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픽션

로맹 가리 장편소설, 유럽의 교육

권고마 2008. 11. 4. 10:52
유럽의교육
카테고리 소설 > 프랑스소설
지은이 로맹 가리(에밀 아자르) (책세상, 2003년)
상세보기

그렇다, 로맹 가리의 데뷔작이다. 1944년, 전쟁 중에 발표한 작품이다. 1914년 생이니까 서른 조금 넘었을 때이다.

그의 화려한 경력 중에는 제 2차 세계대전 참전 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그는 지상의 추악하고 구체적인 전투가 아니라 공군 대위로 활약했다. 커트 보네거트처럼 고통스러운 포로 생활을 겪은 것도 아니었다. 소설 속 이야기처럼 추운 겨울, 폴란드의 빨치산이 되어본 적은 없을 것이다. 폴란드에서 살아본 적은 있다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 로맹 가리가 아주 진실된 휴머니스트였을 것이라는 심증이 더욱 굳어진다. 해설처럼, 그는 화려한 스타의 삶을 대중에게 보여주며 살아 왔지만, 거의 모든 작품에서 인간을, 자신의 종을 사랑한다. 자신의 종의 미래를 긍정하려고 노력한다.

" ... 그에게 유럽의 교육이란 폭탄, 학살, 포로 총살, 짐승처럼 구덩이 속에서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 뭐 그런 거지. 하지만 나는, 나는 도전에 응하겠어. 자유, 존엄성, 인간으로서의 명예, 그 모두가 결국은 사람들로 하여금 목숨을 내놓도록 만드는 한 편의 동화일 뿐이라고 얼마든지 말해도 좋아. 진실이란 역사의 순간 속에,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과 같은 시간 속에 있어. 그런 때에는 인간이 절망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모든 것, 인간에게 믿음을 갖게 해주고 계속 살아가게 해주는 모든 것이 은신처를, 피난처를 필요로 하지. 그 피난처는 음악일 수도 있고, 시일 수도 있고, 책일 수도 있어. 나는 내 책이 그런 피난처 중 하나가 되기를 바라지. 전쟁을 겪은 후, 모든 것이 끝난 후 그 책을 펼 때 사람들이 아직 다치지 않고 남아 있는 자신들의 선의를 다시 발견하게 되기를 바라지. 저들이 우리를 짐승처럼 살게 했지만 우리를 절망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되기를 원해. 절망한 예술이란 없어. 절망스러운 것, 그건 오직 재능이 부족하다는 것뿐이지." (79쪽)

유럽의 교육, 은 빨치산이 된 14살 소년의 이야기이다. 폴란드 어딘가의 추운 산악지대. 어머니는 독일군에게 창녀로 잡혀 있고, 의사였던 아버지는 주인공 야네크를 산 속 은신처에 숨겨놓은 채 인질로 잡힌 부인을 구하기 위해 독일군과 싸우다 죽는다. 혼자 남은 야네크는 이기호 소설집에서 흙을 먹은 소년처럼 홀로 며칠동안 토굴에 숨어 있다가, 아버지의 말을 기억하고 빨치산을 찾아 떠나고,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성장한다. 이 소설은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그러나 그녀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고통을 겪는 데 '마지막'은 없었다. 그리고 희망은, 새로운 고통을 견뎌내도록 인간을 격려하기 위한 신의 술책에 지나지 않았다. (194쪽)

그때 문득 야네크에게는 인간 세상이 어떤 거대한 자루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이 먼 채 꿈만 꾸는 감자들이, 자루 속에서 무정형의 덩어리를 이루며 발버둥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인간성이라는 것이었다. (269쪽)

책을 읽어보니 많이 팔렸을 만하다. 이 책은 영국에서 먼저 출판됐다고 한다. 원고를 읽어본 영국 출판사들이 책의 성공 가능성을 예감하고 출판했다는 것이다. 영국('분노의 숲'), 프랑스('유럽의 교육'), 미국('중요한 것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에서까지 큰 성공을 거두었다.

로맹 가리는 고르게 뛰어난 작가인 것 같다. 묘사의 적절함, 서사의 흥미로움과 감동, 세계의 구체성과 참신함 등. 특히 세계와 개인의 갈등을 잘 그려내는 것 같다. 그리고 '자기 앞의 생'이 특히 그러한데, 소설 속 인물들은 주류보다 비주류에 속해 있다. 그렇다고 해서 혐오스러운 비주류적인 인물들은 아니다. 독자들이 적당한 연민과 따뜻함을 품을 수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의 소설에는 인생에 대한 훌륭하고 교훈적인 메세지가 많다. 그래서 소설을 읽다보면 메모해놓고 싶은 구절이 많다. 인류, 예술, 음악, 전쟁, 생명 등등 당시 사회에 대한 좌파적이고 인간적인 메세지들이 담겨 있다. 개인적으로 평가해보자면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소설'을 많이 썼다.

20세기는 인류에게 여러모로 골치아픈 문제들을 던져 줬다. 에릭 홉스봄 같은 역사학자를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20세기의 수많은 문제들 앞에서 도망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로맹 가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인간이라는 종을 긍정할 것인가 부정할 것인가, 그 정도로 회의적이고 암울했던 20세기에 로맹 가리는 긍정의 끈을 놓지 않았던 것이다. 냉소하고 회의하지만 언제나 마지막에는 희망과 긍정을 말하려 노력했다. 그래서 나는 그를 좋아한다.

수없이 많은 세월이 흘러오는 동안 얼마나 많은 꾀꼬리가 어둠 속에서 그렇게 노래를 불렀을까? 야네크는 생각했다. 믿음을 품고 영감을 받은 인간 꾀꼬리들이 이 영원하고 경이로운 노래들을 부르며 얼마나 많이 죽어갔을까? 매혹적인 목소리에 담긴 약속이 실현되기도 전에, 추위와 고통과 경멸과 증오와 고독 속에서 또 얼마나 많은 인간 꾀꼬리들이 죽어가게 될까? 또 얼마나 많은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탄생이, 얼마나 많은 죽음이 필요할까? 얼마나 많은 기도와 꿈이, 얼마나 많은 꾀꼬리가 필요할까? 얼마나 많은 눈물과 노래가, 얼마나 많은 어둠의 노래가 필요할까? 얼마나 많은 꾀꼬리가 필요할까? (28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