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선옥 소설집, 내 생의 알리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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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 공지영, 책을 거의 안 읽던 지난 몇 년동안 자주 헷갈렸던 두 여성 작가이다. 신촌 숨어있는책 에서 이 소설집을 우연히 발견해서 샀다. 책을 처음 샀던 이가 적어놓은 날짜는 98년 10월 14일, 내가 이 책을 산 날은 2008년 10월 16일. 딱 10년만에 다른 누군가의 여러 손을 거쳐 내게로 온 인연이다.
한 2주 동안, 빌렸거나 사 놓은 다른 책들에 순위가 점점 밀려나다가 얼른 읽어봐야겠다 큰 마음 먹고 집어 들었다. 순위가 차츰 뒤로 밀려난 데에는 구린 표지와 별로 당기지 않는 제목이 큰 몫을 해주었다. 앞 날개 아래에 따로 표지 디자이너 이름이 없는 걸 보니 아마 출판사에서 맡은 것 같은데 물론 고생했겠지만 이건 좀..
소설집을 읽고 관심이 생겨 작가의 과거를 이리저리 살펴 봤는데 정말 힘들게, 정말 이 정도로 힘든 삶을 살아온 작가가 어디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복잡한 삶이었다. 밖으로 겉도는 아버지와 가난한 어머니의 둘째 딸로 태어나 80년 광주에서 사대부고를 다녔다. 전남대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당시 흔한 학출 위장취업자가 아니라 생계를 이유로 대학을 자퇴하고 취업활동에 뛰어 들었다. 20대 초반에 나이 많은 광주 시민군 출신 남편을 맞이하나 아이를 낳고는 이혼, 온갖 버스의 안내양 생활도 하고, 너무 가난해서 아이들을 보호소에 맡길 정도로 가난했다. 어느날 공장 재봉틀에서 일하다 글을 써보고 싶다는 마음에 재봉틀을 올려놓은 작업대 위에 노트를 두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말을 얼핏 어디서 보았다. 에이, 이렇게 줄여버리니 대체 뭔가 싶기도 하다. 이런 걸 안들 내가 공선옥 작가의 삶을 대체 얼마나 안다고? 차라리 이런 약력이 아니라 이 소설집의 단편들을 읽어보는 것이 훨씬 낫다.
활자 밖의 사정을 다 제외하면 소설집 자체는 재밌고 훌륭했다. 일단 이야기를 품어 내는 솜씨가 무리없이 술술 이고 문체가 어디가 어떻게 다른지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으나 좀 특색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부분의 단편의 소재가 나로서는 처음 접해보는 것들이었고 작품 속 인물들의 삶이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모정의 그늘
타관 사람
어린 부처
어미
그 푸른 바다 눈에 보이네
몸을 위하여
뭐 먹고 살까
술 먹고 담배 피우는 엄마
세한
우리들의 고향
내 생의 알리바이
대부분의 작품은 '여성'의 삶을 다룬다. 그리고 주인공이든 아니든, 작가의 과거의 분신이 대부분의 단편에서 다양한 인물로 등장한다. 작가의말 에서 작가 자신도 "유독 아이를 '아동일시보호소'에 맡긴 이야기가 동어반복처럼 많은 것을 발견했다. IMF시대가 오기 훨씬 전 개인적 생활이 파산을 맞고 아이들을 그곳에 보낸 일이 있었다. 그런 경험이 작용한 탓이리라" 그렇게 말한다.
그렇지만 몇 몇 단편들은 책을 다 읽고 난 뒤에 내용이 뭔지 기억이 나지 않는 황당한 경우도 있었다. 소설이란 게 자전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하더라도 상상력에 개연성이 보태어져 이야기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기억이 나지 않는 단편들은 가슴아픈 사연을 담기는 했으나 인상적인 인물이나 세계가 대체로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뭐 특별할 것도 없는, 그렇다고 전혀 특별하지 않은 것도 아닌, 남이 들어주기에는 지겹고 본인에게는 눈물겨운, 그런 얘기들 중의 하나'인 셈이다.
"그러면 소설개씨가 내 이 얘기를 사면 내가 소설개가 되겄소?"
"아이고, 할머니는 굳이 소설 쓰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가 다 소설입니다요. 아니, 소설보다 더하지요."
"내 얘기 잘 들어서 소설개 양반이 잘 한번 써보시오. 내 한평상을 쓰면 책으로 열 권도 넘을 것인께."
시골 양반들이 거개가 다 그랬다. 아이고, 내 한평생 살아온 얘기를 책으로 쓰면 열 권도 넘을 것이라고. 황옥단 할머니의 경우도 그런 수많은 시골노인네들 중의 하나였다. 뭐 특별할 것도 없는, 그렇다고 전혀 특별하지 않은 것도 아닌, 남이 들어주기에는 지겹고 본인에게는 눈물겨운, 그런 얘기들 중의 하나 말이다. (뭘 먹고 살까, 153쪽)
소설집 목록에서 굵은 글씨로 표시한 작품들은 내가 인상깊게 읽은 것이다. 작품 자체로 좋은 것은 타관 사람과 술 먹고 담배 피우는 엄마 이고, 나머지는 소재가 인상깊거나 자전적인 경험이 진부하지 않고 훌륭하게 녹아든 작품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제야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찾았어.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다 주는 게 내 오랜 꿈이었어. 이제 내 꿈을 이룬 거야."
"그곳에서 뭘 해 먹고살려고 그래?"
나는 사뭇 걱정스레 묻는다.
"뭘 해 먹고살라냐고? 해먹고 살 것 마안치! 콩 심어 먹고살고, 팥 심어 먹고살고, 밤 따 먹고살고, 꿀 따 먹고살고... 그렇게 살다 죽으면 뭐가 되는지 알아? 바로 콩이 되고 팥이 되고 밤이 되고 꿀이 되는 거야, 호호호."
전화기 저편 한분순의 웃음소리가 영롱하다. (뭘 먹고 살까, 168쪽)
작가는 폐교된 분교에서 아이 셋, 남편과 함께 글을 쓰고 밭을 일구며 살고 있다고 한다. 부럽기 이전에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 슬프고 불행하게 살아온 작가가 이제라도 '콩이 되고 밤이 되고 꿀이 되는' 곳에서 살아가니까.
이 서두는 읽지 않아도 무방하다. 아니, 이 글 모두를 읽지 않아도 무방하다. 그것은 읽는 사람의 자유다. 내 이 글에 냉담하게 고개 돌리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나는 그에 대해서 뭐라고 말을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들과 나는 서로 사랑하고 있지 않으므로. (내 생의 알리바이, 23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