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픽션

김애란 소설집, 달려라 아비

권고마 2008. 9. 12. 02:46
달려라아비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소설일반
지은이 김애란 (창비,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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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문학상에서 '침이 고인다'를 읽은 뒤 관심이 생겨 도서관에서 빌렸다.

표지가 참 예쁘다. 뒷 표지 역시 예쁘다. 이번 달에 생일인 지인이 2명이어서 요즘 어떤 책을 선물할까, 고민하고 있는 중인데 '달려라, 아비'의 표지가 참 예뻐서 유력한 후보 중 하나이다.  

달려라 아비
나는 편의점에 간다
스카이 콩콩
그녀가 잠 못 드는 이유가 있다
영원한 화자
사랑의 인사
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
종이 물고기
노크하지 않는 집

위와 같은 단편이 실려 있다. 특별히 '아버지'를 주제로 한(혹은 아버지가 비중있게 등장하는) 작품이 많다. 왜 그럴까? '달려라, 아비' '스카이 콩콩' '그녀가 잠 못 드는 이유가 있다' '사랑의 인사' '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 '종이 물고기' 등. 거의 전부인 것 같기도 하고.  

내가 가장 재밌게 읽었고 좋아하는 작품은 '종이 물고기''노크하지 않는 집' 이다. '종이 물고기'는 그 역동적인 생명의 창조가 참 인상 깊었다. '- 나는 지금 쓰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예 쓰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쓰기로 결정했다. 그것은 호이징하라는 학자가 쓴 서문의 일부로, 그가 좋아하는 글귀였다.' 라고 말하며 방 안 벽 가득히 쓰기 시작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왠지 나와 비슷한 처지 같기도 하겠다 싶었다. 그는 쓰고, 나는 읽는다. 그러나 그의 방처럼 나의 읽기도 마지막에 남는 것은 결국 한 조각의 포스트잇, '-그는 침도 별로 없는 입을 열며 우리에게 처음으로 말했다. 그것은 어쩌면 희망 때문일 것이라고.'인 것은 아닐까 두렵다.

'노크하지 않는 집'은 내 과거의 경험과 놀랄만큼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하는 하숙집의 구조도 똑같고(반지하, 1.5층, 2.5층이라는 애매한), 그녀 방이 있는 1.5층의 구성도 거의 비슷하다.

2학년 때였나 3학년 때였나. 새로운 하숙집으로 이사를 했다. 내가 살게 된 방이 있는 1.5층에는 모두 6개의 방이 있었다. 내 방은 맨 끝방이었다. 그런데 같은 층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여자였다! 아주머니가 말하길, 원래 모두 여자만 살게 하려고 했는데, 방이 너무 오래 비워서 내준다고 했다. '노크하지 않는 집'의 주인공은 여자이고 옆 방 사람들도 여자이다. 그런데도 그토록 경계하고, 방 밖에서 들리는 화장실 물 소리, 문 닫는 소리, 현관문 열리는 소리, 누군가 슬리퍼를 끌고 지나가는 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고 '나는 언제 나가지?'를 재고 있다. 하물며 내가 살던 곳이야 말할 것이 있겠나! 누구나 자기 얼굴의 1/3만 보여주며 문을 열고 닫았다. 한 가지 다른 사실은, 반지하층에 식당이 있어 저녁을 함께 먹으며 얼굴을 익히곤 했다는 사실. 그래서 그나마 덜 뻘쭘했다. 그렇지만 아마도 우리 층의 내 이웃들은 나보다 훨씬 경계하고 예민한 채로 화장실을 사용하고 복도를 오가고 방문을 잠궜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내 경험과 아주 똑같은 구절이 하나 있다. '나는 내가 아는 한 이 집의 여자들 중에 유일한 흡연자였다. ... 그러다 어느날부터 자연스레 화장실이나 방에서 담배를 피우게 됐다. ... 그날 저녁, 나는 샤워를 하려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화장실 문 앞에 전에 없던 포스티잇 하나가 붙여 있는 것이 보였다. - 방에서 불을 사용하는 사람은 조심합시다. 우리 모두를 위해.' 나 역시 처음에는 망설여가며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곤 했는데 며칠 뒤에 화장실 문 앞에 아주 유사한 내용의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던 것이다.

우리 역시 포스트잇으로 서로 대화를 나눴다. 대화? 경고, 부탁만 주고 받은 것도 대화라고 할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나 그 집에 살 때의 나는 참 외로웠고, 늦게 잠들었다. 늦은 밤 집 밖에서 담배를 태우면 이웃한 방의 창문으로 불빛을 보곤 했다. 그는, 아마도 그녀는 이 시간까지 잠들지 않고 있었다. 나는 늦은 밤에 무척 외로웠고 누구든 그런 나와 대화해주기를 간절히 원했는데, 바로 옆 방에 누군가가 깨어있는 채로 살아 있는데, 나는 그녀가 누군지도 모른다.  

김애란의 소설들은 박민규의 그것만큼 유쾌하거나 혹은 위태롭거나 예리하진 않다. 여성적 글쓰기? 가 무엇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인물의 내면이나 그 속의 변화나 움직임, 인물과 세계의 관계, 대화, 소통 같은 걸 아주 잘 그려내고 있는 걸 보면 이런 게 여성적 글쓰기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녀는 서울에 사는 20대들의 삶을 아주 잘 알고 있고, 특히 혼자 사는 20대들의 삶은 거의 모두 경험해봤을 것이다. 앞으로도 쭉, 더 많은 20대들의 삶을 서사로 세상에 풀어내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