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장편소설, 예담, 2009

10월 초에 다 읽었다. 한달 넘게 모니터 옆에 놓여 있었다. 리뷰를 쓰지 않은 책은 책장에 꽂지 않는 버릇 때문이다. 그래서 모니터를 향한 시선 오른쪽에는 언제나 책이 적게는 한 권, 많게는 서너 권이 놓여 있다. 지금은, 2권이다.

표지의 그림 하며, 기이하다 싶은 제목까지, 한눈에 관심을 끄는 모양을 갖추고 있다. 읽을 때는 좋았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좀 심심하다는 느낌은 지우기 힘들었다. 그치만 박민규의 장편은 꽤 오랜만이다. 전작 <핑퐁>은 큰 대중적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고 알고 있다. 나 역시 읽어 보았는데 아... 탁구로 우주를 구원하는 두 왕따 소년의 이야기. 재치있으면서 신랄한 구어체 문장은 지금이나 그때나 여전하다.
문장을 도중 끊은 채' 한 줄의 여백' 그리고 '몇 개의 단어' 다시 '한 줄의 여백'으로 문장을 잇는 특유의 문체는 여전히 경탄스럽다. 이야, 이야~ 하고 무릎을 턱 턱 치게 만든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서는 말줄임표가 변이된 마침표 세 개(...)가 자주 쓰인다. 글자 바닥에 붙는 마침표 보다는 본래의 말줄임표를 쓰는 게 보기에 더 편하지 않았을까.

어느 분은 SF적인 소설이라고도 하시고(그 맥락을 아직 완전히 이해한 건 아니고), 어느 분은 결말이 다소 마음에 안 든다고도 했다. 결국 이름을 밝히지 않은 그녀는 남자에 의해서만 행복한 새 삶을 맞이한 거 아니었냐고. 그렇긴 하다.
사실 작품의 구성이나, 이야기 자체가 아주 매력적인 건 아니었다. 그런데 아래에 발췌하게 될 문장에서 보듯 현대 한국 사회에 대한 아주 의미심장한 통찰은 여느 사회과학 서적에서나 볼 법한 것이다. 이 문장들은 대개 요한의 입을 빌어 나온다. 요한의 구어는 아주 유려하고 화려하다. 작가가 하고자 했던 말은 거의 다 요한을 통해 나오는 것 같다. 다만 단 하나, 무엇보다 이 작품이 강조하고 싶었던 것, 바로 그것 때문에 작품을 썼던, '사랑'만큼은 요한이 아니라 그와 그녀가 보여준다.

사회적으로 놓고 보면 아마 '못생긴 여자'는 한국 사회에서 마치 '괴물'로 취급 받는다.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솔직해져야 한다. 이건 적어도 한국에서는 엄연한 현실이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 사실을 부끄러워 하지도 않는다. 그게 옳지 못하다는 자각 정도라도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부인하고 싶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작가는 괴로워 하는 인간을 위해 소설을 썼다. 못 생긴 여자, 라는 쉽지 않은 주제를 가지고 그렇게 썼다. 나는 그 점을 높이 산다. 각종 문학상을 휩쓸고 있는 단편들을 모아 새 단편집을 내주기를 고대하며.


그해 가을을 살았던 사람들 중 누구보다 큰 이익을 본 사람은 <나>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사랑은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이익이었고, 세상의 가장... 큰 이익이었다. 천문학적 이익이란 아마도 이런 걸 뜻하는 게 아닐까, 무렵의 나는 생각했었다.
그것은 묘한 경험이었다.
작은 씨앗과 같은 것이었고, 납득할 수 없는 경로를 통해 내면에 스며든 것이었다. 그리고 서서히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리던 느낌... 자라던 줄기와 피어나던 색색의 꽃을 잊을 수 없다. 길을 거닐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그 가상의 나무를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스스로가 키워 올린 나무였고 이미 뿌리를 내리고 선 나무였다. 157쪽
돌이켜보면 그의 눈부신 쾌활함은 언제나 그런 성질의 것이었다. 즐겁다는 영화를 봤으니 그래도 즐거운 영화를 봤다는 표정... 즐겁다는 삶이 주어졌으니 그래도 즐거운 삶을 산다는 눈빛... 누군가 남기고 간 빈자리의 팝콘처럼, 부풀긴 해도 식어 있는 그의 이면을 그때는 미처 헤아리지 못했었다. 165~166쪽
현실적으로 살고 있다 다들 생각하지만, 실은 관념 속에서 평생을 살 뿐이지. 현실은 절대 그렇지가 않아, 라는 말은 나는 그 외의 것을 상상할 수 없어- 라는 말과 같은 것이야. 현실은 늘 당대의 상상력이었어. (중략) 이를테면 그래도 지구는 돈다, 와 같은 상상이지. 모두가 현실을 직시해, 태양이 돌잖아? 해도
와와 하지 않고, 미리 자신만의 상상력을 가져야 하는 거야. 226~227쪽
누군가를 부러워하는 이 순간 세상의 평균은 올라간다. 누군가를 뒤쫓는 순간에도 세상의 평균은 그만큼 올라간다 나는 생각했었다. 누군가 누군가의 외모를 폄하하는 순간, 그 자신도 더 힘든 세상을 살아야 한다. 그렇게 예쁜가? 그렇게 예뻐질... 자신이 있는 걸까? 310쪽
Posted by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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