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픽션

위화 장편소설, 허삼관 매혈기

권고마 2008. 11. 9. 10:40
허삼관매혈기
카테고리 소설 > 중국소설 > 중국소설문학선
지은이 위화 (푸른숲,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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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님의 지식인의 서재 에서 처음 알게 된 책이고, 반딧불이님이 추천한 책이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그냥 유명한 책이라고만 생각했다. 얼마 전 친구와 대화하다가, 유명한 사람 중에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있냐고 묻길래, 나는 딱히 없다고 대답했다. 근데 그 친구는 '위화'를 만나보고 싶다는 것 아닌가. "어, 위화? 허삼관 매혈기의?" 하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때서야 비로소 이 작가가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네이버 검색해봐도 그렇고 yes24 리뷰 건수도 그렇고 무척 많은 사람들이 읽은 책인가보다. 왜 이렇게 유명하지? 나는 얼마 전에 처음 들었는데. 뭔가 계기가 있나? 작품을 토대로 한 영화도 많다던데, 그 영화 중 하나가 한국에서 크게 성공한건가? 음, 음, 음. 궁금해진다!

'피를 파는 이야기'라고 해서 처음엔 특별한 소재를 다루는 흥미로움이 가득한 환상적인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예상과는 달리, 어쩌면 흔한 어느 아버지의 이야기, 어쩌면 흔한 어느 가족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는 가족이 위기에 닥칠 때마다 '피를 팔아' 위기를 넘겨왔을 뿐이다. 책 소개 문구를 읽다가 영화 '효자동 이발사'의 감독이 배우 송강호에게 이 책을 권했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두 작품에 등장하는 '아버지'의 삶과 감정의 흐름이 얼추 비슷한 것 같다. 고 이문구씨도 이 작품과 위화라는 작가를 극찬했다던데. 이거, 칭찬이 여간 많은 게 아니다.

음, 확실히 그럴 만하다. 한 남자와 한 가족의 삶들이 중국 근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과 얽혀 들어가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솜씨. 생생하게 살아있는 인물들. 그리고 소설 곳곳의 웃음들. 슬픈 이야기를 웃기게 할 줄 아는 재주야말로 이야기꾼으로서 가장 소중한 재능이 아닐까, 얼마 전 이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생각해보면 많은 훌륭한 작품들이 그렇기도 하고 말이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쉽게 공감할만한 사건들. 허삼관과 일락이의 관계는 무척 감동적이었다.

서평 쓰다보니 쓰기 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작품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지루하지 않게 읽긴 했지만 별점 다섯개 줄 정도(이 식상한 표현이란...)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음, 사서 다시 읽어볼까? 진지하게 고민해봐야겠다.

"너희들이 지금 제일 하고 싶은 게 먹는 거라는 거 나도 안다. 밥에다 기름에 볶은 반찬...... 고기며 생선이며 하는 것들이 먹고 싶겠지. 오늘이 내 생일이니까 너희들도 같이 즐거워야겠지. 설탕을 먹었어도 뭔가 또 먹고 싶다는 거 내 안다. 뭐가 또 먹고 싶으냐? 까짓 내 생일인데 내가 조금 봉사하지. 내가 말로 각자에게 요리 한 접시씩을 만들어 줄 테니 너희들 잘 들어라. 절대 말을 하거나 입을 열면 안 된다. 입을 열면 방귀도 못 먹는다구. 자 다들 귀를 쫑긋이 세우고. 그럼 요리를 시작하지. 뭘 먹고 싶은지 주문부터 해야지. 하나씩 하나씩, 삼락이부터 시작해라. 삼락아, 뭘 먹고 싶니?" (159쪽)

중국 사회를 이해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되는 책이다. 중문과 수업을 그렇게 많이 들었는데 이 책 한 번 읽어보라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듣지 못했다.

한편, 문학과 예술을 검열하는 지구 상에 몇 안 되는(아니다, 많을지도 모르겠다) 나라 중 하나인 중국. 중국의 예술가들은 얼마나 괴로울까. 창작하고 싶은, 그리고 창작할 수 있는 재주를 가진 사람들에게 창작의 자유가 없다는 것만큼 괴롭고 슬픈 일이 더 있을까. 역자는 중국어판 서문과 한국어판 서문이 미묘하게 다름을 지적하며 이 문제를 잠깐 언급했다. 그러게 말이다.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