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를 그린 100년 전의 이야기 : <체호프 단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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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몬드 카버 덕택에 알게 된 체호프.
알고 보니 문학사적으로 엄청난 위치를 차지하는 작가인 모양이다. '기 드 모파상과 함께 현대 단편소설의 완성자'라는 수식어가 가장 인상적인데, 읽고 나니까 전적으로 동의하게 된다.
1860년~1904년, 44살로 생을 마감한 러시아 작가이다. 체호프를 알고 나니까 19세기~20세기 초 러시아 문학의 위대함 이랄까, 경이로움? 그런 걸 비로소 깨달은 느낌이다. 와, 소름이 돋을 정도이다. 내가 최근에 접한 작가들만 해도 도스또예프스끼, 고리끼, 체호프, 이 사람들이 비슷한 시기에 작품을 썼고, 서로 편지를 주고 받으며, 동일한 시대를 살았다니! 도스또옢스끼가 그렸던 러시아 뻬떼르부르끄의 그 음울한 정경 속에 체호프도 있었다고 상상해보라. 나는 100여년 전에 러시아가 있었다는 게 무척 고맙다.
관리의 죽음
공포
베짱이
드라마
베로치카
미녀
거울
내기
티푸스
주교
여러 작품이 1880년대와 1900년대 초에 씌어진 것들이다. 이전에 번역되지 않은 작품을 고른 단편선이라니까 아마 전성기였던 1890년대의 여러 작품들은 이미 번역돼 있는 모양이다.
거의 100여년 전에 쓰여진 작품인 게 믿기지 않는다. 인물과 심리에 대한 묘사가 현대의 것이라고 해도 한 점 의심없이 믿을 것이다. 소설의 구성도 그렇다. 현대 단편소설의 공통적인 여러 특징들을 거의 모든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다.
'공포'는 인생의 모든 것을 두려워 하는 한 남자와 그의 부인, 그리고 남자의 친구인 주인공의 이야기이다. 남자는 친구에게 사람들이 왜 '유령'을 두려워하는지 아느냐고 묻는다. 주인공은 아마도 인간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니까, 그런 것 아니겠냐고 대답한다. 그러자 남자는, 그렇다면 당신은 우리의 삶과 인생은 이해할 수 있겠냐고, 그것이야말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되묻는다. 그래서 자신은 삶과 인생이 가장 두렵다는 것이다. 120여년 전 체호프가 그려낸 그 남자는 현대에도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있어서 문학과 영화와 그림 속에서 자주 등장한다. 또 러시아 농촌 풍경에 대한 묘사, 특히 안개에 대한 묘사가 멋지다.
'내기'는 소재가 무척 흥미진진하다. 사형제와 종신형에 대한 논쟁을 벌인다. 부유한 은행가는 감금된 삶보다는 죽음이 보다 인간적이라는 입장이고, 25살의 젊은 변호사는 그래도 살아 있는 게 낫다는 입장이다. 둘의 논쟁 끝에 젊은 변호사는 자신이 15년동안 감금된 채로 살아볼테니 15년을 온전히 참아낸다면 200만 루블을 달라는 내기를 제안한다. 주인공 은행가는 내기를 흔쾌히 수락한다. 여기까지만 봐도 충분히 흥미롭지 않나?
모든 단편이 재밌다. '관리의 죽음'은 불과 6쪽에 불과한데, 와 그 결말이 정말... 뭐라 말해야 될까. 허무함과 뒤통수 맞음의 최고랄까. 10쪽짜리 단편 '드라마'도 비슷한 작품이다.
마지막 단편 '주교'는 죽기 2년 전에 쓴 작품이다. 삶과 관계의 허무함을 묘사하는 통찰력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 역시 주교와 같은 죽음을 예감했던 것일까? 그러나 그는 죽은지 100년이 지난 뒤에도 아시아 대륙 극동의 작은 나라에 살고 있는 어느 청년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체호프 선생님, 당신은 주교가 아니었나봅니다.
"말 좀 해보시오, 친구. 무시무시하거나 비밀스럽거나 환상적인 이야기를 할 때, 우리는 어째서 실제의 인생으로부터가 아니라 꼭 유령이나 저승 세계에서 소재를 취하는 것일까?"
"이해할 수 없으니까 무서운 거지"
"아니 그렇다면 인생은 이해가 되시오? 말해 봐요, 그래 당신은 저승 세계보다 인생을 더 잘 이해한다고 생각합니까?" (공포, 1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