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픽션

김종은 연작소설, 첫사랑

권고마 2008. 10. 28. 11:11
첫사랑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소설일반
지은이 김종은 (민음사,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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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가 참 예쁜 책, 정말 마음에 든다, 이 책으로 김종은씨에 대한 평가는 역전, 앞으로 그의 작품은 다 읽어볼 것이다, 가슴 따뜻한 감수성을 품고 있는 친구에게 선물하면 좋은 책.

내 사랑하는 책 - 천사의 말은 알아들을 수 없다 #1
자전거 빌려 타기 - 그녀가 있던 뜨락 #1
대관람차 - 그녀가 있던 뜨락 #2
바른생활 - 그 어딘가, 구슬 뭉치가
예술의 전당 -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1
스트레스 걸과 구필 선생 -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2
사랑한다면 삼촌처럼 - 절 위해 죽을 수 있겠어요?
일식 - 펀치 레터 스캣 #1
러브 레터 - 펀치 레터 스캣 #2
고백 - 녀석에게도 바람이 불어왔다
화평 슈퍼 골목의 비너스 - 1986년 나와 프라이팬의 첫사랑
에덴 파크 - 1993년 누군가의 첫사랑
칼에 찔리다 - J군의 입맞춤 이야기
받은 편지 보관함 - 천사의 말은 알아들을 수 없다 #2

어쩌면 김종은씨에게는 '무거운 궤짝'보다는 '가볍고 신선한 등푸른 생선'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서울 특별시'보다 이 연작 소설집을 훨씬 재밌게 읽었기 때문이다. 뭐 그의 첫 단편집 '신선한 생선 사나이'는 아까 전에 주문했으니까, 며칠 뒤 도착할 그 책을 읽은 뒤에 내 감상은 더 세밀해질 것이다. 이 연작소설집도 살까 말까 고민이다. 사서 가지고 있을만한 책이라는 생각은 확실한데 아무래도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으니까... 이미 읽은 책인데 사는 경우는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고 싶어서 인데, 목록을 보듯 워낙 작품이 많고 일관된 서사가 명확하게 서 있는 건 아니어서 선물하기 좋을지는 판단하기가 힘들다.

물론 주인공 정은은 모든 작품에서 동일한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이름부터 이미 작가의 어릴 적 분신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서정, 정윤, 성진 등 어릴 때부터 함께 한 친구들의 이름도 여러 번 등장한다.

어쩌면 소설이라고 보기에는 허구가 거의 없다. 해설 말마따나 '이야기'에 가깝다. 시작과 끝이 있고 화자가 명확한 '이야기'. 작가 본인의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

그렇지만 '첫사랑'이라는 주제로 이렇게 많은 이야기 거리를 풀어낼 수 있다는 게 정말 놀랍다. 물론 '나를 키운 모든 것이 첫사랑'이라고 쳐도, 이렇게 많은 것들을 사랑하면서 살아온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 사랑을 모두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의 첫 단편집 '신선한 생선 사나이'에 실린 단편들도 모두 기억에 관한 것이라던데, 그는 추억과 기억을 되살려내어 이야기로 만드는 일을 참 좋아하나보다.

"첫사랑이 그렇잖아. 나는 그게 시간의 힘이고, 그 기억의 힘이고, 결국엔 그 추억의 힘이라고 봐. 놀랍지. 놀라운 거야. 무겁고 진지한 것도 좋겠지만 나 같은 사람도 있어. 사실 그런 건, 주위를 보고, 그 힘을 모으는 사람이었음 해. 추억하는 것의, 추억하는 자의 즐거움을 가질 수 있었음 하는 거지. 현실이란, 재활용품 줍는 것보다 나으려면 무궁화 꽃을 피우든가 혼자 확 뜨는 달을 그리든가 해야 하는데, 나 소질 없어. 그런 거 잘하는 사람은 또 따로 있으니까. 나로선 그리운 걸 생각할 수밖에 없지. 내가 할 수 있는." (스트레스 걸과 구필 선생, 151쪽)

하나같이 따뜻한 이야기들이고, 그의 옛 추억과 기억을 알게 되는 과정이 흥미롭고, 그 시절 서울의 풍경과 인물들이 신기하다. 그 많은 것들을 모두 처음으로 사랑하면서 만나고 헤어진 많은 친구들. 이제는 사라진 어릴 적 동네의 풍경. 김종은씨는 따뜻한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일 것 같다. 그런 사람이니까 이런 소설을 썼겠지?  

그 누구도 재수생에게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슨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사람들은 개의치 않았다. 그저 재수한다 하면 그래 고생이 많겠구나 아마도 잘될 거다, 는 식의 아쉬움만 내비칠 뿐이었다. 사람들은 그렇듯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우리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에덴 파크, 29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