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받지 않았다면 아마 읽을 일이 절대 없었을 책이다. 딱히 소설인 것도 아니고, 작가를 아는 것도 아니고, 출판사 이름 역시 처음 들어보고, 제목만 보면 대충 무슨 내용인지 알만하다. 그래도 선물받은 책은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일단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책을 펴들었다.
실은 엄밀히 말해 '선물'로 받은 책은 아니다. 공부방에서 책나누기 할 때 받게 된 책이다. 책을 가져오신 분은 올 초 공부방을 그만두셨다. 머지 않아 시연에 내놓게 될 것 같다. 조금 죄송스러운 마음도 든다.
예상외로 나쁘지 않은 책이었다. 뉴욕의 한 성공한 독신 남성이 스코티시 폴드 종의 한 고양이를 기르게 되면서(그의 표현에 따르자면 기른다기보다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삶이 변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작가는 미국에선 꽤 유명한 사람인 모양이다. 소설가, 시나리오 작가, 방송 작가, 게다가 대형 출판사 '랜덤하우스'의 편집장. 결혼이라는 종이 쪽지 위의 약속을 믿지 않는 조금은 전형적인 뉴욕의 싱글 남성. 작가로서 그가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일과 사람들의 이야기도 흥미롭게 풀어 놓는다. '피아니스트'의 감독 로만 폴란스키와 시나리오 작업을 빠리에서 함께 한 적도 있다고.
고양이 이름은 '노튼'이다. 책을 읽어보면 이 고양이가 아주 똑똑하고 귀엽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작가가 미국 대륙을 동서로 횡단할 때, 빠리로 여행을 떠날 때, 거의 모든 여행에 언제나 노튼을 데리고 다녔기 때문이다. 비행기에서, 호텔에서, 친구네 집에서, 해변에서, 노튼을 만나는 여러 사람들의 반응을 작가가 흥미롭게 지켜봤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거의 모든 사람이, 심지어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다던 그의 친구까지도 노튼을 좋아하게 되었다.
작가는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노튼을 존중한다. 인간과 다른 종의 '동물'인 것까지 부정하진 않지만 생활의 여러 측면에서 노튼은 고양이가 아니라 그의 동반자이자 훌륭한 친구이고 자식이다. 그의 글에 따르면 노튼은 그에 걸맞게 행동한다. 작가가 외로울 때, 눈물을 흘릴 때, 힘들어할 때는 언제나 곁에 있어주었고 매력적인 여성이 그에게 다가가게 되는 훌륭한 징검다리도 되어 주었다. 
접어둔 쪽이 꽤 많다. 예상 밖이다.

이러한 감정의 공유에 대해 내가 달가워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감정을 공유하는 것을 진짜로 원하진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감정을 말하고 싶어하는 것은 상대편으로부터 자신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기 때문이다. 대개 감정 문제에 대해서는 말로 하는 것보다는 직접 보여주는 것이 더 좋다. (149쪽)
한편, 작가는 아름다움을 가장 숭배한다. 이것은 우리 작가들 대부분이 자세도 나쁘고 잇몸도 병든 못생기고 왜소한 쥐새끼들이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가치 있는 것이라고는 내부에서 만드는 것 밖에는 없는 인간들이다. 그것은 우리 작가들이 일생을 워드 프로세서 앞에 앉아 아름다움을 '창조'하려고 필사적으로 애쓰는 데 보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작가들은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얼마나 불가능에 가까우며 얼마나 지옥 같은 일인지 알고 있다. (156쪽)

미하일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라는 책을 언급하는 부분이 나온다. 읽어보고 싶어졌다. 그러나 읽을 시간이 없을 것 같다. 최대로 짜증나는 일이다.
또 하나. 안정적으로 적어도 5년 이상 살아갈 내 집이 생기게 되면, 형편이 허락하는 한 고양이를 꼭 기르고 싶다. 2, 3권이 시리즈로 나와 있다는데, 읽어보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시간도 형편도 힘들 듯 하고.


파리에 간 고양이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피터 게더스 (MEDIA2.0,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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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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