? 내 책도 읽었나요?"
"물론이지. 나는 새로운 것에도 관심을 가지려고 애쓰고 있어. 내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한 것은, 문학과 음악과 미술을 사랑하기 때문이야. 그런 애정이 없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거야. 그러니 미래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 마라. 내가 미래는 관장하고 있어. 앞으로도 무척 아름다운 노래들이 나올 거야. 네겐 재능이 있어, 아자르. 하지만 넌 지나치게 네 자신에게만 신경을 쓰고 있어. 타인의 고통에 더 많이 관심을 쏟아봐. 멋진 책들이 아직 더 나와야 해. 인간은 무용하게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게 아니란다, 아들아. 다 익은 알곡과 수확된 보리는 행복하다. 너 자신과 거리를 두고 다른 사람의 고통을 들여다봐. 서사, 파블로비치, 서사적 작품을 쓰는 거야. '자아'는 지나치게 내면적이고 제한적이고 이내 고갈되고 말지. 작가에게 인간이란 주제의 광산, 명실상부한 금광이야. 네 주위를 둘러봐. 칠레, 수용소, 학살, 가혹한 박해 같은 걸 여전히 찾아볼 수 있잖아. 넌 위대한 작가가 될 거야, 아자르. 그들이 무용하게 죽어간 것이 아니야."
"난 중국에 가서 살겠어요."
"그래. 문학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거기에 많은 가능성이 있어." (21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