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포트 말미에 덧붙인 감상 겸 후기 

믿기지 않았다. 1975년에 출판된 이 책은, 현대 한국 사회에 대한 예리한 통찰이 담긴 보고서였다. 만약 그가 아직 살아있어서 한국을 직접 방문한다면, 한국의 감옥과 학교와 군대와 병원을 돌아본다면, “한국이야말로 규율 중심적 권력의 천국이다!”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2009년, 그 어느 나라보다 치밀한 규율과 강력한 규범화 권력이 작동하는 곳이 한국 아닌가.

일망 감시체제에 대한 부분을 읽으면서, 고등학교 시절이 생각났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 건물은 〈 모양으로 휘어진 4층 건물이었다. 꺾이는 부분, 즉 건물 중앙에는 야자시간이면 선생님 한 분이 앉아 계셨다. 양쪽으로 쭉 뻗어있는 복도는 그의 시선이 확장되는 통로였다. 단 한 사람이 한 층 전체를 감시할 수 있었다. 우리들은 실제로 선생님이 보고 있는지와 상관없이, 그의 감시 아래에 놓여있는 것 같은 기분에 내내 시달려야 했다. 고3 때 나는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했었다. “야, 학교 봐라. 딱 감옥 아이가. 이게 감옥이 아니면 뭔데?” 푸코는, 18살이었던 한국의 한 소년이 품었던 의문에 대해 답해주었다. 그 거대한 괴물의 실체와 유래를 설명했다. 흥미롭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알고 나니 더 무시무시하다. 유럽 사회라고 해서, 규율과 규격화된 권력이 사라지지는 않았겠지만,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놀라운 연구와 발견, 그리고 개선을 위한 고민들은 더 나은 방향으로의 변화를 이끌어냈을 게 틀림없다. 한국 대학에선 당연시되고 있는 상대평가 제도. 사실상 한국의 거의 모든 교육 기관은 당연하다는 듯 시험을 치르고 상대평가를 통해 구성원들을 서열화한다. 이런 모습들은 절대평가로 지식의 습득 자체를 확인하는 것보다, 서열화함으로써 개인들을 더 개별화하고 더 세밀히 기록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한국 사회는 다른 사회보다도 유달리, 규율 중심적 권력을 더욱 강력하고 치밀하게 적용시키고자 애써온 나라인 것 같다.

자본주의의 역사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는 것은, 국가 권력을 장악한 지배 계급은 사법, 정치, 경제 등 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근대 자본주의가 발명해낸 고도로 발달된 합법적인 통치 수단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개인을 감시함으로써 규율을 확립하고 사회 전체에 권력을 구석구석 스며들게 하는 것 역시 지배 계급의 통치 수단 중 하나이지만, 그것은 가능한 비가시적으로, 구성원이 쉽게 의식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작동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한국 사회에 있는 수많은 사회적 모순과 피지배계급을 둘러싼 정치적 억압․경제적 배제들은 내가 보기에는 비정상적일 정도로 강력하다. 강력한 징병제, 감옥과 다를 바 없는 학교, 대학의 지나친 규율과 기업의 뿌리 깊은 군대 문화 등은, 지배 계급이 사회의 저항(그 최종적 형태는 아마도 폭동이거나 혁명일 것이다)이나 일탈을 억제하고 사회를 완벽히 장악하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 아닐까. 지배 계급으로서는 더 이상 가시적이고 합법적인 방법을 통해서는 이러한 문제들을 내부에서 무마시키는 것이 힘에 부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상황은 규율 중심적 권력의 본래 의미에 있어서 모순적이다. 음지에서 은밀히 작동해야 할 규율이 지나치게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규율과 감시, 그로 인한 지나친 경쟁에 피로를 느끼고 있다. 이는 범죄율과 자살율의 증가, 기업 종사자들의 높은 이직률, 여행에 대한 이삼십대의 높은 관심 등으로 확인할 수 있다.

『감시와 처벌』은 쉽지 않은 책이다. 지나치게 긴 문장이나 추상적이고 모호한 단어들(엄격한 학문적 태도로 인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때문에 아주 집중해서 읽어야 했다. 그러나 이런 기술적 어려움과는 별도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거의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불편함을 느끼게 만든다는 의미에서도 '쉽지 않다'. 이 불편함은, 일차적으로는 평소 거의 생각해보지 않았던 ‘감옥’이나 형벌에 대한 고민을 일깨운다는 것에서부터, 나아가 독자로 하여금 자신이 지금까지 거쳐 온 여러 공간들을 되돌아보게끔 만들면서 - 학교, 군대, 병원 등 - 규율 중심적 권력이 자신의 신체 전체를 단단히 얽어매고 있음을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끈적끈적함의 정체를 알게 되었지만 앞으로도 여전히 상대평가의 시험을 쳐야 하고, 취업을 하고 회사에 들어가 규율과 결합된 생산성의 채찍을 감수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깐. 다행히 한국 사회의 규율 중심적 권력이 유럽 주요 국가의 수준만큼 완화된다고 상상해보자. 여전히 규율은 존재할 것이다. 규율은 근대 자본주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사실은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게다가 규율 없이 지금과 같은 대규모 국가를 유지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즉, 근대의 거대한 두 발명품인 국가와 시장에 있어 규율은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보인다. 규율이 개인을 개별화하고, 지배를 용이하게 만든다고 해서, 그것을 무조건 제거해야 하는가(혹은 제거할 수 있겠는가)라고 묻는다면 속시원히 답하기 힘들다. 아나키즘이 그 해답이 될 수 있을까? 모르겠다. 아직까지는 뚜렷한 해답이 제시되지 않은 것 같다. 일단은, 규율 중심적 권력의 존재 자체를 인식하는 것, 그래서 그것의 속박과 구속을 완화시키는 것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문제의 인식, 해결하기 위한 고민, 학문적인 연구, 구체적인 개혁의 시도, 역사의 알 수 없는 작용, 이 모든 것이 언젠가 그 해결책을 제시해줄 것이다.

푸코는 자신의 책이 “생산자의 소유를 벗어나 누구나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들고 다니면서 쓰일 수 있는 연장통”이 되기를 바랐다고 한다. 내 생각으로는, 이 책은 긴요한 연장통이자 매우 훌륭한 연장통이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연장통을 들고 다니며 한국 사회 구석구석을 들여다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실상 권력은 생산한다. 현실적인 것을 생산하고, 객체의 영역과 진실에 관한 의식을 생산하는 것이다. 개인과 개인에 대해 취할 수 있는 지식은 이러한 생산의 영역에 속한다. 302쪽

박자에 맞추듯이 구분된 시간 구분과 강제 노동, 감시와 평점의 결정기관, 재판관의 역할을 대신하고, 그것을 다각적으로 수행하는 규격화한 전문가들, 이러한 여러 가지 요소를 갖춘 독방 위주의 감옥이 형벌제도의 근대적인 도구가 되었다해서, 무엇이 놀라운 일이겠는가? 감옥이 공장이나 학교, 병영이나 병원과 흡사하고, 이러한 모든 기관이 감옥과 닮은 것이라 해서 무엇이 놀라운 일이겠는가? 347쪽

형법제도의 역사에서 '전기적인 요소'의 도입은 중요하다. 그것으로 인하여 범죄 이전에, 그리고 극단적인 경우 범죄와는 별도로 '범죄인'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거기에서부터 심리적 인과관계가 법적 책임 결정에 관여하게 되어, 그것의 결과를 복잡하게 하기 때문이다. 386쪽

규율장치들이 도처에 존재함으로써 지탱되고 모든 감금장치에 의존해있는 이 규범화 권력은 우리 사회의 중요한 기능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정상성을 판가름하는 재판관들은 우리 사회의 도처에 현존해 있다. 우리는 교수-재판관, 의사-재판관, 교육자-재판관, 사회사업가-재판관의 사회에 살고 있다. 이 모든 사람들이 규범적인 것의 보편성을 존속시키고, 저마다 자신이 있는 지점에서 신체, 몸짓, 행동, 품행, 적성, 성적을 규범적인 것에 종속시킨다. 460쪽

 

감시와 처벌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미셸 푸코 (나남,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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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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