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세풀베다 장편소설, 지구 끝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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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로 읽는 루이스 세풀베다의 소설.
'연애소설 읽는 노인'처럼 분량이 무척 짧다. 이런 짧은 책까지 양장으로 만드는 건 불필요하지 않을까? 뭐, 출판사 마음이지만, 가격이 9000원 가까이 되면 좀 억울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여러 장편들을 한 권으로 묶어 내어도 두꺼운 책이 될 것 같지는 않다.
깔끔하고 간단한 문체와 선명한 주제 의식. 많은 작품들에서 작가는 자연과 생태계가 파괴되는 현장을 다룬다. '지구 끝의 사람들'은 남미 대륙 최남단 인근 바다에서 고래를 학살하는 현장을 그리고 있고, '연애소설 읽는 노인'은 빠른 속도로 파괴되는 아마존 밀림을 배경으로 한다. 세풀베다는 전혀 교훈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그 현장을 독자에게 보여줌으로써 자연스럽게 생태계의 아픔을 목격하도록 만든다. 또한 자연, 혹은 생태계를 구체적인 남아메리카의 풍경으로 묘사하기 때문에 다른 대륙의 독자들은 아름다우면서 환상적인 느낌마저 받게 된다.
바다와 해상 가공선 사이에 연결된 직경 2미터가 넘는 관이 바닷물을 빨아들였다가 내뿜고 있었는데, 그로 인해 생기는 물결의 파장과 모터 진동음이 워낙 강력한 탓에 두 사람이 타고 있는 소형정에서도 느껴질 정도였다. 두 사람은 선박 주위를 시커멓게 물들이고 있는 바다에서 관을 통해 새끼 돌고래들이 빨려 들어가는 장면과 선미의 배수관을 통해 시뻘건 내장과 찌꺼기들이 쏟아져 나오는 장면을 바라보며 할 말을 잃고 있었다. (107쪽)
짧아서 책을 펴는 게 부담스럽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하기 딱 좋겠다.
"무엇을 쓰게 될 것인지 그건 나도 모르겠어. 그렇지만 당신에게, 그린피스 친구들에게, 나의 동업자들에게 꼭 한 번은 얘기할 생각이야. 물론 그 이야기를 믿고 안 믿고는 각자의 마음이지만 말이지. 분명한 것은 내가 그곳의 일부분이 되는 순간만큼 그렇게 확실한 자아를 느껴 본 적이 없었다는 거야. 닐센 선장의 말이 떠오르는군. 그분은 자신의 삶에 대해서 얘기하던 중에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어떤 배를 언급했는데, 그 배를 생각할 때마다 가장 가깝게 연상되는 게 조국이라고......" (15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