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픽션

오랫동안 곁에 두고픈 책 : 김남일 산문집, 冊 / 김남일 장편소설, 천재토끼 차상문

권고마 2011. 8. 13. 11:59
책김남일산문집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지은이 김남일 (문학동네,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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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토끼차상문한토끼영장류의기묘한이야기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김남일 (문학동네,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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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산문집 冊에 대해서만 쓰려고 했다. 그런데 두달 전 그의 장편소설을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갑자기 났다. 동료의 책을 빌려 읽고 급히 돌려 주느라 독후감을 쓰지 못했었다. 그럼 안 되지. 무조건 쓰기로 했었잖아. 그래서 기록으로라도 남길 겸, 어거지로 책 두 권을 묶어 놓는다.
그의 산문집은 이상북에서 가져왔다. 아예 제목부터 대놓고 책冊이다. 끌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렇게 산 책을 휴가 때마다 틈틈히 읽었고 석달 만에 다 읽었다. 화장실에서 보고 지하철에서 보고, 그렇게 보다가 요상하게 은근해지는 마음을 신기해 했다. 정혜윤씨의 글처럼 감각적이고 낭만적이지도 않고, 장정일씨의 글처럼 통쾌하고 시원시원하지도 않은데, 이 은근함을 뭐라고 불러야 좋을까. 김선주씨 칼럼집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를 읽으면서 느꼈던 것과 조금 비슷하다. 훌륭하다고, 멋지다고, 재밌다고도 말하기 힘들지만 '좋다'고는 말할 수 있는 산문집이 바로 이런 책이 아닐까 싶다. 이런 책일수록 남 주지도 못하고 오래도록 가지고 있게 된다. 
글이 대부분 십여년 전에 쓰여졌다. 읽은 책들도 이게 참, 다른 어느 작가와도 다른, 특이한 목록들이다. 산문이든 독후감이든 기본적인 어조가 '진지'하다. 분노어린 진지함이 아니라, 세상 어느 곳에서 일어나는 슬픈 일에 대해 집 근처 주점에 혼자 앉아 술 마시며 슬퍼하는 진지함이다. 나 같으면 궁상 맞다고 진심으로 욕을 해주었을 그런 진지함이다. 베트남어, 몽골어, 라싸어, 동아시아 여러 곳을 여행할 때마다 사전을 하나씩 사오고 돈도 뭣도 안 될 게 틀림없는데 그 나라 말을 배운다. 70년대에 고등학교를 다니며 유신독재에 분노했고 80년대를 민주화 운동과 문학에만 몰두하며 살아온, 어느덧 문단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소설가가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런 선배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므로 나는 그가 좋아졌다. 물론 산문과 소설은 별개의 일이다. 천재토끼 차상문은 꽤 재밌는 소설이었고, 다음 소설을 기다려지게 만든다. 그렇지만 그의 옛 소설들은 선뜻 손에 쥐지 못할 것 같다. 마음에 부담을 한 무더기 안겨줄 것만 같아서.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슬픔이 밀려와 사방을 둘러봐도 막막하기만 할 때에는 그저 땅을 뚫고 들어가고 싶을 뿐, 살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다." (...) 조선시대에 이덕무라는 선비가 있어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나에게는 두 눈이 있고 글자를 알기에 한 권의 책을 들고 마음을 위로하면, 잠시 뒤에는 억눌리고 무너졌던 마음이 조금 진정된다." 5쪽

물론 책을 읽는 것은 좋은 일이다. 읽어야 한다. 그러나 가끔은 책을 덮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책의 언어로만 모든 것을 재단할 때, 우리는 어쩌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생의 귀중한 비밀을 놓칠 수도 있다. 어린 시절의 소로가 밤사이 옥수수처럼 쑥쑥 자랐던 것은 단지 책 때문만은 아니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무수한 '방언'들에 어떤 편견 없이 몸을 맡기는 것도 성장의 한 비밀일 수 있다. 9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