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누아 아체페 소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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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에 나온 소설이다. 소설을 발표했을 당시 나이는 28살. 다들 왜 이렇게 일찍 대작을 발표하는걸까(도스토예프스키의 성공적인 데뷔작 '가난한 사람들'은 24살에 썼다고 한다. 지금 막 다 읽었는데 내가 이런 걸 지금 당장 쓸 수 있을지는... ㅠㅠ). 지금까지 800만부 이상이 팔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박진감 넘치는 문체, 흥미진진한 줄거리 같은 것들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만약 한국에 사는 내가 아프리카인들의 삶을 충분히 안다고 자부하며 이런 소설을 써서 발표했다면? 절대 800만부가 팔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어떤 상도 받지 못했을 것은 당연하다.
이 작품의 의의는 아마도, 1958년이라는, 아직 여러 아프리카 국가들이 독립조차 못한 시기에, 젊은 아프리카 청년이 자신의 땅인 '아프리카'를 '아프리카'의 입장에서 그려냈다는 점 아닐까.
문학 작품은 당대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또 그에 대한 의견을 표명한다. 하지만 그 수위는 작가와 시대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아체베의 경우, 자신이 속한 이보족, 나이지리아, 그리고 아프리카가 직면한 상황은 그의 생각과 작품 형성에 있어 여느 작가에게서보다 더 결정적 역할을 한다. 되돌아보면 지난 한 세기가 아프리카의 삶을 얼마나 철저하게 변화시킨 격변의 시대였는지를 알 수 있어, 아프리카 작가가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오히려 생각할 수 없는 일로 여겨진다. (작품해설, 251쪽)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아프리카는 스스로 '말하기'보다는 '말해지는' 대륙이고 온갖 지구인들이 순간적인 장면들로만 기억하는 곳이다. 또한 원시적이고 잔인한 죽음이 지천에 널려 있는 대륙이다. 흔히 우리가 대표적인 전근대적 잔재로 알법한 투철한 부족 의식은 식민지 역사가 만들어낸 인위적인 영토 경계와 결합하고, 미국과 러시아를 필두로 한 세계 여러 나라의 무기 지원과 합쳐지면서 거대하고 끊이지 않는 전쟁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의의 빼고는 하등의 문학적인 장점을 갖지 못한 평범한 작품은 아니다. 지금까지 다양한 사회과학 서적들을 통해서 현대 아프리카가 보여주는 잔인한 고통의 역사는 어디까지 거슬로 올라가는지를 알게 되었고 문화인류학적으로 아프리카의 전쟁과 아프리카인의 사회를 분석하는 글을 읽어보기도 했다. 그래서 충분히 자세하지는 않더라도 전체적인 맥락과 문제의 원인에 대해서는 혼란스럽지 않을 정도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조금 식상한 말이지만, 나는 철저히 근대적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편이고(생태주의가 조금씩 균열을 만들어내고 있다) 아프리카에 대한 이해도 마찬가지로 근대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인류학 책에서 접한 온갖 의식과 제례의 역할이 한 부족 사회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머리 속으로는 알고 있지만, 그런 의식들에 대해 실제로 아프리카인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고 그러한 제도, 문화와 개별적인 아프리카인들의 관계에 대해서는 모른다.
그러나 문학은 그런 이해를 가능하게 해준다. 치누아 아체베는 아프리카에서 살아온 사람일 뿐더러, 주인공 오콩코와 아들 은워예, 주인공의 세 부인, 이케메푸나 등 각각의 인물을 온전히 그려낸 것 같다. 어떤 근대적인 관점이나, 평가도 들어가지 않은 채로 말이다.
하지만 문학 작품으로서의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는 참담한 사회사를 문학적 방식으로 기록하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는 거대한 역사를 개인들의 삶과 생각을 통해 그려내고 또 해석해 낸다. 작품은 주인공 오콩코의 비극을 이야기한다. 이야기는 충분히 개인적이고 또 비극적이다. 이러한 비극의 원인은 상당 부분 개인적 차원에서 연유하고 또 그 결과 역시 개인적으로 감당해야 했다. 이 부분을 새삼 강조하는 것은 소위 말하는 제3세계 문학에서, 주인공의 비극은 주로 사회정치적 상황에 기인한 것으로만 읽혀 왔기 때문이다. 이는 오해의 여지가 있다. 분명 제3세계의 문학도 개인의 비극과 사회적 비극이 동일한 무게로 얽힌 모습을 제시하며,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는 이를 구현하는 대표적 작품이다. (", 253쪽)
이 책을 읽은 뒤에 바로 로맹 가리의 '하늘의 뿌리'를 읽었는데 흥미로운 상호 작용을 일으키며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최근에 읽은 미카엘 니에미의 '로큰롤 보이즈'는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와 비슷한 의의를 가진 소설인 것 같다. 좀 더 세련되었다는 게 다르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