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소설, 개밥바라기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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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여러모로 화제가 되는 소설.
분명히 2008년 한국 문단의 거장이라 할 수 있는, 43년생인 작가가 자신의 어릴 적 이야기를 자전적으로 풀어낸 소설이다. 그의 과거는 워낙 인상적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중 4.19 혁명 때 친구가 총에 맞아 죽고, 그 얼마 후 학교를 그만두고 전국을 방랑한다. 동국대 철학과에 들어갔지만 곧이어 한일회담 반대시위에 참여해 경찰서 유치장에 갇힌다. 그곳에서 만난 어느 노동자를 따라 전국의 공사판을 떠돌다 불자가 되겠다고 절에 들어가기도 했다. 속세로 돌아와 해병대에 입대했으나 베트남으로 약 4년동안 떠나게 되고 그는 살아 돌아온다. 그 이후 문화 운동에 열정적으로 뛰어들어 여러 단체를 만들었다. 1980년 얼마 전에 광주에 살았으나 광주항쟁 당시에는 다행히 광주에 없었다고 한다. 그 후 80년대에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라는 광주항쟁을 적나라하게 기록한 글을 전남사회운동협의회와 협력해 글로 옮겼다(절판된지 꽤 오래된 것 같다. 다행히 제본된 책을 가지고 있는데 읽어보면 정말 제 정신으로 읽기가 힘들 정도로 적나라하다...). 90년대에는 조선에 다녀왔다는 이유로 몇 년동안 한국 감옥에 수감되기도 했다.
그의 생애에서 인상 깊은 사건만 추려 기억나는대로 적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길고, 예상외로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부분이 많다. 처음 그의 삶을 접했을 때 무척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나온지 한달만에 3쇄를 찍었다. 1만부 가까이 팔렸다고 보면 될 것 같다. 3쇄가 8월 30일에 찍혔는데 약 한달이 더 지난 지금은 얼마나 팔렸을까? 경이로울 것이다. 온갖 인터넷 서점들은 그의 책이 베스트셀러라고 홍보하고 있으며 아마 전국의 주요 서점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독자들은 그 열의에 보답해 엄청난 사람들이 이 책을 사서 읽고 있을 것이다.
책 이야기는 안 하고 잡설만 길었다. 그만큼 나는 그를 한국 문학의 거장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한국 근현대사를 응축해 보여주는 사람이자, 아마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가장 '든든한'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 녀석 길이 끝나버렸지. 길두 끝나고 저한테 알맞은 늪을 만난 거다. (25쪽)
'알맞은 늪'이라는 표현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나쁜 것은 아니다. 그에게 알맞은 늪 일 뿐.
어떤 글이든 남에게 자기 생각을 전달하려는 수단이고 통로일 뿐이다. 감정을 아끼고 담담하게 냉정하게 쓰되, 문장과 문장 사이가 중요하지. 독자는 이 사이에서 자신의 상상력으로 나머지를 채우고 글을 함께 완성해준다. (85쪽)
'봄비'
그러나 / 감자밭을 적시기엔 / 아직 적다 (101쪽)
하이쿠를 좋아한다. 류시화 시인이 엮은 하이쿠 시선집은 내가 유일하게 즐겨 읽고 또 감동할 수 있는 시집이다. 이 시는 처음 읽을 때부터 마음에 팍 꽂혔다. 온갖 상상이 가능한 멋진 시다.
나는 나중에 베트남에 가서 산과 바다의 아름다운 경치가 얼마나 밋밋하고 의미가 없는지 알게 되었다. 어디에서나 기억은 거기 있는 사람과 함께 남는다. (175쪽)
자퇴를 하고 나서 맥놓고 걸어가던 하굣길이 생각난다. 막상 일을 저질러놓고 나니 이제부터 내 앞에 놓인 길은 어디나 뒷길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나는 이제 의사나 법관이나 관료나 학자나 사업가나 존경받을 장래의 모든 가능성으로부터 스스로 잘려나온 것이다. (186쪽)
무척 공감이 돼서... 고등학교 다닐 때 학교 그만둘까 그런 생각을 상상으로만 했던 적이 있다. 가족의 반대와 더불어 그 엄청난 공포 앞에서 상상은 단지 상상에만 그쳤다.
그날 통금이 임박해서 막차를 타려고 몰려나오는 인파로 가득 찬 명동 입구를 걸어나오며 나는 처음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 이제야 나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내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작가라고? 그러나 삶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이제 겨우 어슴푸레한 안개 속에서 사람의 형상을 알아보기 시작했을 뿐인데. 이런 날 곁에 누구라도 있었으면 싶었다. (193쪽)
... 나는 내 힘으로 살고 있다는 실감 때문에 담배연기를 길고 거세게 내뿜곤 했다. (261쪽)
목마르고 굶주린 자의 식사처럼 맛있고 매순간이 소중한 그런 삶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내가 길에 나설 때마다 늘 묻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261쪽)
이제 글 따위는 쓰지 않는다. 내가 그 무렵에 방 안에서 나를 둘러싼 사물들의 명료함에 질려버렸듯이 반대로 내 손으로 쓴 글자는 아무 의미도 없거나 분명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내가 아무렇게나 지어낸 것일 뿐이었다. 머릿 속에서 방금 지나간 생각들은 눈을 감았을 때 눈꺼풀 안에 보이던 작은 빛조각들처럼 스치고 지나갔고 잔영도 어찌나 덧없는지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런 것들은 다 놓치고 헛것들로만 비슷하게 형상화하느라고 애쓰다가는 남들에게 겨우 눈꼽쟁이만큼 전달할 수나 있을지. 그렇다, 세상의 표면만이 또렷할 뿐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글을 쓸 수 없다면 내 존재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262쪽)
나는 이 소설에서 사춘기 때부터 스물한 살 무렵까지의 길고 긴 방황에 대하여 썼다. '너희들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끊임없이 속삭이면서, 다만 자기가 작정해둔 귀한 가치들을 끝까지 놓쳐서는 안 된다는 전제를 잊지 않았다. 그리고 너의 모든 것을 긍정하라고 말해줄 것이다. 물론 삶에는 실망과 환멸이 더 많을 수도 있지만, 하고픈 일을 신나게 해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태어난 이유이기도 하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때려치운다고 해서 너를 비난하는 어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거다. 그들은 네가 다른 어떤 일을 더 잘하게 될지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 285쪽)
마침 최근 인기리에 방영 중인 '베토벤 바이러스'라는 드라마가 생각난다. 평범한 생활인들이 우연한 기회로 오케스트라를 하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성공적으로 마친다. 그들 중 일부는 회사를 때려치우고, 경찰 공무원을 사직하기도 한다. '꿈은 가만 두고 바라보는 '별'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몸부림쳐야 꿈이다'.
얼마 전 다녀온 가을농활에서 귀농한 어르신도 비슷한 말을 했다. 니 마음이 가는대로 살아라, 고. 그러나 몸이 편하기를 바라지는 말라고. 몸을 혹사하더라도 마음은 편안한 것이 농사일이더라, 고, 20대 초반의 우리들에게 술에 취한 채로 그렇게 당부했다. 나는 그의 말을 듣자마자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떠올랐다. '삼미-'는 힘들어하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삶을 단지 긍정하라는 메세지로만 읽힐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주인공은 그렇게 살지 않았고, 소설의 메세지도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니 마음이 가는대로 '살라', 는 것이다. 세상이 요구하는 기준을 가만히 들여다보라는 것이다. 그것이 너의 행복에 진정으로 도움되는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줄거리를 굳이 적지는 않겠다. 그리 복잡한 것은 아니니까. 더불어 아직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기를 기대하면서, 그러나 지금의 열기가 조금 식은 뒤에 차분한 마음으로 진지하게 대면하기 위해 참고 있으므로.
한 가지 확실한 생각은, 많이 팔려 '마땅한' 훌륭한 책이라는 점이다. 이런 책을 한국 사람들이 많이 사서 읽고 주변에 선물해준다는 게, 미래를 위한 작으나 든든한 희망의 근거 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