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이효석문학상 수상 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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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박민규 '누런 강 배 한 척'
수상작가 자선작
박민규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박민규 '굿바이, 제플린'
추천 우수작
김애란 '침이 고인다'
김연수 '모두에게 복된 새해'
이현수 '남의 정원에 함부로 발들이지 마라'
전성태 '목란식당'
천운영 '소년 J의 말끔한 허벅지'
편혜영 '분실물'
황정은 '모자'
삼미- 를 막 읽었던 때였다. 도서관 2관 5층(문학 작품만 모여있는 가장 아름다운 층이다)을 헤매고 있던 중에 기묘한 모습의 박민규 그림이 그려진 이 책을 발견했다.
'누런 강 배 한 척'은, 심사평도 그렇고, 다른 많은 블로거들도 그렇고 칭찬이 자자하다. 그 이전의 작품들과는 뭔가 조금 다른, 아버지의 삶에 대한 묵직한 서사가 전개되는 소설이었다. 심사위원 평 중에는 김애란의 '침이 고인다'와 이 작품을 두고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나 박민규가 새로운 차원으로 한 단계 나아갔다는 뜻에서 이 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했다고 한다.
나는 그것보다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가 더 좋았다. 소설집 '카스테라'에도 실려 있어서 어제 다시 읽어봤는데 역시 이 단편이 참 마음에 든다.
지금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들은 안전선 밖으로 물러나주셔야겠지만, 그게 될리가 없는 것이다. 승객들은 모두 전철을 타야 하고, 전철엔 이미 탈 자리가 없다. 타지 않으면, 늦는다. 신체의 안전선은 이곳이지만, 삶의 안전선은 전철 속이다. 당신이라면, 어떤 곳을 택하겠는가.
새벽의 전철은 늘 은하철도와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말해도 괜찮습니까? 금성의 누군가로부터 추궁을 받는다 해도, 과연 나는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새벽은 광활하고 캄캄했으며, 혹한의 공기는 언제나 거칠었다. 말 그대로의 천자문 집 우, 집 주, 넓은 공, 거칠 허. 그리고 나는, 혼자였다. 사람들은 모두 자고 있겠지, 사람들은 모두 무사하겠지. 구일과 구로를 지나 신도림으로 이어지는 선로의 어둠 속에서, 나는 늘 흔들리며 생각했다. 조금씩, 열차는 흔들렸고, 조금씩, 마음도 흔들렸다. 삶은, 세상은, 언제나 흔들리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대체 왜 기린인지 잘 모르겠다. 조금씩 고민하고 있고, '카스테라'를 읽다보니 약간의 실마리를 얻을 것 같은데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았다.
'침이 고인다'는 나 역시 수상작이 될만하다는 데 동의할만큼 재밌고 잘 쓴 소설이다. 도시에서 사는, 대학을 졸업한, 20대 후반의 회사원들의 삶이 아주 적나라하다. 특히 대기업이나 정규직에 입사한 소수의 학벌 좋은 명문대생을 제외한, 나머지 대다수의, 그냥저냥한 대학을 나온 다수의 20대들.
그녀는 누군가와 함께 살아 좋은 순간은 뭔가 같이 '먹을 때'라는 걸 깨달았다. 밥상 앞에 한 사람이 더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녀는 보통사람이 되는 것 같았고, 그 상이 그냥 상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유구한 밥상처럼 느껴졌다. 그 오래된 느낌이 참 편안했다.
혼자서 2년 이상을 살아본 사람이면 아마 절대 다수가 절대적으로 동의할 부분이다. 내 친구도 그렇다고 했고, 나도 그렇다고 했다. 아래 부분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문득, 자신이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순간은 바로 이런 때가 아닐까 생각한다. 수도요금을 지불할 수 있다는 것, 샤워기 아래서 그것을 아주 사실적이고 감각적으로 깨달을 수 있다는 것, 최고급은 아니더라도 보통보다 약간 좋은 목욕용품들로 샤워를 하며, 쾌적함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들에 대해 두려움 비슷한 안도감을 느낄 때.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자신이 선택하고 있다고 믿을 수 있을 때 말이다.
요즘 소설의 트렌드가 도회적이라는 말들을 많이 하는데 당연한 거 아닌가 싶다. 다들 도시에서 살잖아? 물론 현실 너머 미래를 읽는 작품이야말로 훌륭한 것이지만, 대부분의 예술은 현실을 서사화하거나 작품에 담아내는 것들 아닐까. 도회적이라고 하기 전에, 지금 한국의 10대와 20대의 삶을 똑바로 직시해 작품에 담을 수 있는 젊은 작가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참, 편혜영의 '분실물'도 재밌게 읽었다.
마지막으로 박민규의 수상 소감 중 일부를 옮겨본다. 워낙 재밌어서.ㅎ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상이란 걸 받을 때의 이런 기분이 나는 싫다. 왠지 잘 익었군... 고개 숙인 벼라도 되어야 할 것 같은 이런 기분이... 나는 싫다. 자네도 꽤나 상을 탔더군? 강을 건너가 이효석 선생을 만난다면 왠지 놀림을 받을 거란 생각도 든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하여간에 나는 그런 인간이다. 고개 숙이지 않고
익어가겠다.
감사하다고도 말하지 않겠다. 감사할 곳이 많은 인간은 결코 좋은 작가가 될 수 없다는 평소의 지론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느껴지는 <마음>이 있다. 뭐랄까, 지천에 메밀꽃은 피어 있고, 노새를 타고 고개를 넘다 "생원도 제천으로?"와 같은 말을 건네 들은 기분이다. 많은 이들이 이 길을 걸었구나, 실은 모두가 아버지였구나... 말없이, 더 열심히 쓰겠다. 언젠가 저 강을 건넌다면 아버지와도, 혹은 이효석 선생과도 그런 식으로 해후하게 될 것이다. 수상의 영광은 전적으로 그들의 몫이다. 나야 뭐, 아직 한참 멀었으니까... 길은 멀지만, 걸음도 해깝고 방울 소리가 밤 벌판에 한층 청청하게 울리는 기분이다. 역시나 달도 어지간히 기울어져 있겠지. 외롭고, 외롭지 않은 밤이다.
브라보, 댄디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