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논픽션
정성일.정우열 지음,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
권고마
2011. 3. 15.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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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히 많은 쪽을 접어 놓았었다. 많은 구절에서 황홀했다. 이 책에 언급된 수십 편의 영화 중 내가 본 영화는 세 편도 안 된다. 그런데도 무아지경으로 책을 읽었다. 아까워서, 머릿속이 어지러워서 한번에 많이 읽지 못했다. 백쪽 씩 나눠 읽어야 했다.
다시 책을 펴들어 접어놓은 쪽을 찬찬히 읽었다. 평소대로 발췌할 준비를 마쳤으나 선뜻 옮길 마음이 들지 않았다. 옮겨 놓은 구절은 겨우 둘.
다시 책을 펴들어 접어놓은 쪽을 찬찬히 읽었다. 평소대로 발췌할 준비를 마쳤으나 선뜻 옮길 마음이 들지 않았다. 옮겨 놓은 구절은 겨우 둘.
...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 집에 돌아가는 길 내내 혼자 중얼거리면서 걸어가는 그 기나긴 독백의 시간. 지나가 버린 흥분. 언제 다시 올지 알 수 없는 감흥.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의 흔들림. 무엇보다도 어쩔 수 없이 써야만 하는 말, 홀로 있다는 것. 혼자서 버틴다는 것. 그때 괴로운 것은 내가 고독해서가 아니라 지금 막 보고 나온 그 영화가, 그 감흥이, 그 흥분이 고독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남겨진 임무는 분명하다. 그 감흥을, 그 흥분을, 그 흔들림을 거기서 끝나게 하면 안 된다. 34쪽
모든 예술 장르는 그 자체로 배워야 한다. 배움 없이 예술을 감각적으로, 즉흥적으로,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예술은 결국 규칙 안에서 벌이는 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규칙을 알지 못하면 놀이를 할 수 없다. 370~371쪽
모든 예술 장르는 그 자체로 배워야 한다. 배움 없이 예술을 감각적으로, 즉흥적으로,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예술은 결국 규칙 안에서 벌이는 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규칙을 알지 못하면 놀이를 할 수 없다. 370~371쪽
그의 글은 어렵고 단호하고 감동적이다. 뭐랄까, 문장과 문장으로 이어지면 글이 어려운데 단어 하나하나는 그리 어렵지 않다. 복잡한 개념어를 사용하는 횟수가 매우 드문 것 같다. 그래서 어렵다 어렵다 하면서도 그가 하는 말을 대충이나마 이해할 수 있나보다. 알게 모르게 그의 문체를 따라가는 느낌마저 든다.
이 책에서 내가 배운 것은 영화가 아니다. 차이밍량, 장률, 고다르, 장 콕토, 야스지로, 하여간 수많은 거장들의 영화와 그 영화들에 대한 비평은 영화를 즐겨 보는 이들에게는 매우 유용하고 또 흥미진진할 것이다. 내가 이 책에서 배운 것은 영화에 대한 그의 '애정'과 '태도' 그리고 함께 영화를 보는 이들을 향한 '우정'이었다.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최근 '내 친구들'이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정성일씨의 영향이 큰 것 같다. 내 벗들, 내 동무들, 내 동료들.
영화는 이렇게 훌륭한 연인들을 거느리고 있었구나. 미처 몰랐다. 정말로, 이 책의 감상을 단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황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