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픽션

루이스 세풀베다 소설, 연애소설 읽는 노인

권고마 2008. 9. 3. 02:56
연애소설읽는노인
카테고리 소설 > 기타나라소설 > 스페인(라틴)소설
지은이 루이스 세폴베다 (열린책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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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과 '감상적 킬러의 고백/악어'를 도서관에서 같이 빌렸다. 아는 분이 읽으며 엄청난 감동을 느꼈다고 했는데 나는 그렇지 않아 고민까지 할 정도였다.ㅎ그렇지만 나중에 다시 한 번 읽어야 할 책임은 확실했다.

노인은 보통의 남미 사람이었다가 정부의 이주 정책에 따라 아마존 밀림 속으로 들어온다. 그곳에서 밀림에 의해 집을 잃고, 농사를 망치고, 마침내 아내까지 잃는다. 그 때 원주민인 수아르족이 그를 도와줘 그는 원주민인 인디오처럼 살아간다. 밀림에 대한 증오는 잊은 지 오래.

그러나, 루이스 세풀베다가 '양키'라 부르는 이들은 밀림 속으로 꾸역꾸역 밀려 들어오고 그는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수아르 족을 떠나게 된다. 그곳을 떠나 마을에 정착해서는 그는 1년에 2권의 연애소설을 아래의 방식대로 아주 깊이 음미하며 읽는 낙으로 살아간다.

(문득 왜 '연애소설 읽는 노인'일까 생각해 봤다. 누군가는 이를 약점 이라고 표현했는데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그게 왜 약점이야?)

한 양키가 강을 따라 떠내려온다. 그는 어느 암살쾡이의 새끼를 죽였고 마침 어미인 암살쾡이에게 걸려 무참하게 죽는다. 이어 인근 주민들이 암살쾡이에 의해 죽어가자, 조용히 연애소설을 읽고 싶었던 노인은, 인간을 살리기 위해 암살쾡이를 잡으러 밀림 속으로 들어간다, 가 이 소설의 대강의 요지이다.  

책이 작고 얇아 금방 읽는데, 1998년 세계 베스트셀러 집계에서 8위를 차지한 작가답게 글도 참 재밌게 쓴다. 이 소설은 1989년에 나왔는데 마침 유럽에서 생태주의와 환경에 대한 관심이 대중적으로 확장되어가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시대의 행운을 누린 작가인 셈이다. 당시만 해도 마땅히 환경 소설 이라 불릴만한 최근의 문학 작품이 없었을 것이다. 한국은 아직도 그렇다만(시는 빼고).

작가의 말이 참 멋져서 옮겨 본다.  

스페인 오비에도에서 <티그레 후안 상>을 수여하게 될 심사 위원들이 이 소설을 읽는 사이,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거대한 조직에게, 고급 의상에 손톱까지 깔끔한 자들에게, <발전>이라는 이름을 내세우는 자들에게 매수당한 무장 괴한들이 세계 환경 운동가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저명한 인물이자 아마존의 열렬한 옹호자를 살해했다.
사랑하는 친구, 치코 멘데스. 늘 과묵하고 행동하는 양심으로 활동하던 당신에게 이 책을 전하지 못하지만 감히 나는 <티그레 후안 상>이 당신에게 주는 상이자 하나뿐인 이 세계를 지키기 위해 당신이 걸어간 길을 뒤따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는 상이라고 생각한다오.
루이스 세풀베다 

아마존을 둘러싸고 벌목과 사탕수수로 돈을 버는 이들과 그것을 지키려는 사람들 사이에는 목숨을 건 싸움이 일어난다고 한다. 얼마 전 한겨레에서, 브라질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사탕수수 에탄올 연료 정책(맞나?) 탓에 아마존 밀림이 급속도로 파괴되고 있으며, 관리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 등을 다룬 기사를 읽었다. 그 때 난 처음으로 아마존이 그렇게 크다는 걸 깨달았다. 괜히 지구의 허파가 아니구나.

생태와 경제, 가난한 사람들. 아마존은 온 지구 인류가 모두 지키고 가꿔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실제로 아마존이 영토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앞선 서양 세계가 그런 것처럼 자연을 파괴하는 대가로 경제 개발의 이윤을 얻을 수 있다면, 남미 국가들이 아마존을 온전히 가꿔야 되는 법률이라도 있는가? 이런 문제가 참 어렵다. 대충 나는, 그나마 있는 UN을 활용해 아마존이 걸쳐 있는 여러 나라들에 일종의 보조금을 지원하거나, 아마존 관리기금 같은 것을 만들어 지원하면 되지 않을까,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브라질의 가난한 농민들이 자신의 토지를 갖지 못해 이곳저곳을 떠돌다 숲을 불태워 개간하고 있는 한,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46쪽
노인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책을 읽었다. 그의 독서 방식은 간단치 않았다. 먼저 그는 한 음절 한 음절을 음식 맛보듯 음미한 뒤에 그것들을 모아서 자연스런 목소리로 읽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단어가 만들어지면 그것을 반복해서 읽었고, 역시 그런 식으로 문장이 만들어지면 그것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다. 이렇듯 그는 반복과 반복을 통해서 그 글에 형상화된 생각과 감정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음절과 단어와 문장을 차례대로 반복하는 노인의 책 읽기 방식은 특히 자신의 마음에 드는 구절이나 장면이 나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도대체 인간의 언어가 어떻게 해서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깨달을 때까지, 마침내 그 구절의 필요성이 스스로 존중될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75쪽
나는 글을 읽을 줄 알아.
그것은 그의 평생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었다. 그는 글을 읽을 줄 알았다. 그는 늙음이라는 무서운 독에 대항하는 해독제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읽을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