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픽션

김곰치 소설, 엄마와 함께 칼국수를

권고마 2008. 10. 9. 02:16
엄마와함께칼국수를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소설일반
지은이 김곰치 (한겨레신문사, 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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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로 읽은 김곰치. 1999년에 당선됐는데 살펴보니 작가가 딱 30살 되던 해였던 것 같다. 한겨레문학상 수상 소식에 얼마나 기뻐했을까?

음, 딱 4년제 대학을 졸업한, 감수성 예민한 젊은 청년의 소설, 같은 느낌이 약간 있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장면에 대한 깊은 공감과 어쩔 땐 예민할 정도다 싶은 상상력, 자신과 세계를 순간적으로 멀리서 바라볼 때만 알게 되는 묘한 감흥들을 여러 곳에서 찾아낼 수 있었다. 나도 조금 그런 면이 있다.

어쩌면 소녀는 토큰 하나로 귀향할 수 있는 어머니 집이 서울의 경계 안에 있는지 몰랐다. 소녀의 어머니는 신문지로 도배된 방에 오도카니 앉아 생활보호 대상자 구호 봉지쌀로 연명하며 집 나간 딸을 기다리고 있을지 몰랐다. 골목으로 담배를 피우러 간 걸까. 소녀는 순간 또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인파 속에 혹 서 있을지 모르는 소녀를 애써 찾아보지는 않았다. 서울아, 너 잘난 체하지 마. 저 어린아이한테 창녀 짓이나 시키는 주제에..... (50쪽)

병원의 자판기 커피가 다른 자판기보다 더 맛이 뛰어난 것 같은 느낌은 왤까. 생과 사를 오가는 극악한 장소인 응급실 앞에서 한가로이 커피를 마시며 치열하고 절벽같은 풍경을 팔짱기고 관람할 수 있기 때문일까. 방관자라는 것, 사색자라는 것, 사이의 상승작용? (34쪽)

그런데 한창훈의 작품들과 비교해보면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인데 가끔 자신의 머리 속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관념들을 그 감흥에 도취한 나머지 거칠게 표현하는 부분이 있다. 한창훈은 화자가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삶을 묘사함으로써 독자에게 상황을 보여준다.

'거칠게' 표현되는 것과 적절한 단어들과 함께 독자에게도 감흥을 일으키는 '실감나게' 표현되는 것은 종이 한 장 차이인 것 같긴 하다. 아래 부분은 아무래도 그닥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막연하게 '짧은 순간의 강렬한 결단'이라는 느낌은 있었지만 말이다.

아무리 오래 끌어온, 아무리 중차대한 문제의 막다른 결심이랄지라도 순간과 순간이 쌓여 이루어지는 것이고 막다름이란 것 자체가 또 순간이듯이 그가 열차시각표 아래 선 그 순간이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끝내 시간이 그를 거부했다. 그를 방출시켰다. 귓속을 치고 달리는 시간이 그를 해방시켰다. 그는 부산역 대합실을 빠져나와 택시가 정차해 있는 곳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어머니를 선택했다. 동시에 다른 어떤 것들을 선택했다. (200쪽)

아래 부분이 '적절한 단어들과 함께 독자들에게도 감흥을 일으키는, 실감나게' 표현했다고 느낀 부분이다. 그 종이 한 장 차이란 게 읽는 나의 개인적 경험과 겹치느냐 아니냐로 판가름나는 것도 같지만. 

화술의 사술이 있었다 해도 이리 머리가 저릿저릿할 정도로 절규해도 나는 왜 나일까. 누나는 왜 누나일까. 나는 왜 누나이지 못하는가. 나는 왜 어머니이지 못하는가. 왜 이 순간 나는 누나에게 말하는 사람이고 누나는 왜 듣고 있는 사람인가. 우리는 왜 제 몸 밖의 존재가 되지 못하는가. 한번도 몸 밖으로 벗어나지 못하고, 제 몸만 데리고 살 수밖에 없는 것인가. 왜 나는 나일 뿐인가. (206쪽)

나이를 조금씩 먹으면서 내 가족들의 삶이 궁금해진다. 몇 몇 사건들로 나름 아픈 가족사가 있다보니 태어나기 전의 일들은 물어본 적이 없고 들어본 적도 없다. 게다가 나는 다른 가족, 친척들과 사이가 좋지 않은 편이다. 싫은 사람도 많다. 그렇지만 그들의 삶도 들여다보면 하나 하나 문학일텐데,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어서 빨리 듣고 기록하고 싶은데, 그런 마음만 있다. 오래 그리고 가까이 있었던 사람들인데도 내가 모르는 게 너무나 많다.

그것은 어머니의 '어... 간... 쥬... 알...' 때문이었다. 그는 어머니란 이름의 여자를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을 통절히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자신을 낳았고, 그 갓난아이가 어느덧 27살 청년으로 자랐지만 그는 이 세상에서 처음 만난 여자, 가장 오래 알고 지낸 여자를 알지 못했다. 그녀는 그에게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여자였고 그가 '어무이!'하면 그녀가 자신을 부르는 줄 알고 '왜애?'하는 여자였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를 알지 못했다. 그녀는 그가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는 여자의 과거를 알지 못했다. 안다고 해도 도대체 '안다'고 할 수 없는 막연한 것일 뿐이었다. 여자의 소녀 시절 소망이 무엇이었는지 그가 지금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내와 결혼하기 전 마을 오빠들 중 누구를 좋아했는지 사내와 결혼하여 자식 다섯을 낳고 그 한놈 하년에게 바친 그녀 사랑의 깊은 뜻은 무엇이었는지 자식들이 다 자라 어른의 삶을 꾸릴 때 그녀가 누리고 싶어한 노년의 안락은 어떤 것이었는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그는 몰랐고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그는 어머니를 알지 못했다. 어머니는 그에게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는 어머니라는 이름의 여자를 진정으로, 심각하게 알고 싶어한 적이 지금껏 단 한 번도 없었다! (253쪽)

어쩌면 나와 비슷한 감수성을 가진 것 같은 작가여서 여러 부분을 공감하며 읽었다. 주인공의 빠른 감정 변화, 폭발적인 환희 혹은 좌절과 슬픔의 장면들에 어렵지 않게 따라가 수 있었다. 왠지 내 미래의 모습 같기도 해서 움찔, 움찔 한 적도 있고. 10년 후에 '빛'이라는 소설을 쓴 작가 김곰치, 점점 관심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