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픽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꿈을 빌려드립니다

권고마 2008. 10. 13. 02:07
꿈을빌려드립니다
카테고리 소설 > 기타나라소설 > 스페인(라틴)소설
지은이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하늘연못,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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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판본은 요 표지가 아니다. 요 표지는 아마도 하늘연못 출판사의 4번째 판인 것 같은데... 내가 읽은 건 97년에 나온 두번째 판. 인터넷 검색으로 요 표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97년 판 표지는 정말 구리다. ... 책 살 마음이 쏙 들어갈 정도다.

70년대와 90년대까지의 중단편 소설 9편, 산문 9편, 작가와 관련한 신문 기사 및 인터뷰가 하나씩 담겨 있는 책이다.

중단편 소설
눈속에 흘린 피의 흔적
포르메스 부인의 행복한 여름
난 전화를 걸려고 온 것 뿐이에요
로마에서의 기적
잃어버린 시간의 바다
물에 빠져 죽은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
사랑도 어찌할 수 없는 영원한 죽음
기적을 파는 착한 사람 블라카만
꿈을 빌려드립니다 

산문들
문학과 현실에 관하여
실생활사전
환상과 예술창작
어린아이들도 읽을 수 있는 시
무슨 책을 읽으십니까?
하늘에서의 사랑
잠자는 미녀의 비행기
노벨상의 환영 1
노벨상의 환영 2 

중단편 소설들은 전반적으로 흥미롭고 수준이 높았다. 아무래도 카리브해와 유럽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이다 보니 일상을 통해 확- 와닿는 건 없었지만. 앞의 4편은 유럽을 배경으로 하고 82년부터 최근까지의 작품들이고, 뒤의 5편은 카리브해를 배경으로 하고 '백년 동안의 고독'과 '족장의 가을' 사이 70년대에 발표됐다. 확실히 분위기가 좀 다르다.

유럽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은 이방의 세계에서 중남미 사람들이 겪는 슬프면서도 의미심장한 사건들을 담고 있다. 이 중에 재밌는 작품은 '난 전화를 걸려고 온 것 뿐이에요'. 다소 익숙한 소재였지만 그래서 공감하기가 좀 더 쉬웠던 것 같다. 뒤의 5편은 '백년 동안의 고독'과 다소 비슷한 분위기이다. 마술적이고, 환상적이다? 표현 구린데 다른 적절한 걸 찾지는 못하겠고.

사실 이 책을 남에게 추천하라고 하면, 중단편 소설들보다는 그의 산문들 때문에 추천하고 싶다. 작가의 몇 안되는 산문들이고 게다가 힘들이지 않고 가볍게 쓴 산문보다 작가를 이해하는 데 좋은 글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어느 블로그에서 읽은 건데 적극 공감!). 그리고 몇몇 산문들은 작가의 문학관과 교육관을 담고 있다. 진짜 멋진 사람일 것 같다.

나는 카리브해에서 태어나 카리브해에서 자랐다. 그리고 그곳 나라와 섬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아마 현실보다 더 가공할 만한 것을 떠올릴 수도 없었고, 또 그런 현실을 뛰어넘는 것도 이룰 수 없다는 좌절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내가 가장 멀리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기껏해야 시적 영감을 갖고 그런 현실을 문학작품 속에 이식한 것이다. 내 책들 중에서 단 한 줄도 그곳에서 일어났던 실제 현실에 기반을 두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문학과 현실에 관하여, 211쪽)

종합해서 말하자면, 중남미와 카리브해의 작가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현실이 우리보다 더 나은 작가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우리의 영광이 될지도 모르는 우리의 운명은 겸손하게 그런 현실을 모방하려고 노력해야 하며 그런 것이 가능할 때 비로소 최고의 작가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213쪽)

반대로, 다시 말하면 사전에서 말하는 것과 반대로 상상은 예술가들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현실을 출발점으로 삼아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내는 특별한 능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게다가 나는 이것만이 가치 있는 유일한 예술창작이라고 믿는다. (환상과 예술창작, 222쪽)

이런 모든 것을 통해 나는 작품 해석을 하려는 광기는 장기적으로 볼 때 새로운 형태의 소설에 이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난 사실 아주 순진한 독자이다. 왜냐하면 난 소설가들이란 그들이 말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프란츠 카프카가 '그레고리오 잠자는 어느 날 아침 아주 거대한 벌레로 변하여 깨어났다'고 말했을 때, 난 그것이 어떤 것을 상징적으로 의미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항상 내 마음속에 남아서 날 괴롭혔던 궁금증은 그게 과연 어떤 부류의 동물이었을까 하는 것뿐이었다. ... 하지만 우리가 대부분의 그런 기적을 보지 못하는 것은 바로 잘못된 문학 선생들이 우리의 눈을 이성주의라는 어둠으로 가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문학 수업은 훌륭한 독서를 위한 안내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외의 또 다른 의도는 아이들을 놀라게 할 뿐, 아무 소용도 없는 것이다. (어린아이들도 읽을 수 있는 시, 231쪽)

독서 습관은 젊었을 때 배우지 않으면, 절대로 배울 수 없다고들 말한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에게 그런 습관을 강요해야 한다고들 말한다. ... 내가 보기에 이런 독서 습관은 전염에 의해 획득된다. 일반적으로 훌륭한 독자의 자식들은 훌륭한 독자가 된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독서 습관은 전 가족의 습관이 되는 것이다. (무슨 책을 읽으십니까?, 233쪽)

물론 문학 습관에 역행하는 요소들도 있다. 그것은 잘 교육받았고 또 잘 인도해줄 수 있는 마지막 남은 책방 주인들이 얼마 전에 모두 죽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서점은 갈수록 밤시간 동안의 대화를 할 수 있는 장소가 되지 못하고 있다. 예전에 독자들은 마치 가정 주치의나 칫솔처럼 각자의 책방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독자의 취향에 정통한 책방 주인은 치과의사가 자기 손님을 대하는 것처럼, 개인적으로 독자들을 대하면서 장사를 하고 있었다. 책 목록만 읽어도, 그는 단골 손님이 무슨 책을 원하는지 알 수 있었다. ... 이 세상이 얼마나 바뀌었는가를 평가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면, 그것은 우주로 위성을 쏘는 장소가 아니라 바로 길모퉁이에 있는 서점인 것이다. (무슨 책을 읽으십니까?, 239쪽)

다른 소설 좀 읽어보고 난 다음에 마르케스 다른 작품들로 고고씽! 해야지. '족장의 가을'을 읽고 싶다. 시몬 볼리바르를 두고 쓴 소설이라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